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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리포트
세계의 심장 맨해튼에 부는 바람, 한류
  • 김인희 국제관계연구소 연구위원

인디언에게 24달러에 산 맨해튼

“여기는 140개 인종이 오가는 곳입니다.”

공항에서 나를 픽업한 운전기사는 타임스퀘어에 도착했을 때 무거운 침묵을 깨고 말을 건냈다. 이렇게 나의 뉴욕 생활은 시작되었다. 나는 세계의 심장 맨해튼(Manhattan), 그것도 타임스퀘어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에서 2024년에 6개월간 생활하였다.

사실, 처음 맨해튼에 도착했을 때는 1990년대 중반 중국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사람들이 교통신호등을 안 지켰다. 중국에서 들었던 말과 비슷한 말을 들었는데,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맨해튼에 처음 온 사람이거나 바보”라는 것이었다. 마트에서 파는 물건들은 질이 매우 떨어졌는데, “미국이 고부가가치 상품 생산에 주력하고 글로벌 사우스에서 저가 상품을 수입하여 일반 대중에게 공급한다”는 말을 체감할 수 있었다. 맨해튼의 물가는 너무 비쌌고, 앰블란스는 하루종일 경적을 울리며 내달렸다. 이렇게 나의 맨해튼 생활은 혼란 속에 시작되었다.

점차 안정을 찾아가며 나는 맨해튼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맨 처음 찾은 곳은 인디언박물관이었다. 박물관에서 맨해튼의 역사를 설명하는 동영상을 보았는데, 1626년 네덜란드 상인 피터 샤겐(Pieter Schagen)은 인디언들에게 24달러 상당의 구슬과 장신구를 주고 맨해튼을 샀다고 한다. 이후 영국이 맨해튼을 지배하였고 1776년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맨해튼은 미국의 첫 번째 수도가 되었다. 지금도 맨해튼 남쪽 리버티섬(Liberty Island)에는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기증한 자유의 여신상이 맨해튼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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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을 들고 맨해튼을 밝히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

 

 

맨해튼은 허드슨강과 바다로 둘러싸인 긴 모양의 섬으로, 세계 문화, 금융, 미디어, 정치의 중심지다. 위쪽부터 업타운(Uptown), 미드타운(Midtown), 다운타운(Downtown)으로 구분된다. 업타운은 문화, 외교의 중심지로 각종 박물관과 미술관, 각국 대사관, 센트럴파크도 있다. 현 미국 대통령 소유의 건물인 트럼프 타워도 있는데, 내가 방문했을 때 트럼프 가면을 쓴 사람이 돈을 받고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다운타운은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그 유명한 월가(Wall Street)가 위치한다. 월가라는 말의 기원은 네덜란드인들이 인디언들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담장을 쌓은 것에서 기원한다고 한다. 내가 거주한 미드타운은 타임스퀘어뿐만 아니라 유엔 본부, 각종 언론사가 있으며, 수많은 브로드웨이 극장이 있다. 타임스퀘어 광장은 브로드웨이 공연을 보러 온 이들과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항상 붐볐다. 불을 찾아 뛰어드는 불나비처럼 타임스퀘어의 휘황찬란한 불빛은 세계인들을 맨해튼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맨해튼에 부는 바람, 한류

“어디에서 오셨어요?(Where are you from?)”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오가는 이곳, 뉴욕에서 매일 듣고 대답해야 하는 말이다.
“한국에서 왔습니다(I’m from Korea.)”
그렇다, 나는 한국에서 온 한국 사람이다. 나의 정체성은 한국인이고 당연히 이곳 뉴욕에서 한국은 어떤 입지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일단, 맨해튼에서 가장 먼저 직관적으로 접할 수 있는 한국의 이미지는 타임스퀘어의 광고다. 내가 머무는 동안 가장 광고비가 비싸다는 대형 광고판에는 삼성이 계속 광고를 하였다. 심지어 어떤 때는 삼성과 기아자동차가 번갈아 광고를 하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삼성과 엘지는 일 년 내내 광고를 하는 고정된 스크린을 가지고 있었다. 타임스퀘어의 전체 광고 점유율에서 한국이 가장 앞선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한옥과 한복을 주제로 한 엘지 광고였다. 어느 날 아침 나는 타임스퀘어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는데, 눈앞에서 한복을 입은 여인이 한옥을 배경으로 한국 전통춤을 추는 영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서양 건물과 서양적인 이미지로 가득 찬 광고들 속에서 한복과 한옥, 한국춤은 너무나 생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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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과 한복, 한국춤을 소재로 한 광고 

 

 

두 번째로 영향력이 있는 것은 한국 음식이다. 미드타운에 있는 마트에 가면 김치, 고추장, 라면 등 한국 식료품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한국 음식이 서양인에게 인기가 있다기 보다는 동남아인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한다. 나는 스태튼섬(Statten Island)에 있는 트레이더 조(Trader Joe's) 식료품점에서 한국 갈비, 떡볶이, 김치전 등을 상품화해서 파는 것을 보고 서양인들도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트레이더 조는 주로 서양인들이 방문하는 식료품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종종 “나는 김치를 좋아한다(I love kimchi)”라고 이야기한다. 혹시, 나를 배려한 표현이 아닐까 하여 “김치를 먹어봤느냐”라고 물어보곤 했다. 그들은 김치를 먹어보았으며 맛있다고 대답하였다. 김치는 이제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맛있어하는 음식이 된 듯하다. 김치 외에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코리안 바비큐와 치킨이다.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쉐이크 쉑(Shake Shack)은 코리안 스타일 버거와 코리안 스타일 치킨을 판매하고 있다. 최근 맨해튼에서는 한국 음식이 인기가 매우 높아 32번가에 위치한 리틀 코리아(Little Korea)에서 식사를 하려면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은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먹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 문화의 글로벌한 인기로 인해 한국 음식에 대한 호감도도 급상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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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가의 진열대에 산처럼 쌓여 있는 한국 라면

쉐이크 쉑 매장 유리문에 붙어 있는 한국 메뉴 광고

한국 관련 음식

 

 

세 번째는 코리안 컬처(culture)다. 튀르키예에서 온 뮤쉬건(Mujgan)은 자신의 딸이 한국 드라마를 즐겨본다고 하였다. 영어강사인 조(Joe)는 미국에서 케이팝의 인기가 대단하다고 하였다. 추석을 맞이하여 뉴저지에서 추석대잔치가 열렸는데, 무대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 케이팝(K-pop)에 맞춰 춤 연습을 하는 미국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아직은 낯선 나라, 코리아

그렇다면 한국 문화는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까? 나는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한국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했으며 큰 호감을 갖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그에 반해 젊은이들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고 스스로 즐기고 있기도 했다. 그들에게 일본은 한국보다 인지도가 확실히 높았으며 호감도도 높았다. 사람들은 일본이 세련되고 문명화된 국가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반해 한국은 그들에게 아직은 잘 알지 못하는 나라인 듯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글로벌 소프트파워 지수(Global Soft Power Index)를 보면 알 수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브랜드 가치 평가기관인 브랜드 파이낸스(Brand Finance)에 의하면, 한국은 “2024 글로벌 소프트파워 지수”에서 15위를 차지했다. 2025년 조사에서는 3단계 상승하여 12위를 차지했다. 위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은 상위 100위 안에 든 국가 중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국가라고 한다. 그 원인으로는 ‘첨단기술과 혁신’, ‘첨단과학’ 분야의 성과와 케이팝과 호평을 받은 영화 및 드라마의 세계적인 성공을 들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1위는 미국, 2위는 중국, 3위는 영국, 4위는 일본, 5위는 독일이다. 한국이 비록 약진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은 낯선 나라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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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파이낸스 보고서의 2025 글로벌 소프트파워 순위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한국에서 논란이 많았던 김치의 중국식 표현에 관한 것이다. 중국에서 “김치의 기원이 중국이라고 한다”라는 이야기가 한국에 전해진 후 “김치를 ‘파오차이’라 부르면 세계인들이 김치를 중국의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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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소재 중국 음식점 메뉴판에 표기되어 있는 김치(Kimcee)

 

 

그러나 맨해튼에 머무는 동안 나는 김치를 파오차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으며, 현지 중국 식당에서도 정확히 ‘Kimchee’라고 표기하고 있었다. 일어나지 않은 가상의 사건에 대한 우려보다는 우리의 문화적 역량을 믿고 전 세계인이 함께 즐길 코리안 컬처를 만들어 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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