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화폐제도와 금융』(동북아역사재단, 2022)
동북아역사재단의 〈일제침탈사 편찬사업〉은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탈과 식민지 지배 실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종합하여 총서로 발간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자료총서, 연구총서, 교양총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치·경제·사회· 문화 분야로 나누어 학계 전문가들이 집필에 참여하고 있다. 〈일제침탈사 시리즈〉에서는 발간된 일제침탈사 총서 가운데 한 권을 선정하여 소개한다.
서울에 위치한 조선은행(현 한국은행)의 모습을 담은 사진엽서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소장)
후발 자본주의 국가 일본의 선택: 국가 주도의 경제 발전을 위한 금융제도의 구축
근대 자본주의는 대규모의 자금 동원이 필수적이었고, 은행은 이를 담당한 대표적인 기구였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였던 일본으로서는 최대한 빨리 자본주의를 발달시켜야 했지만, 당시 민간 자본만으로는 이를 수행하기가 어려운 형편이었다. 이와 같이 민간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자본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1900년을 전후하여 각종 특수금융기관을 설립하였다. 이러한 특수금융기관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특별법에 의해서 설립된 은행으로 각각 독자의 법률 또는 조례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들 특수금융기관은 농업 · 공업 · 무역과 같이 장기성 자금이나 특수한 분야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일반은행에게 기대하기어려운 영업을 담당하였다.
식민지적 금융제도의 구축
강제 ‘병합’ 이후 일제는 1910년대 동안 식민지 조선의 금융 제도를 정비했는데, 1918년 들어서 그 기본 구조가 완성되었다.당시 금융기관은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특수금융기관과 「은행령」의 적용을 받는 일반은행으로 크게 구분된다. 특수금융기관은 발권은행인 조선은행, 장기산업자금을 공급하는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 사회정책성 자금을 담당하는금융조합으로 구성되었다. 즉, 은행권 발행과 국고금 취급 등 중앙은행의 기능을 수행하는 조선은행, 농공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금융을 담당하는 조선식산은행, 지방 중소지주 및 도시 상공업자를 대상으로 한 금융조합 등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특수금융기관이 설립되었다. 또한 「은행령」 제정 이후 일반은행 설립도 진전되어 1920년 당시 20개 일반은행이 영업을 하였다.
조선식산은행 사진엽서(부산광역시립박물관 소장)
근대 금융의 식민지적 변용: 특수금융기관의 비대화와 일반은행의 정체
식민지 조선의 금융제도는 형식적으로는 일본 제도를 도입하여 특수금융기관과 일반은행의 분업이라는 형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은 특수금융기관이 일반은행의 업무를 겸영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점에서 일본과 차이점이 있었다. 일본의 경우는 특수금융기관과 일반은행 간의 분업 체제 아래 상호 발전이 가능했다. 반면에 식민지 조선의 경우 일반은행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수금융기관이 이를 겸영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들어 일본과는 다른 기준을 적용하였다. 그 결과 은행권 발행 특권을 가진 조선은행과 자기자본의 15배까지 채권을 발행할 수 있었던 조선식산은행이 일반은행 업무를 잠식할 수밖에 없었다. 즉, 민간의 예금에만 의존해야 하는 일반 은행은 은행권 발행 및 채권 발행이라는 특권을 가진 특수금융기관과의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 결과 일반은행은 전체 금융기관별 예금 및 대출 구성에서 특수금 융기관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은 근대 금융의 혜택을 얼마나 볼 수 있었을까?
일제강점기 일반은행의 경우, 은행의 설립 주체에 따라 거래 고객이 민족별로 분리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조선인 은행은 조선인이, 일본인 은행의 경우 일본인이 주거래 대상이었다.
이와 같이 조선인 은행, 특히 지방의 일반은행은 지역 조선인 자본가를 위한 자금 공급에 큰 공헌을 하였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일반은행의 정체는 조선인 자본가가 성장하는 데 매우 불리한 환경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일제강점기 근대 금융기관이 확산되었으나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조선인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대다수의 조선인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가난한 농민이었다. 그들은 고리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이율이 50%에 달해 매우 비싼 이자를 낼 수밖에 없었다. 다수의 조선인이 고리대 금융기구에만 의지해야 했던 것과는 달리, 일부 자산가들은 근대 금융기구로부터 저리의 자금을 대출받아 높은 금리로 빌려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여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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