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은 “내셔널리즘과 성동원, 그 연속과 단절: 국가의 성관리 체제와 일본군‘위안부’문제”라는 주제로
2023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공론화 30년, 세계사의 전시 성폭력 경관이 달라지다
올해 8월 14일은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가 정한 제11차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이자, 대한민국 정부가 정한 제6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었다. 이날은 1991년 8월 14일 한국의 피해자 김학순이 최초로 공개증언을 하고, ‘위안부’ 문제를 전쟁범죄이자 식민지 지배 책임 문제로 자리매김한 날이다. 이어서 한국과 대만, 북한, 중국,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등 일본이 일으킨 전쟁 피해지역 여성들이 피해생존자로서 모습을 드러냈다. 더불어 1990년 이후 발생한 구 유고슬라비아 내전과 르완다 내전 때의 성폭력 문제가 ‘위안부’ 문제와 연동되어 전시범죄로서 ‘사건화’되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나치 독일의 성폭력, 종전 후미군 기지 주변의 성폭력 문제도 함께 논의되었다. 이에 글로벌 학자들은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으로 인해 세계사의 전시 성폭력 경관이 피해자 중심으로 완전히 재구성되었다고 평가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초국적 공론장의 중심이 되던 시기에는 이 문제가 곧 해결될 듯 보이기도 했다. 1993년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河野洋平 談話)를 발표하여 일본군과 정부가 위안소 개설과 ‘위안부’ 동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음을 인정했다. 또한 ‘본인의 의사에 반한 피해’를 입은 아시아 여성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1995년 8월에는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가 과거 일본의 아시아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사과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한국과일본 모두 진상규명과 추모사업,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활동에 국가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이루기도 했다.
발표자와 토론자, 청중이 함께 종합토론을 하는 모습. 일본군‘위안부’ 피해와 관련하여 역사적 실태를 공유하고 초국적 협력을 약속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실태와 성격에 대한 재점검 필요
그리고 2023년 현재,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국내외에 설치된 추모비는 150개 이상이며, 관련 박물관도 한국과 일본, 중국, 독일 등에 설립되어 있다. 초중고 학생
들은 교과서에 서술된 일본군‘위안부’ 역사를 배운다. 생존자는 이제 거의 직접 만날 수 없지만, 피해여성이 활동 공간과 지면 곳곳에 각인해 놓은 이야기도 꽤 축적되어 있다. 이러한 현
황만 놓고 보면, 피해자의 기억을 다양한 기록으로 접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지금 우리는 전쟁과 일상의 성폭력을 경계하고 방지하는 삶을 만들어가고 있어야한다. 인권 존중과 평화실현에 따른 ‘재발 방지’가 피해자의 바람이자 이 문제 해결에 동참해 온 시민들이 궁극적으로 바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기대와 어긋나고 있다. 30여 년간의 노력은 흑백논리와 정쟁, 책임 회피와 역사 부정의 공격 속에서 빛이 바래고 있다. 이러한 역풍은 어디에서 어떻게 비롯된 것일까. 과거사 책임과 문제 해결은 반드시 진상규명과 함께가야 한다. 특정한 역사적 구조 속에서 겹겹이 드러나는 피해자의 고통을 마주할 때, 우리는 무엇을 사죄해야 하고 어떻게 폭력 재생산 구조를 없애야 하는지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실태에 대해, 그 본질적 성격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문제를 점검하면서 지난 30여 년간 우리가 이룬 것과 놓친 것을 직시하기 위해 이번 국제학술회의를 기획했다.
1868년 일본 요코하마에는 영국군의 압력으로 최초의 매독병원이 설립되었다.
일본의 근대 성관리 정책은 제국주의 국가의 선례를 참조하면서 시작되었다(하야시 요코발표문 중에서).
시공간을 확장하여 국가의 성관리 체제를 살펴야 하는 이유
일본군‘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특수성은 일반적으로 그것이 국가에 의한 조직적, 체계적인 성폭력 시스템이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고 이해된다. 다른 전시 성폭력 사례와는 달리, ‘위안부’의 동원과 이송, 배치, 관리가 일본군 · 정부의 기획과 협력, 그리고 일정한 전시 매뉴얼 안에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군‘위안부’ 제도는 20세기 최대의 인신매매 시스템이라는 세계사적 인식이 있으며, 일본이 19세기 후반부터 그 정치세력권 안에서 실시했던 공창제(公娼制)가 제도적 배경이 되었다고 지적되어 왔다. 이러한 역사적 특징은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해결을 모색하기 위하여 시기별, 지역별, 각 지역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양태를 달리했던 일제 권력의 공창제, 곧 성관리 정책을 파악하고 그것이 아시아 · 태평양 전쟁기에 어떻게 일본군‘위안부’ 제도로 이어졌는지 검토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위안부’의 피해실태와 성격을 둘러싼 그간의 역사적 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의 전쟁터와 점령지라는 시간과 공간에 갇혀 논의돼온 경향이 컸다. 일본이 일찍이 정치적으로 지배했던 식민지나 조차지, 위임통치 지역 등에 개설되어 있던 위안소 등에 대해서는 관심이 소홀했다. 이들은 일본의 법역(法域) 안에 포함되어 전쟁 이전부터 일제 권력의 성관리 정책이 시행되고 있던 지역들이다. 애초에 이 지역들에 대한 일본의 지배가 군사점령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국익을 위한 병사의 성관리 제도’, 곧 일본군‘위안부’ 제도에 대한 역사는 시간과 공간을 확장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제국주의 확장을 위한 국가의 성관리 문제에서 자유로운 당대 제국주의 국가가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역사적 시야를 아시아 · 태평양 지역을 넘어 서구 사회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국익을 위한 성관리 정책’은 제국주의 각 국가들이 서로 참조하면서, 또는 국제협약을 통해 서로 통제하거나 회피 논리를 만들면서 제국주의 확장과 전쟁 수행에 이용했다. 이번 학술회의 주제에서 구미의 성관리 정책 사례나 제2차 세계대전기 독일군의 사례가 포함된 것은 ‘위안부’ 문제의 본질적 성격을 사유하기 위한 것이었다. 곧 이 문제에 내재된 국가적 책임을 뚜렷하게 부각하는 것과 아울러,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연합국이 주도한 전범재판에서 일본군‘위안부’ 범죄가 처벌되지 않은 사실의 배경과 책임을 따질 필요가 있었다.
합법적 성관리 체제, 폭력의 비가시화와 일본군‘위안부’ 문제
제1부에서는 아시아의 유일한 제국주의 국가로서 19세기 후반부터 대륙 진출을 도모해왔던 근대 일본의 성관리 체제와 여성 피해 실태를 검토했다. 다케모토 니나(오차노미즈대젠더연구소)는 <가라유키상(唐行きさん)에게/으로부터 보는 성과 권력>이라는 주제로 19세기 후반부터 일본의 팽창정책 속에서 대륙으로 보내진 일본 여성에 대해 발표했다. 2021년 하버드대 교수 램지어가 ‘위안부’의 자발성을 강조하며 일본의 국가책임을 부정하는 글, <태평양 전쟁의 성 계약>을 학술지에 게재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때 ‘위안부의 자발성’을 강조하기 위해 인용한 사례가 일본의 가라유키상이었다. 그러나 발표자는 가라유키상이 대륙으로 진출한 일본인 남성을 위해 공급되고 관리된 존재였으며 일본 정부는 자국 여성인 가라유키상에 대한 보호책임을 포기했다고 비판한다.
<근대 일본에서 본 구미의 성관리 정책>을 발표한 하야시요코(나고야대 젠더 다이버시티 센터)는 일본군에 의한 전시성폭력이 세계사적으로 심각한 수준이었던 것은 구미 국가의 압력 속에서 형성된 일본 근대 공창제의 성격에서 비롯한다고 지적했다. 후발 제국주의 국가로서 앞선 제국주의 국가의 성관리 정책을 참조하면서 제국주의나 공창제의 여성억압성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박정애는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의 성관리 정책과 ‘관리되는 여성’>이라는 제목으로 일본 내지와 그 세력권 안에서 차별성을 가지고 시행된 ‘제국 일본’의 공창제를 지역의 차별적 실태 위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일본군‘위안부’ 제도는 일본 내지의 공창제보다 식민지의 그것과 성격이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공론장에서는 식민지에 대한 이해 없이 ‘위안부’ 제도의 특성을 강조하는 데 몰두하였다. 그 결과 역사부정론자
들이 일본 내지의 공창제를 끌어들여 ‘위안부’의 피해를 부정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레기나 뮐호이저(함부르크 학술문화지원재단)는 <나치 독일 국방군의 매춘업소와 일본군 위안소: 제2차 세계대전의 군매춘/군성노예 제도의 유사성과 차이점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나치 독일 국방군과 일본군의 전시 성폭력 시스템을 비교하였다. 병사를 위한 성관리 정책을 수행하면서 독일군과 일본군은 모두 ‘남성의 억제할 수 없는 성욕’을 정책의 명분으로 삼았다. 또한 모두 내셔널리즘, 성차별, 인종차별에 기초하여 여성을 모집하고 대상화하였다. 각각의 특정한 사회 성격이나 국가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방식의 차이는 있었지만, 양국의 성관리 정책은 기본적으로 내셔널리즘, 성차별, 인종차별에 기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문제 해결이 과거사에 대한 국가책임과 사회 민주화, 그리고 각종 차별구조의 철폐 속에서 가능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인식의 단절을 넘어 지속되는 폭력에 대한 비판으로
제2부에서는 시공간의 연결 속에서 지속되어 온 폭력 시스템을 파편적으로 인식하는 공론장의 논의들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장수희(동아대)는 <자연스러움에 대하여: 평화시의 ‘문화’와 전시의 ‘폭력’>이라는 제목으로 전쟁과 폭력이 겹겹이 쌓여 있는 세계와 역사를 해체하고자 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가해 책임이 분명한 범죄로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겹겹의 폭력으로 연결된 세계를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재예(메사추세츠 주립대)는 <확장과 누락: 전시 성폭력 연구에 대한 고찰과 제언>이라는 주제로 최근 전시 성폭력 연구가 지닌 문제점을 검토하였다. 각 지역의 정치와 역사의 맥락을 거세한 전시 성폭력 연구로는 반복되는 가해에 대한 방지와 피해자의 구제 및 정의 구현이라는 실천 목표를 이룰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일본의 연구와 실천 활동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후지메 유키(오사카대)는 역사부정론에 대한 대응이나 당면의 실천 전략 속에서 일본군‘위안부’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인식이 굴절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위안부’ 문제에서 ‘공창’과의 차이나 ‘불법’에 대한 과잉 강조는 역사적으로도 사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을 위계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또한 각국 군대의 성폭력 사례를 함께 보는 것은 일본군‘위안부’문제에서 일본의 책임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연구자들은 역사적 실태를 직시하면서 초국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후지메 유키의 마지막 지적은 이번 국제학술회의의 목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 노력은 역사부정론의 공격과 경색된 한일관계 사이에서 높고 두터운 벽을 맞닥뜨리고 있는 것 같다. 관련 연구는 확장되지 못하고 제자리를 빙빙 도는 듯 하다. 기존의 연구와 실천의 성과를 존중하면서도, 재발 방지라는 목표에 이르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생산적 논의를 위해서 지난 과정을 성찰하고 논의 주제를 더욱 확장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발표와 토론을 거치면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각각의 연구와 문제의식이 서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번 학술회의를 시작으로 역사적 실태에 대한 ‘앎’은 더욱 공유되고 초국적 협력은 계속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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