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은 지난 2월 28일(월) ‘발굴 자료로 탐색하는 독도 연구의 새 지평’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2월 22일 일본 시마네현에서 개최한 소위 ‘죽도의 날’ 행사에 대한 대응으로 실시했다. 최근 일본은 영토·주권 전시관을 재개관하고 학습지도요령을 개정·발표하는 등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본 심포지엄에서는 연구자들이 일본과 미국 등에서 발굴한 사료를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그 성과를 발표했다.
심포지엄은 이영호 재단 이사장의 환영사와 최재목 영남대 독도연구소장의 축사로 시작했다. 제1부는 주제발표로 일본과 미국에서 소장한 사료를 발굴해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김재한 한림대 교수의 사회로 재단 박한민 연구위원과 김종근 연구위원이 각각 ‘1870년대 해외 기록에 보이는 울릉도·독도와 태정관지령’과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소장 「해동전도」와 독도’를 발표했다. 이어서 영남대 독도연구소 송휘영 교수와 박지영 교수가 각각 ‘한말 울릉도·독도 어장의 경합과 닛쇼조합(日商組合)’과 ‘죽도어렵합자회사 설립과정과 독도 편입’을 발표했다. 토론에는 방광석 교수(홍익대), 김희연 박사(고려대), 김윤미 교수(부경대), 최보영 교수(용인대)가 참여했다. 제2부는 종합토론으로 재단 정영미 독도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이성환 교수(계명대), 오상학 교수(제주대), 한철호 교수(동국대), 유하영 연구위원(재단), 홍성근 연구위원(재단)이 참여했다.
나가사키(長崎)와 태정관지령·「해동전도」
박한민 연구위원은 1870년대 나가사키 지역에 주목해 관련된 인물들이 남긴 공문서, 편지, 신문기사를 검토했다. 이 가운데 내무경이 나가사키 현령에게 보낸 회신을 통해 태정관지령이 일본 정부 안에서 효력이 있었음을 밝혔다. 김종근 연구위원은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소장 「해동전도(海東全圖)」를 발견하고 독도 표기를 포함해 지도학적 관점에서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내용은 <동북아역사재단뉴스> 4월호 동북아포커스에서 상세히 다루었음).
강치어업과 어민들의 경합, 독도 편입
송휘영 교수와 박지영 교수는 시마네현 독도 편입 전후 시기 울릉도·독도 어장을 둘러싼 일본 어민집단의 경합에 주목했다. 송휘영 교수는 일본상인조합인 닛쇼조합(日商組合)의 형성되는 과정과 나카이 요자부로(中井養三)가 독도 어장을 독점하는 과정을 밝혔다. 시마네현 소장 「죽도일건서류(竹島一件書類)」 중 어렵 관련 문서와 당시 부산 일본 영사관의 「통상휘찬(通商彙纂)」을 검토했다. 송휘영 교수는 “닛쇼조합은 울릉도에 체류한 일본인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했다”고 말하며 “이들은 울릉도와 주변 어장에서 발생한 오키(岐) 도젠(島前)과 도고(島後) 출신 일본 어민들 간 분쟁을 해소하는 역할을 했다”고 했다. 송휘영 교수는 「통상휘찬」제234호(1902)로 울릉도 재류 일본인을 출신지와 거주지, 성별, 계급별, 직업별로 구분하고 도항자는 산음지방 출신이 70%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규슈지방 14.6%, 기타 15.4%라고 했다. 송휘영 교수는 “1905년 독도 강치어렵이 가속화하면서 ‘죽도어렵합자회사(竹島漁合資會社)’에서 독점권을 부여받았다”고 했다.
박지영 교수는 나카이 요자부로라는 인물에 주목해 시마네현의 독도 편입 경위와 ‘죽도어렵합자회사’의 설립 과정을 밝히고 「죽도대하·해려어업서류(竹島貸下・海驢漁業書類)」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1905년 독도 영토 편입 각의 결정 이후 나카이 외에 3인은 시마네현에 죽도어렵허가 청원을 제출했으며 오키도사(岐島司)는 공동으로 어업을 권고했다. 나카이 외 3인은 공동으로 죽도 강치어렵허가 청원서를 제출하면서 ‘죽도어렵합자회사’ 설립했다. 박지영 교수는 결론으로 “시마네현에서 ‘죽도어렵합자회사’가 아닌 나카이 외 3명에게 죽도어업허가증을 교부했다”는 것과 “1906년 시마네현이 불법으로 편입한 독도와 울릉도 시찰을 했다”고 주장했다. 1906년 시마네현의 독도 및 울릉도 시찰 목적이 일본인 이주를 통한 식민을 고려한 점도 지적됐다.
자료의 발굴과 치밀한 실증연구의 모색 - 독도 연구의 ‘새 지평’을 향하여 -
종합토론에서 정영미 독도연구소 소장은 사료가 지닌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에 대하여 높이 평가했다. 이성환 교수는 “기존에는 주로 일본 산음(山陰)지방 사람들에게 초점을 뒀으나 나가사키에 주목한 점은 매우 흥미롭고 좋은 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으며 “‘자산’이라고 표기된 지도를 통해 안용복 진술에 신빙성을 준다는 지적은 의미가 있다”고 했다. 오상학 교수는 “「해동전도」가 국가 주도의 정보수집 사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토론자들은 발표에 대해 한국·일본·영미권의 문헌과 지도 등 사료를 발굴해 의미있는 분석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영호 재단 이사장은 자료의 발굴과 치밀한 실증연구에 대해 평가하면서 “발굴한 자료는 당시 상황을 면밀히 밝히고 고찰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히거나 자료를 발굴하는 작업은 매우 고되며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발굴한 자료의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심도 있는 분석과 비판적 사고가 요구된다. 반나절에 불과한 시간이었으나 연구자들의 노고와 장고의 시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심포지엄은 중진 연구자와 신진 연구자가 함께 독도 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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