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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제국과 의로운 민족
  • 심호성 재단 국제관계와 역사대화연구소 연구위원

2022년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웃나라인 중화인민공화국은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지향하는 정치·경제·사회적 가치의 측면에서 중국은 대한민국과 큰 차이가 있다. 더욱이 중국은 2010년대 이후 공격적이고 확장주의적인 군사·외교 정책을 본격화함으로써 여러 이웃나라에게 외교·안보의 측면에서 큰 위협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대한민국의 제1의 무역국이 된지 이미 오래라는 점에서 우리가 중국을 멀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중국이 중국몽(中國夢)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외치며 미국이 주도하는 기존 국제질서에 도전하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은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져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반가운 책이 나왔다. 미국 예일 대학교에서 근현대 동아시아 국제관계사를 가르치고 있는 오드 아르네 베스타의 제국과 의로운 민족(원제: Empire and Righteous Nation: 600 Years of China-Korea Relations)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이 동아시아 제국(帝國)’의 부활을 꿈꾸고 있는 지금 베스타는 한반도와 관련된 중요한 국제 문제를 포착하고 현재의 대안이 무엇인지를잘 파악하기 위해 동아시아 역사의 장기적인 전개 과정을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제국과 의로운 민족』



한반도와 중국: 600년 관계사

 

제국과 의로운 민족에서 베스타는 14세기 말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시기를 3부분으로 나눠 한반도-중국 간의 관계를 긴 역사적 관점에서 고찰한다. 이 책의 1장은 1392~1866년의 한반도-중국 간 관계사를 서술하고 있다. 이 시기는 중국의 명·청 제국이 동아시아의 명실상부한 패권국으로서 확고한 지위를 점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한반도의 조선은 중국 제국을 상국(上國), 혹은 종주국으로 인정함으로써 제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지역질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제국의 바깥에서 중국과 명확히 구별되는 독자적인 국가로 존속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조선이 중국 제국에 대해 정치적 자립성과 독자적인 민족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흥미롭게도 성리학적 가치와 세계관이었다. 2장은 1866~1992년의 한반도-중국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에 중국은 서구 열강과 일본의 연이은 도전 및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는 냉전체제의 등장으로 인해 동아시아의 패권국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였고, 그 결과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도 시대에 따라 완전히 소멸되거나 상당히 축소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중국을 통치한 청·국민당·공산당 정권은 모두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중심적인 지위를 회복하기를 원했고, 이러한 태도는 그들의 한반도 정책에도 반영되었다. 3장은 중화인민공화국이 대한민국과 정식 외교관계를 맺은 1992년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시기를 간략히 다루고 있다. 1992년의 한-중 수교를 계기로 중국은 19세기 말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한 이후 처음으로 남·북한 모두를 포괄하는 한반도 전체와 공식적인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말에 재건된 한반도-중국 간 관계는 과거 조선-중국 제국 간의 관계와는 매우 다른 성격의 것이었다.



중국은 한반도에 언제 그리고 왜 개입했는가?

    

역사적으로 중국은 동아시아의 패권을 둘러싸고 다른 세력과 경쟁했을 때에만 한반도에 군사적으로 개입했다. 16세기 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이 조선을 침공했을 때, 명 제국은 자신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충실한 일원이던 조선을 당시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바깥에서 명 제국의 패권에 도전하던 일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보다 현실적으로는 일본의 공격을 명 제국 동북부 지역에 대한 즉각적인 위협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조선에 군대를 파병했다. 17세기 초 청 제국은 명 제국과 동아시아의 패권을 다투는 과정에서 조선을 명 제국 중심의 동아시아 국제체제로부터 이탈시키기 위해 조선을 침략했다. 이후 청 제국은 중국 대륙전역을 정복하고 명 제국을 대체하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패권국으로 등장했다.


19세기 말에는 메이지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청 제국의 패권에 도전했고, 한반도는 청 제국과 일본 제국 간 패권다툼의 주 무대가 되었다. 양무운동의 진전으로 군사적 자신감을 회복한 청 제국은 한반도에서 기존의 상국(上國)으로서의 우월한 지위를 유럽식 제국주의 체제로 변환하고자 했다. 청 제국은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등을 계기로 조선에 군대를 주둔시켰고, 청일전쟁이 발발하기 전 10년간 조선에 머물렀던 청의 군관 위안스카이(袁世凱)(조선에서 사실상 총독으로 행세했다) 청 제국의 조선에 대한 전통적인 종주권을 서양 열강과 식민지 간의 관계와 유사한 것으로 바꾸려 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전쟁 도중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군과 한국군이 한반도-중국의 국경 부근에 도달하자, 중화인민공화국은 해당 국경 지역에 외국 군대가 주둔하면 중국 공산정권에 실존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 판단했고,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대규모 군대를 한반도에 파병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한반도는 중국으로 통하는 관문이기 때문이었다.

    


평화 vs. 전쟁: 한반도의 미래는?

    

이러한 역사로부터, 베스타는 남한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은 향후 한반도의 상황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한반도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가장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는 북한 정권이 갑자기 붕괴하는 것으로, 이 경우 중국은 북-중 국경지대에 완충지대를 확보하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리라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상황이 현실화된다면 한반도에서 국제적인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다.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이 가시화되고 있는 지금 베스타는 미래의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중국이 자국의 이익보다 동아시아 지역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민주주의 정부가 주도하는 한반도의 통일을 수용하며, 정권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 북한을 놓아주는 정책을 취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제국과 의로운 민족은 다양한 1차 사료를 정치하게 분석해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역사상을 밝히는 연구는 아니다. 아울러 베스타는 이 책을 저술하기 위해 한반도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본서의 한국사 관련 부분에는 다소간의 오류도 발견된다. 개인적으로는 베스타가 이 책에서 전근대 중국을 제국으로 규정한 이유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제국과 의로운 민족은 한반도와 중국의 역사에 대한 기존의 연구를 충실히 정리한 뒤 오늘날의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국제정세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돼 왔는지를 긴 호흡에서 고찰했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베스타는 한-중 관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던 (그리고 향후에도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장기적·역사적 패턴을 발견하는 데 있어서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미래의 한반도에서 전쟁을 예방하기 위한 그의 제언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한반도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역사와 국제정치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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