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장진호> 공식 포스터(Bona Film Group)
2020년 중국에서는 이른바 ‘항미원조 70주년’을 맞아 많은 영상물이 제작될 예정이었으나, 예상치 못한 코로나19로 인해 지지부진했다. 그러자 중국 미디어를 총괄하는 ‘광전총국(廣電總局)’은 ‘항미원조’ 콘텐츠 제작을 장려하기 시작했고, 지지부진했던 영상물 제작도 재개됐다. 이 중 주목을 끌었던 것이 영화 <금강천(金剛川)>, <장진호(長津湖)>, <저격수(狙擊手)>, 그리고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서(跨過鴨綠江)> 등이다. <금강천>은 촬영 시작 2달 만에 중국의 소위 ‘항미원조 기념일(10월 25일)’에 맞춰 개봉되면서 중국 전국적으로 거의 절반에 달하는 스크린을 할애 받았으나, 당해 흥행 순위 4위를 기록하면서 전폭적인 지원을 무색하게 했다. 그러나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서>는 첫 방영 시 비록 시청률이 1~2%에 지나지 않았지만,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면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중국 영화 흥행사의 신기원 <장진호>
그러나 가장 기대를 모았던 것은 <장진호>와 <저격수>였다. <저격수>는 <붉은 수수밭(紅高粱)>, <인생(活着)> 등으로 유명한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이 딸 장모(張末)와 함께 감독한 영화로, 일찌감치 촬영을 마쳤으나 후속 작업이 길어져, 결국 다시 해를 넘겨 2022년 2월 1일로 개봉이 미뤄졌다.
<장진호>는 중국의 첸카이거(陳凱歌)와 홍콩의 쉬커(徐克), 린차오셴(林超賢)이 공동으로 메가폰을 잡은 영화다. 우리에게 <패왕별희(王別姬)>로 유명한 첸카이거와 <황비홍(黃飛鴻)>으로 유명한 쉬커, 그리고 전쟁 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린차오셴 등 세계적인 거장이 합작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장진호>는 <저격수>와 달리 영화 개봉에 속도를 내어, 2021년 9월 30일에 정식 개봉됐다. 이후 홍콩, 싱가포르는 물론, 미국과 캐나다, 호주에서 정식 상영됐고,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도 개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에 힘입어, 영화는 개봉 전 ‘예매’만으로 1억 위안(한화 약 180억원)의 수입을 올렸고, 개봉 10일 만에 35억 위안(약 6,300억원)을 벌어들였으며, 최종적으로 57.60억 위안(약 1조 368억원)의 흥행 성적을 기록하면서, 기존 <전랑2(戰狼2)>(2017)가 갖고 있던 기록(56.81억 위안, 약 1조 225억원)을 갱신했다.
<장진호>와 중국의 소위 ‘항미원조’ 기억법
영화 <장진호>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함경남도 장진군 지역에서 미국 제1해병사단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과 중공군 제9병단에 속한 3개 군단 병력과 벌인 전투인 ‘장진호 전투’를 소재로 제작된 영화다. 당시 김일성 정부의 임시 수도였던 강계를 공략하기 위해 개마고원의 장진호 일대까지 진격해 갔던 유엔군은, 12만 명에 이르는 중공군에 포위돼 격전을 벌이다 흥남으로 철수했다. 공식적인 피해를 보면, 중공군의 인명피해가 훨씬 컸지만, 이 전투를 계기로 유엔군이 남쪽으로 철수를 시작했기 때문에, 중국은 중공군이 승리한 전투로 기억하고 있다. 특히 ‘불리한 여건’ 속에서 얻어낸 승리라는 의미에서 중국식 ‘항미원조정신’의 대표적인 사례로 일컫고 있다.
장진호 전투 중 중공군 저지선을 뚫고 이동하는 미 해병대(위키백과)
압록강을 건너는 중공군(출처 『해방군화보』 1977년 8월호 107쪽)
| 사상자 | 비전투요인에 의한 사상자 | 합계 |
유엔군 | 10,505 | 7,338 | 17,843 |
중공군 | 19,202 | 28,954 | 48,156 |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바로 ‘장진호 전투’에서 발생한 ‘비전투요인에 의한 사상자’다. 물론 이는 당시 영하 30도를 밑도는 이례적인 한파가 주된 요인이었다. 이렇게만 보면 이는 ‘자연재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유엔군과 중공군의 인명 피해를 비교해 보면, 중공군의 ‘비전투요인에 의한 사상자’ 수가 월등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를 단순히 자연재해에 의한 사상으로 볼 수 있을까? 결국 양측의 후방 보급의 차이에서 비롯된 ‘인재’적 요소를 무시할 수 없게 한다.
영화 <장진호>도 이러한 전력 차이를 여실히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방점을 찍은 것은, 바로 이러한 불리한 여건 속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이른바 ‘항미원조정신’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이 곧 세계적인 정신이라는 것을 강조라도 하려는 듯,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미 제1해병사단장 스미스가 전투자세로 동사한 중공군의 시체를 보고 거수경례 하는 장면을 굳이 삽입하는 무리수를 뒀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직시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이른바 ‘항미원조정신’이라는 것에는 수많은 희생이 전제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희생이 왜 발생하게 됐는가를 직시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 없이 그 ‘정신’만 강조하는 것은, 그 희생 속에 감춰진 ‘인재’적 요소를 애써 외면하며 그 책임을 감추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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