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사〉 교과의 도입과 재단의 역할
고등학교에 〈동아시아사〉라는 교과목이 도입된 지 약 10년이 지났다. 애초 생소한 교과목의 도입을 두고 논란과 우려가 적지 않았으나, 어느덧 학교 현장에 큰 무리 없이 정착한 듯하다. 사실 〈동아시아사〉라는 교과목의 도입은 교육과정에 대한 자성이나 역사학의 학문적 발전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정책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동아시아사〉는 이처럼 다소 거칠게, 어찌 보면 졸속으로 고등학교 교육 현장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실로 다이내믹하기 그지없어서 불과 10여년 만에 관련 논의와 연구가 축적되어 〈동아시아사〉가 당당히 역사 교육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동아시아사〉 교과목 정착에 지대한 역할을 한 기관이 동북아역사재단이다. 재단은 〈동아시아사〉의 도입부터 교과목과 교과서의 방향 설정을 주도하였다. 2008년, 새 교과목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교과서 시안을 발표하며 교과목의 체계 구성을 선도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9년부터는 동아시아사 교원 연수를 시작하여 현장 교사에 대한 재교육을 실시하였고,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동아시아사 교육 총서』(2010), 『동아시아의 역사 Ⅰ·Ⅱ·Ⅲ』(2011), 『동아시아사 교육 자료집』(2016) 등 동아시아사 교육을 지원하기 위한 서적 발간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왔다.
「동아시아사 교육자료집」 (2016)
학교 현장에서 〈동아시아사〉를 담당하는 교사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재단이 기획하여 발간한 자료집.
교사가 효과적으로 수업을 운영하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안내서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기획의 의도와 출간 방향
〈동아시아사〉 교과목은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를 주제별로 파악하는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한국사와 세계사의 중간에 서서 역사 인식의 범위를 단위 지역세계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이해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동아시아라는 지역의 통사가 아니라 주제별 비교를 통해 동아시아 역사의 구조와 동태를 파악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사〉가 기존의 〈한국사〉나 〈세계사〉와는 다른 역사 인식의 시각을 취하는 만큼 학교 현장에서 느끼는 당혹감은 적지 않았다. 〈동아시아사〉가 지향하는 주제별 심화 학습과 상호 비교가 내실 있게 진행되려면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에 대한 밀도 있는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 중등학교 역사 교육에서는 일본사나 베트남사, 내륙아시아사 등이 깊이 있게 다루어진 적이 없다. 이 때문에 현장의 역사 교사 역시 이들 지역의 역사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 재단이 발간한 『동아시아사 입문』은 동아시아사에 대한 기본적인 입문서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동아시아 세계를 구성하는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의 역사를 주제별로 서술하여 그 이해를 돕는다. 〈동아시아사〉를 가르치는 고등학교 교사는 물론이고 동아시아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반인을 주요 독자로 상정하고, 체계적이고 깊이 있으면서도 평이한 서술 방식을 취한다.
동아시아 세계의 지리적 범위
동아시아 세계는 한국과 중국, 일본뿐 아니라 몽골과 티벳, 베트남까지를 포괄한다. ⓒ천재교육
책의 내용과 집필자들
『동아시아사 입문』의 기획이 시작된 것은 2019월 3월의 일이다. 재단 김정현 연구위원을 비롯하여 숙명여자대학교 박진우 교수, 춘천교육대학교 김정인 교수 및 필자 등이 회합하여 10여 차례에 걸쳐 회의를 거듭하였다. 주제를 선정하고, 최적의 필자를 확보하여 전문성과 교양성을 겸비한 상태에서 가능한 한 평이하게 서술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이 책은 한국사, 중국사, 일본사, 베트남사를 아우르는 총 25개의 주제를 담았다.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동아시아사의 주요 사항을 망라적으로 포괄한다고 자임한다. 또한 각 주제별로 현 단계 우리 학계 최고 권위자들이 집필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사 입문』은 21세기 초 한국 학계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등학교 현장 교육에서의 활용 가능성
고등학교 현장에 〈동아시아사〉가 도입되었을 당시 역사과 교사들은 희망에 부풀었다. 2012년 전후 고등학교의 역사 교육은 학생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는 상태였다. 〈한국사〉는 서울대학교 입시 필수 지정 과목이었기 때문에 성적 최상위 집단을 제외하고는 대입 수능시험에서 선택하지 않았다. 또 〈세계사〉는 너무 많은 교과 내용을 담고 있어 어렵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였다. 역사 교과목은 대입 수능시험의 사회탐구영역에서 매년 응시율 최저를 다투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조금 만만해 보이는 〈동아시아사〉가 도입되자, 역사 교육의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고들 전망하였다. 실제로 그 당시 대입 수능시험에서 〈동아시아사〉를 선택한 학생이 대단히 많았다.
하지만 〈동아시아사〉 교과목이 도입되고 10년 여가 흐른 오늘날, 〈동아시아사〉를 선택하는 학생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역사 영역 전체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이에는 〈동아시아사〉가 지니는 교과목 자체의 난해함이 크게 작용하기도 한다. 주제사와 비교사라는 대단히 깊이 있는 역사 이해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 교사들이 〈동아시아사〉 교과목 지도에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 때문에 효과적으로 지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도 적지 않게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동아시아사〉의 효율적인 지도를 위해서는 교사들의 교과목 내용에 대한 이해, 그리고 동아시아학의 발전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사 입문』이 폭넓게 활용되어 고등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동아시아사〉 교육에 기여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창작한 '고조선부터 동아시아의 전후 처리까지 25개 주제로 풀어보는 동아시아의 역사'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