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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포커스
일본군‘위안부’ 피해 부정과 학문의 진실성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 박정애, 재단 한일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2021년 초 국제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램지어 교수 논문 사태는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이 겪은 전쟁범죄, 인종차별, 여성폭력을 근절하고자 일본군위안부역사 쓰기에 개입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피해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에 맞서 미래를 위해 싸우는 중이다. 가짜 역사를 배격하며 피해자의 기억을 기록할 때 공유해야 할 역사적 관점과 학문의 진실성 문제를 따져 물어본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다

『국제 법경제학 리뷰』 온라인에 공개된 램지어 교수의 논문. 

역사적 증거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음을 알리는 ‘우려 표명(Expression of Concern)’을 표기하였다. 

저널 측은 3월 말까지 램지어 교수에게 소명 기회를 주었다고 밝혔지만, 

학자들은 저널 측이 논문 게재 철회를 지연하기 위해 꼼수를 쓰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다시 반복된 위안부피해 부정


하버드대 교수 마크 램지어의 논문 태평양 전쟁의 성 계약이 일으킨 파문이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다. 사태를 복기해보자. 이 논문은 2021128일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 저널 산케이 신문이 처음 보도했다. “미국의 저명한 회사법 학자이자 일본 연구의 대가 램지어 교수가 전문 연구자의 평가를 거친 학술 논문을 발표했다. 이는 위안부=성노예설에 반대 의견을 내세워 논의를 전개한 의의가 크다.”는 논평과 함께였다. 아울러 문제는 조선의 모집업자라는 소제목으로 논문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했다. 20213월에 발간되는 국제 법경제학 리뷰65권에 실리는 이 논문은 20201128일 게재 승인을 받고 121일부터 온라인으로 제공되고 있었다.


21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경제학의 게임 이론을 기반으로 일본군위안부는 매춘부일 뿐, 성노예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학술지에 실었다는 사실이 한국 언론에 보도되며 램지어 교수 논문 사태가 시작됐다. 동시에 램지어의 교수직은 전범 기업인 일본 미쓰비시가 재원을 제공한 것이고, 그가 일본 정부의 훈장을 받기도 했다는 정보도 있었다.


연구자가 기업의 후원을 받았다거나 특정 국가가 주는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비난할 일이 아니지만, 연구는 성실한 선행 연구 검토와 충분한 근거 자료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특히, 학술지 게재 논문은 엄격한 동료 평가를 통해 연구 원칙 준수 여부를 심사받기 때문에 학술적 권위를 가진다. 따라서 논문의 외적인 요소를 가지고 논문을 평가하는 것은 사족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상식을 배반했다. 논문은 전쟁 전 일본 공창제 하의 면허 성매매 계약을 공들여 설명한 뒤, 전쟁 중에 한국인 여성들이 신뢰할 수 있는 약속에 기초한 계약을 맺고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식민지 조선의 공창제 하에서, 또 해외에서 한국인 여성은 주로 무면허 성매매에 종사했다는 앞뒤 안 맞는 주장도 이어간다. 아울러 속임수에 능한 한국인 모집업자에 연루되어 있었다고도 지적했다. 업자의 감언이설에 속아 위안부가 되었다면 이를 신뢰할 수 있는 약속에 기초한 계약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업자의 속임수가 당시 식민지 조선을 흔든 공공연한 문제였다면 한국인 여성에게 위안부되기를 허가한 일본 정부나 일본군은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일까? 국제 법경제학 리뷰는 왜 논리 비약과 자기 모순을 이루는 이 논문을 게재하기로 결정하여 스스로를 모욕하는 것일까.


 

우리는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다

모리카와 마치코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옥주를 인터뷰하고 저술한 증언집. 

램지어는 문옥주의 증언을 인용하며 증언집이 아니라 

한국의 우익 측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유령 블로그를 근거 자료로 달았다. 

그뿐만 아니라 문옥주의 증언 또한 자의적으로 재구성해서 사용했다.

 

 

 

미국을 무대로 한 일본 우익의 역사 전쟁과 램지어 교수


지난 한 달 동안 분석을 위해 문제의 논문을 보고 또 보며 필자는 어떠한 자괴감과 싸워야 했다. 부정의한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학술 논문으로 포장한 글을 학술적으로 따져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램지어의 글은 일본군위안부피해를 부정하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부정론자들이 쓴 글과 몹시 흡사했다. 논문의 목적은 위안부와 업주 사이에 이루어진 계약의 실체를 드러내고 위안부되기의 자발성을 게임 이론으로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 여성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위안부가 되었다는 피해 주장을 부정하는 데 초점이 있었다. 램지어 교수는 112재팬 포워드산케이 신문의 영문판위안부 여성에 대한 진실 되찾기라는 제목의 글에서 역사적으로 한국인 위안부 여성이 노예로 끌려갔다는 주장은 진실이 아니며 완전한 허구라고 못 박았다. 이는 산케이 신문에 보도되기 2주 전이었다.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을 반성하지 않는 일본 우익은 권력을 동원하여 과거사를 봉합하려 해왔다. 일본군위안부문제가 국제적으로 확산되자 그들은 미국을 주전장主戰場, main battleground으로 삼고, 그 피해를 부정하기 위한 역사 전쟁에 전력을 기울였다. 패권국 미국이 역사부정론자의 손을 들어준다면, 일본군위안부피해에 대한 역사적 책임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미키 데자키Miki Dezaki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에서 위안부피해 여성을 기억한다는 것은 인종 차별과 성 차별, 파시즘과 맞서 싸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을 무대로 한 일본 우익의 역사 전쟁은 멈추지 않았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 투고와 게재 결정, 그리고 온라인 공개, ‘한국인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라는 신문 기고, 산케이 신문의 보도, 하버드대 총장과 국제 법경제학 리뷰편집인의 램지어 교수 옹호까지 각각 개별로 일어난 듯 보이는 사건들이 하나로 엮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언론에 따르면 일본 우익의 주장에 동조하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최근 2년간 7편이나 작성되었다고 한다. 1998년에 얻은 하버드대 로스쿨 미쓰비시 종신교수 지위와 2018년에 받은 일본 정부의 국가 훈장인 욱일중수장이 현재의 램지어 교수 논문 사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된다.


미국은 1944년 8월 버마 미치나에서 한국인 ‘위안부’ 20명을 발견하고 심문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는 이 여성들이 ‘위안 행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버마로 왔고, 빚이 없어도 위안소에 잔류당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램지어는 이 보고서를 근거로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버마에 왔으며 계약이 끝나면 떠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1944년 8월 버마 미치나에서 한국인 ‘위안부’ 20명을 발견하고 심문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는 이 여성들이 ‘위안 행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버마로 왔고, 

빚이 없어도 위안소에 잔류당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램지어는 이 보고서를 근거로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버마에 왔으며 계약이 끝나면 떠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학술의 권위를 쓴 가짜 정보


램지어 교수 논문 사태는 여러 가지 새로운 의미가 있다. 우선 일본군위안부피해를 부정하는 방식이 과거 역사부정론자와는 다르다. 램지어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학술 논문 형식으로 작성하고, 동료 평가를 거쳐 우수한 사회과학국제학술지(SSCI)에 게재하였다. 그는 일본법에 정통한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라는 지위로 자신의 주장을 경청하게 했고, 경제학의 게임 이론을 도입하여 위안부역사를 분석했다는 설명으로 연구자를 멈칫하게 했다. 일본군위안부역사 전공자인 필자가 일본 정부·일본군·업주와 위안부간의 계약 관계를 증명하는 문서를 본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필자는 게임 이론을 이해하지 않고는 램지어의 논문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조언을 들었다. 필자가 이해하는 계약이 경제학에서 의미하는 계약이 아니므로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조언도 있었다. 부모나 업자가 주도한 인신매매에 대한 연구를 읽어보라는 조언또한 있었다. 필자가 논문이나 학술대회에서 일제 공창제 하의 인신매매 메커니즘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램지어 사태가 사람들의 인식을 역사 부정으로 기울게 하는 램지어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듯한 위기감이 들었다. 그즈음 미국 학계를 중심으로 그의 논문의 오류를 지적하는 한국사, 동아시아사, 일본사 연구자의 영문 반박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업자와 위안부간의 신뢰할만한 계약을 내세워 위안부의 자발성을 주장하는 램지어의 논문이 정작 그 증거인 위안부계약서를 한 장도 내놓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왜곡, 허위 진술, 자료 오독, 증거 자료 누락이라는 심각한 부정확성은 단순한 오류를 뛰어넘어 논문의 주장을 훼손하고 타당성을 무너뜨린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위안부의 자발성을 주장하기 위해 피해자의 구술을 자의적으로 취사선택해 인용한 것은 심각한 연구 윤리 위반이요, 학문적 진실성을 해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논란을 부르거나 정치적으로 불편하더라도 탄탄한 증거에 기반한 연구는 토론 대상이지만, 램지어의 논문은 그러한 사례가 아니므로 저널 측이 논문 게재를 철회해야 한다고 했다.


3천 명이 넘는 경제학자들 또한 램지어의 논문을 비판하는 연판장에 서명했다. 이들은 게임 이론과 법경제학이 역사적 잔혹 행위를 합법화하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없으며, 역사적 설명은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램지어의 논문은 역사 속에서 계약이라는 말이 강압과 착취 관계를 은폐하기 위해 남용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으며, 과거 일본 민법이 만 20세 미만이 자기 의지로 계약 체결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한 사실도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램지어 사태이전까지 위안부피해에 관한 부정을 둘러싼 공방은 학술 공간 외부에서 공전하다 사그라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잊을만하면 다시 이슈로 떠올라 비슷한 공방이 반복되곤 했다. 그러나 램지어 사태는 학술 공간 내에서 벌어진 일로, 학자들은 연구 윤리와 학문의 진실성이라는 원칙으로 이에 대응한다. 그의 논문은 위안부피해를 부정하기 위한 목적을 위해 엄격한 연구 윤리를 공유하며 지식 생산의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고자 한 연구의 기본 원칙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이제 문제의 초점은 논문 자체에서 저널 측의 책임 있는 대응으로 이동했다. 국제 법경제학 리뷰는 경제학의 게임 이론 적용도, 증거로 뒷받침할 역사적 설명도 실패한 이 논문이 저널에 실리게 된 사정을 누구나 납득하도록 설명할 책임이 있다. ‘램지어 사태는 역사적 논쟁을 위해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관점과 연구 윤리가 무엇인지 묻는 램지어 현상으로 이행하고 있다. 연구자와 시민들이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따져 묻고, 비판하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44년 8월 버마 미치나에서 한국인 ‘위안부’ 20명을 발견하고 심문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는 이 여성들이 ‘위안 행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버마로 왔고, 빚이 없어도 위안소에 잔류당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램지어는 이 보고서를 근거로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버마에 왔으며 계약이 끝나면 떠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한·중 평화의 소녀상 세안식

계성고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2월 25일 오전 서울 성북구 분수마당에서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 망언 논문 규탄 피케팅을 하기에 앞서 

이전 설치된 한·중 평화의소녀상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는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다


역사학자인 테사 모리스 스즈키Tessa Morris Suzuki일본군 위안부 이슈,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진실성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램지어의 논문을 강하게 비판했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받아야 하지만, 학문의 진실성 위에서 논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지적 기반도 없이, 음모론이나 가짜 뉴스에 관하여 논쟁하며 삶을 낭비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일본군위안부문제는 무엇이고, 우리는 왜 이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일까. 여성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강요된 선택을 해야 하는 정치·경제적 환경과 사회 규범 안에 놓여있을 때, 폭력이 여성의 삶을 얼마나 지배하는지를 역사에서 배우기 위해서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폭력 상황 속에서 여성의 성적 도구화가 위안이라는 기만적인 용어로 수식될 수 있음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그리하여 피해 여성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며 바랐듯이 폭력의 시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저널 측을 비롯하여 램지어의 논문을 옹호하는 세력이 만들고자 하는 미래는 우리가 바라는 미래의 반대길에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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