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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양웅의 『방언』 수록 고조선어에 대한 비교언어학적 연구, 신간 『고조선의 언어계통 연구』
  • 김인희 (재단 북방사연구소 연구위원)

양웅의 『방언』 수록 고조선어에 대한 비교언어학적 연구, 신간 『고조선의 언어계통 연구』양웅의 방언에 수록된 고조선어 32

고조선!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듯이 고조선은 한 민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이다. 그러나 현재 건국 시기가 언제인지, 수도인 평양은 어디에 있었는지, 고조선의 강역은 얼마나 넓었는지 등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이는 고조선과 관련된 문헌 자료가 지극히 소략하고, 발굴된 고고 유적과 유물은 고조선의 구체적인 상황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한나라 사람 양웅이 제작한 『방언』에 등장하는 고조선어 32개에 관한 연구는 고조선의 실체에 다가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고조선어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한 고조 선인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고조선인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들이 창조한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이며, 사람과 문화를 담은 고조선이라는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제 고조선의 실체에 한 걸음 더 다가 갈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언어의 보수성과 고조선어 연구의 가능성

언어는 집단 내 성원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생산해 낸 사회적 약속이다. 고조선어에는 고조선인의 사유와 그들이 형성한 문화가 담겨 있어, 언어 연구를 통해 고조 선인의 사유와 문화를 탐구할 수 있다. 그리고 언어는 언어 공동체가 교류할 때 필요로 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변화가 완만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언어가 돌발적으로 변화하면 소통이 불가능하기에 언어는 쉽게 폐지되지 않으며 오직 점진적이고 연속적으로 변화한다. 이와 같은 언어의 보수성은 한 언어 공동체가 다른 언어 공동체와 차별되도록 하기 때문에 고조선어와 현대 언어의 비교 연구가 가능한 것이다. 본 서에서는 고조선어와 현대 한국어, 몽골어, 만주어, 어원커어(语)에 대한 비교 연구를 시도하였다.



『고조선의 언어계통 연구』의 주요 내용

양웅의 『방언』 수록 고조선어에 대한 비교언어학적 연구, 신간 『고조선의 언어계통 연구』2장에서는 조재형 교수(전남대)가 한국 내 고조선어 연구 경향과 성과를 정리하였다. 고조선어 연구는 식민지 시기 역사학자들이 민족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주도하였으나 방법론상의 문제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근래에 와서 초기 연구에 대한 검증 없이 이를 그대로 인용하는 것도 커다란 문제이다.


3장에서는 김인희 연구위원이 역사 연구에 언어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안재홍은 기, 지, 치 이론을 활용하여 기자조선설을 부정하고자 하였는데, 연구 결과 고구려 시기에는 왕을 의미하는 단어가 개차(皆次)로 발음되어 기자는 왕을 뜻하는 우리말일 가능성 이 크나, 관련 단어를 고조선어에서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언어학적으로 고조선에서 기자이라는 의미의 보통명사였을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 것으로 만약 이러한 사실이 증명된다면 기자조선설은 부정될 수 있을 것이다.


4장은 4편의 글로 구성된 본서의 핵심 부분으로 『방언』에 수록된 고조선어와 주변 민족의 언어를 비교하여 고조선어의 언어계통에 대해 살펴보았다.

1절에서는 이연주 교수(강원대)가 『방언』 수록 고조선어에 대한 중국 내 연구 성과를 살펴보았다. 중국학계는 당시 동북지역이 중원과 정합적인 일체를 형성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러한 관점은 언어 연구에도 영향을 주어 고조선이 속한 동북지역이 연나라의 영향을 받은 한어 방언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절에서는 이성규 교수(단국대)가 고조선어와 몽골어를 비교 연구하였다. 『방언』 수록 고조선어 중 몽골어와 연결 가능한 것은 14개로 대략 44%에 달한다. 따라서 당시 조선·열수 지역에는 한국어와 몽골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함께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3절에서는 김양진 교수(경희대)가 고조선어와 만주어를 비교 연구하였다. 『방언』에 수록된 고조선어 중 음성적으로 만주어와 유사한 것은 1개뿐으로 대략 5%이다. 이에 비하여 고조선어와 한국어의 유사성은 37%로 한국어와 친연성이 높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고조선어는 만주어 보다는 한국어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4절에서는 엄순천 교수(성공회대)가 고조선어와 어원커어를 비교 연구하였다. 『방언』 수록 32개 단어 중 중국어에서 고조선어로 유입된 단어와 의성어, 의태어를 제외 한 22개 단어를 비교한 결과 명사 중 유사성이 있는 것 은 46%이고, 동사 중 유사성이 있는 것은 45%이다. 전 체적으로 볼 때 유사성이 있는 단어와 없는 단어의 비율 은 45:55로 거의 비슷하였다.


한편, 5장에서는 고조선어와 동북지역 언어의 친연 관계에 대하여 엄순천 교수가 집필하였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학계에서는 고조선이 속한 동북지역이 연나라의 영향을 받은 한어 방언권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연구 결과 조선, 열수, 북연, 연의 동북, 연의 북부 지역은 동일 언어 문화권이 었으며, 조선은 조선·열수 지역에서 독립적인 언 어권을 형성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 22개 고조선어와 한국어를 비교하면 유사성이 있는 단어는 12개로 54%에 이르러 몽골어의 44%, 만주어의 5%, 어원커어의 46%보다 높은 비율로 나타나 고조선어는 현대 한국어와 가장 긴밀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한국인이 고조선의 중심민족이었으며, 한민족이 고조선이라는 국가를 계승한 민족임을 추론하게 한다.

셋째, 『방언』 수록 고조선어와 몽골어, 어원커어 사이에서 발견되는 유사성에 근거할 때 고조선어 혹은 한국어가 몽골어, 어원커어와 동일한 알타이 어족이거나 알타이조어에서 기원하였을 가능성 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알타이어족 설이 성립할 가능성도 보여준다.



본서의 한계와 의의

본 연구는 『방언』에 수록된 고조선어 32개를 대상으로하여 연구의 대상이 매우 제한적이며, 이천여 년 전의 고조선어와 현대 언어를 비교 연구하였다는 점에서 한 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고조선어에 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연구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현재 가능한 연구를 찾아보자는 의미에서 용기를 내보았다. 우리 연구가 고조선어 연구를 활성화하는 데 초석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