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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항일전쟁과 한중 공동항일역사’ 국제 학술회의 및 유적지 탐사 - 독립과 자유, 민주와 공화를 향한 고난의 길을 반추하다 -
  • 장세윤(한일관계연구소장)

재단 한일관계연구소는 지난 526일 중국 상하이(上海) 푸단대학(復旦大學)에서 푸단대 역사학계와 공동으로 항일전쟁과 한중 공동항일역사-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학술회의는 2019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시정부로 약칭)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재단이 준비하는 3개년 사업의 일환으로 기획·추진되었다.

 

 

재단-중국 푸단대가 공동개최한 국제 학술회의

‘항일전쟁과 한중 공동항일역사’ 국제 학술회의 및 유적지 탐사학술회의는 김호섭 재단 이사장의 개회사, 천안(陳雁) 푸단대 역사학계 학과장의 환영사에 이어 제1부 신복룡 건국대 교수의 사회로 4개 주제발표와 지정토론을 진행하고, 2부 이택휘 전 서울교대 총장의 사회로 지정토론자 외 참가자도 함께하는 종합토론을 진행하였다. 회의는 예정된 시간을 초과해 4시간이 넘도록 활발한 발표와 토론이 이루어졌으며 푸단대 대학원생과 부근 대학 연구원들도 참관하는 등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발표·토론자와 주요 발표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한시준 단국대 교수가 ·중의 일제 침략에 대한 공동항전을 발표했는데, 토론은 마젠뱌오(馬建標) 푸단대 역사학계 교수가 맡았다. 한 교수는 한국()과 중국()의 만주와 중국 관내·화북(華北)지역에서의 한·중 공동 항전을 규명하고, 이러한 공동 항전이 중요한 의미가 있으므로 한·중 양국의 공동 자료수집과 연구, 이를 바탕으로 한 동아시아 및 세계 평화 기여 정책 모색, 일본의 역사왜곡 등에 대한 공동 대응을 제안하였다.


다음으로 주친(朱芹) 푸단대 국제문제연구원 연구원이 ·중 공동 항전 중 임시정부 승인 문제를 발표하고 양승태 이화여대 교수가 토론을 맡았다. 주친 연구원은 중국 국민당 정부는 1940년대 전반기 항전 기간 동안 줄곧 임시정부를 승인하려고 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끝내 승인하지 못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양 교수는 이견을 개진하였다. 이어서 쑨커즈(孫科志) 푸단대 교수가 중국 학계의 한국 임시정부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토론은 김명섭 연세대 교수가 담당하였다. 쑨 교수는 중국 학계의 임시정부 연구 성과가 주로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상하이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나, 아직 본격적인 연구가 적고 전문 저작집이나 자료집 발간도 미흡하다고 지적하였다.


끝으로 박걸순 충북대 교수가 중국 내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 현황과 과제를 발표하고, 허동현 경희대 교수가 토론을 맡았다. 박 교수는 중국 관내의 상하이·항저우(杭州창샤(長沙류저우(柳州충칭(重慶)에 복원된 청사와 전시관을 개관하고, 향후 50여 년에 걸친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세계기록유산으로 신청,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 재단 서현주 연구위원은 종합토론에서 임시정부 활동과 유적을 도시사적 관점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함께 자리한 이종찬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추진위원장도 생생한 증언과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번 국제 학술회의는 임시정부가 처음 세워진 상하이에서 중국의 명문대학인 푸단대와 공동으로 중국인 학자들과 함께 임시정부에 대해 발표·토론, 교류하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과 중국 항일전쟁 및 세계인류·평화에 대한 기여, 그 세계사적 의미와 향후 과제 등을 깊이 있게 논의했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학술적 성과를 거두었다고 판단된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 주요 유적지 탐방  


‘항일전쟁과 한중 공동항일역사’ 국제 학술회의 및 유적지 탐사


참가자들은 학술회의를 마친 뒤, 527일부터 29일까지 충칭·시안의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 관련 항일전쟁 유적지를 현지 조사하고 토론함으로써 향후 관련 연구와 사업의 진전을 위한 탐색의 시간을 가졌다.

1932429일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임시정부는 상하이를 떠나 중국 관내 10여 곳을 전전해야 했는데, 194010월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이 바로 충칭이었다. 현재 이곳에는 상당한 규모를 갖춘 임시정부 청사가 복원, 활용되고 있다. 또한 산시성(陝西省)의 성도인 시안(西安)은 임시정부 산하 정규군인 한국광복군 제2지대가 활동한 곳인데, 특히 미국 OSS(정보전략처, CIA의 전신)의 지원을 받아 김준엽·장준하 등 광복군 요원들이 국내 침투작전을 준비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지역이다. 때문에 529일 시안 종난산(終南山) 기슭의 미퉈구시(彌陀古寺) 유적 조사 때는 지금까지 한국인 연구자나 탐방객이 거의 가보지 못한 절 뒤의 험준한 계곡과 바위 절벽 근처까지 접근하여 당시 광복군 OSS 대원들의 훈련장과 훈련 방법 등을 토론하고, 그 위치를 비정해보는 귀중한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일제가 패망한 직후인 1945818일 김준엽, 장준하 등 광복군 6명이 중국전구 미군사절단과 함께 중국 시안에서 C-47 수송기를 타고 서울 여의도공항에 착륙했으나, 일본군이 별다른 지시를 받지 않았다고 하여 다음날 눈물을 머금고 되돌아온 사연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이제 독립을 넘어 통일된 자주적 민족국가를 세우고자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고귀한 이상과 험난한 여정을 되새기며, 오늘날 한반도의 엄중한 현실과 우리의 당면 과제를 냉철히 파악하고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특히 2019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일 동북아시아의 세 나라가 역사·영토 관련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 상호 이해를 심화하면서 공동 번영과 평화를 모색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