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에 위치한 바다의 국제적 통용명칭을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의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공유하는 바다 이름에 대해 양국이 합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랜 시간 동해 표기 문제를 연구해 온 이기석 서울대 명예교수에게 독도와 동해 표기 문제에 대한 해법을 들어보았다.
대담 : 곽진오 독도연구소 연구위원
이기석 (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 사대 지리과와 미네소타주립대 지리학 석사·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서울대 지리교육과 교수, 미국 미네소타주립대 명예객원교수, 대한지리학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서울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동해연구회 고문,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다. 주요 저서로 《두만강 하구 녹둔도 연구》(공저), East Sea in Old Western Maps(공저), 《지도로 본 서울》(공저) 등이 있다.
Q1. 교수님, 먼저 건강과 근황을 여쭙고 싶습니다. 최근 관심사나 하고 계신 일은 무엇인가요?
이기석 우선 이런 자리에 초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보시다시피 건강은 양호한 상태입니다. 최근에는 교수 재직 시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던 연구 주제인 ‘우리나라 고대 도시의 발달 과정’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주요 고대 도시는 북한과 중국에 있어서 1990년 이전에는 답사 자체가 불가능했지요. 중국이 개방되면서 집안(集安)과 발해 지역을 비롯해 여러 곳을 돌아보며 관련 자료를 정리하는 기초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자가 보는 도시와 지리학자가 다루는 도시는 다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또 틈틈이 독도와 동해 명칭 문제와 관련된 자문에 응하고 있는데, 지금도 외교부 독도 정책 자문위원 역할을 수행하는 중입니다.
Q2. 원래 지리학을 전공하셨는데, 특별히 동해 표기와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신 계기가 있을까요?
이기석 독도와 동해는 대한민국의 영토 . 영해 명칭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지리학자라면 누구나 관심을 갖는 분야이고, 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리학자들은 독도나 동해가 대한민국의 영토 주권이 미치는 곳이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도 이 주권이 훼손되는 것을 방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지리학자뿐만 아니라 역사학, 국제정치학 등 관련 학문을 연구하는 모든 학자들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독도의 영토권 수호와 동해 명칭의 정체성을 되찾는 문제는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특별히 동해 표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91년 대한민국이 UN 회원국에 가입한 후 1992년 UN 국제지명전문가회의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우리 정부가 처음으로 동해 표기 오류에 대해 공식적인 시정 요청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새로운 지명을 표준화하는 데에는 단지 요청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관련국과의 많은 협의 과정, 관련 결의안 요건의 충족 등이 필요하죠. 그래서 제가 1994년 뉴욕에서 열린 UN 국제지명전문가회의에 민간대표로 참석하도록 정부로부터 여러 차례 권고를 받았던 것이 이 문제에 깊이 관여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이후 2012년까지 한국 민간 전문가 대표로 일하게 되었고, UN뿐만 아니라 해양 지명을 관리하는 IHO(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 국제수로기구) 총회에도 참석하며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게 되었습니다.
Q3. 동해 표기와 독도 영유권 문제는 한·일 간 첨예한 사안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이기석 특별한 원인이 있다기보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던 과거가 오늘날 이러한 문제를 불러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1929년 IHO에서 세계 바다의 명칭을 표준화한 소책자 Limits of Oceans and Seas(해양과 바다의 경계)를 발간할 당시, 동해가 일본해로 잘못 표기되면서 오늘날까지 여러 지도가 이 명칭을 쓰는 것이거든요. 마찬가지로 독도도 1905년 2월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화되는 과정에서 일본이 독도를 몰래 자국의 영토로 편입하여 ‘다케시마’라는 지명을 사용한 뒤로 자기들 땅이라는 주장을 펴는 상황입니다. 사실 19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바다와 섬 이름은 지도 제작자의 다양한 정보에 따라 표준화 되지 않은 채 표기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제의 식민지하에 있을 때 IHO 총회에서 바다 이름의 표준화를 실시함에 따라 동해 명칭이 일본해로 바뀌게 된 것이죠. 또한 1905년 일본의 독도 불법 편입으로 독도의 고유 명칭을 잃었던 것입니다. 영유권이나 명칭의 문제는 일제 식민지하에 있었던 상황인데, 이제 동해와 독도의 지리적 . 경제적 중요성이 급속히 부각되자 분쟁화를 시도하려는 일본의 의도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Q4. 동해연구회 회장을 역임하셨고 현재 고문으로 계신데 우리 국민들이 독도 영유권에 대한 관심에 비해 동해 표기 문제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동해 표기의 중요성과 현황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면요? 학회 설립 후 이룬 성과도 궁금합니다.
이기석 우리 국민들의 독도 영유권이나 동해 표기 인식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국민 중 누구도 독도나 동해가 우리의 영토이고 이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문제는 대외적으로 국제 사회의 인식이 뒤떨어진다는 것인데 사실 독도는 아주 작은 섬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출간되는 많은 소축척 지도에서 널리 표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해 표기 오류 역시 우리 정부와 전문가들이 문제를 인식한 게 1950년을 전후한 시기였고, 이것의 국제적인 시정 작업에 대한 논의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요.
우리 민족은 2,000년 이상의 긴 시간 ‘동해’라는 명칭을 사용해왔고 이는 한 번도 바뀌었던 적이 없습니다. 단지 우리는 국제적으로 동해가 어떤 명칭으로 불리는지를 알지 못했고, 우리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지도를 널리 배포해 동해라는 명칭을 널리 홍보하지 못했던 것뿐입니다. 게다가 1960~1970년대만 해도 이런 문제들이 국내에서 이슈로 부각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고요.
동해연구회 설립 후 이룬 성과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하나는 국제 사회에 동해 표기가 잘못되었다는 사실과 그 역사적 배경을 알리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입니다. 이제 대부분의 언론이나 학계에서 동해 명칭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 표기 오류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뒷받침할 전문가들의 노력은 아직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성과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활성화되지 않았던 ‘지리지명(geographical names)’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체계화한 점입니다. 연구회가 1997년부터 해마다 ‘바다 지명에 관한 국제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세계 유명학자들을 초청해 그들의 연구를 경청하고, 그들로부터 동해 표기 문제에 대한 의견을 수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거든요. 덕분에 지금은 지명과 관련된 전문가 세미나로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으며 전문성을 지닌 국제적 세미나가 되었습니다.
Q5. 동해 표기와 관련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오셨는데 현재 이러한 활동들의 성과는 어느 정도인가요?
이기석 동해연구회 발족 당시만 해도 유명한 세계지도책에서 동해 단독 표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연구회가 국제 세미나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조금씩 이 문제를 확산시키기 시작한 2000년에도 세계 100대 지도책의 동해 단독 표기와 병기는 단 2%에 불과했죠. 하지만 지난해인 2016년 조사에서는 세계 지명학자들이 선정한 세계 100대 지도책 중 거의 50%가 동해 단독 표기 혹은 병기로 시정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인데 어느 개인 혹은 정부가 나서서 거둘 수 있는 성과가 아닙니다. 그만큼 동해 표기의 정당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고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라고 봅니다.
Q6.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도발을 놓고 국내에서는 “무대응이 최선” vs “단호한 대응”의 두 견해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견해는 어떠신가요? 또 일본의 이러한 도발에 우리는 어떤 자세로 대응해야 할까요?
이기석 우리 영토에 대한 이웃나라의 잘못된 영유권 주장에는 어떤 형태로든 대응이 필요합니다. 무대응으로 일관하면 지금처럼 일본이 독도의 명칭을 ‘다케시마’로 바꾸고 계속 자국민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려 할 테니까요. 중요한 건 1945년 이후 일본 사람들이 독도에 올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독도가 우리 땅이다’라고 가르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걸 옳다고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에게도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언젠가 먼 훗날에는 지금 일본 정부의 행보가 역사적 오점으로 남겠지만 앞으로도 당분간은 일본이 이런 억지 주장을 계속해 나가겠지요. 결국 우리는 대내적으로 독도에 대한 영토 교육을 충실히 하면서 국제 사회에 차분히 우리의 영토임을 알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독도의 인문, 자연, 지리, 역사적 배경 등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책자들을 만들어 배포하는 노력도 계속 필요할 것 같습니다.
Q7. 2000년대 초반 ‘두만강 하구의 잃어버린 영토, 녹둔도(鹿屯島)’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신 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연구를 시작하셨으며 우리에게 녹둔도는 어떤 의미일까요?
이기석 녹둔도 연구는 중국과 우리나라 서해안에 형성될 지도 모를 경제협력권을 놓고 중국 동해안 일대를 답사하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1990년을 전후해 UN이 ‘두만강 개발계획’을 제안하면서 우리나라와 북한, 몽골, 중국, 러시아 등 다국적 학자들의 관심이 높았는데, 이와 관련해 개인적으로 현장 답사에 참여하던 중 두만강 하구 녹둔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죠. 녹둔도는 조선시대 우리나라가 개척하여 농사도 짓던 땅이었는데, 1860년 북경 조약 이후 영토 관리를 잘못해서 소련 땅으로 편입되어 버렸어요. 이후 우리 정부가 이 땅을 찾아야겠다는 노력도 하지 못한 채 결국 러시아 영토가 되고 말았죠.
지리적으로는 녹둔도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어서 정확한 위치나 면적은 아무도 모릅니다. 역사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지역인데 저는 녹둔도를 서울 면적의 1/8 정도로 보고 있어요. 녹둔도는 하천 모래 퇴적 지형으로 1930년대 이후 방치한 지역이기 때문에 지금 가 봐도 아무 것도 없어요. 일제 강점기에는 많은 한국인이 이곳으로 피난하여 잠시 머무르며 독립운동을 하던 근거지 중 하나였는데, 아직도 곳곳에 벼농사와 밭농사를 하던 흔적이 농가의 마을 터와 함께 남아 있죠. 현장 연구를 위하여 러시아 과학원의 협조를 받아 7년간 여섯 차례 답사한 후 관련 분석 자료를 남겨두었습니다.
Q8.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과 공존해야 하는 운명이다 보니 영토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지리학을 연구하는 후진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이기석 영토는 우리 삶의 기반이고 생활 터전입니다. 우리가 영토를 지키지 못하면 이민족(移民族) 생활을 해야 하니 어떻게든 이 영토를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우리 영토를 지키기 위해 지리학자, 역사학자, 정치학자 등 모든 분야 사람들의 협동 작업이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나라 정부 기관에 영토 관련 기구가 생긴 지도 불과 10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기구들은 좀 더 보강해야 하고, 해마다 우리 영토 관한 책자도 발간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영토에 대해 잘 안다지만 막상 지금 이어도가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거든요. 일본이 매년 외교청서와 방위백서를 통해 자신들의 영토에 대하여 홍보하듯, 우리도 ‘한국의 영토’라는 공식적인 간행물을 주기적으로 발간하여 대내외적으로 널리 알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동안은 우리가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영토 관련 연구들을 제대로 진척시키지 못했는데, 앞으로 후배 연구자들이 잘 해줄 거라 기대합니다.
Q9. 재단 출범 초기부터 자문위원과 이사로 오랜 시간 재단을 지켜봐 오셨습니다. 그동안 재단이 이룬 공과(功過)와 향후 재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기석 재단과의 인연은 제가 재단 전신인 바른역사기획단 발기위원이 되면서부터인데 아직 재단에 대한 평가는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은 재단이 설립 이후 당면 문제에 대한 대응 연구와 방향 설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고 보고, 이제부터 그간의 경험을 중심으로 심층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거든요. 한 가지 서둘러야 할 것은 재단이 독립 연구동을 확보하여 보다 진지한 연구 환경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현재는 공간이 부족하여 연구 환경이 열악한데,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재단의 역할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재단이 설립되고 지난 10년간 발전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재단이 있었기에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 더군다나 주변국 간 역사 문제와 영토에 관한 관심을 제고할 수 있었거든요. 특히 그간의 연구 실적에 관한 발간, 동북아역사자료실 개관 등은 이제 대내외적으로도 연구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그동안 재단이 해온 성과를 잘 분석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