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룬춘족은 중국 내몽골자치구(內蒙古自治區) 후룬베이얼시(呼倫貝爾市)와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싱안령(興安嶺) 일대에 거주하는 민족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지대에 걸쳐 살고 있으며 러시아에서는 ‘에벤키’라 부른다. 퉁구스 계통의 민족으로 인구는 만 명이 넘지 않으며 현재 이들의 문화는 절멸 위기에 처해 있다.
어룬춘족 학자들과 함께 이뤄낸 성과
이 책의 집필진은 중국인 연구자 3명, 한국인 연구자 4명으로 구성되었고 중국인 학자는 모두 어룬춘족으로 직접 수렵생활을 경험한 이들이다. 한여우펑 선생님은 수렵과 어렵문화, 우야즈 선생님은 역사와 사회 조직, 관샤오윈 선생님은 샤먼과 민간신앙에 대해 집필하였다. 어룬춘족 연구자들이 주로 정신 문화와 관련된 부분을 담당하였다면 한국 연구자들은 물질 문화와 관련된 부분을 담당하였다. 음식 문화는 김천호 선생님, 복식 문화는 조우현 선생님, 주거와 통과의례는 필자가 담당하였다. 곰신화와 곰신앙은 이후 단군신화와의 비교연구를 위해 한국 측 서영대 선생님이 담당하였다.
수렵민의 삶에 대한 생생한 보고
현재 어룬춘족은 1950년대 초 하산(下山)정책에 의해 수렵을 그만 두고 농경 중심의 정착생활을 하고 있다. 따라서 어룬춘족의 수렵문화는 이제 마지막 여명을 남기며 역사의 긴 터널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후의 수렵민 어룬춘족》은 어룬춘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쓰인 입문서로 매우 개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어룬춘족의 분포, 언어, 역사, 사회 조직, 생산 활동, 의식주, 통과의례, 샤머니즘, 민간신앙, 신화, 현재의 변화상 등 다양한 내용을 포괄하여 어룬춘족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어룬춘족은 퉁구스어를 사용하며 고대 실위에서 기원하였다. 무쿤(穆昆)이라는 씨족연맹 조직이 있고 1년에 한 번 무쿤대회를 열었다. 수렵을 중심으로 어렵과 채집을 보조적 생산방식으로 채택하였는데 수렵에 대한 그들의 세밀하고 심도 있는 지식은 경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노루를 비롯한 동물가죽으로 옷을 해 입고 사냥한 야생동물을 구워 먹으며 우리네 움집과 유사한 ‘셰런주(斜仁柱)’라는 이동식 가옥에서 생활한다. 출산을 부정시하여 산모는 ‘야타주(雅塔柱)’라는 산옥에서 아이를 낳아야 하며 아이는 요람에서 키워진다. 혼례는 신랑이 신부의 집에 머물며 노동력을 제공하는 데릴사위제가 보편적이며 형사취수가 가능하고 혼외관계를 철저히 응징한다. 장례는 나무 위에 시신을 걸어놓아 자연 부패시키는 수장(樹葬)을 실시하였다. 1950년대 미신척결 운동에 따라 샤먼들이 신을 보내는 굿을 하여 모시던 신들을 모두 보냈기 때문에 활발히 전승되지 않으나 최후의 샤먼 관커우니(關扣尼)를 만나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곰으로부터 기원하였다는 다양한 신화를 가지고 있으며, 곰고기를 다같이 먹을 때는 곰을 속이기 위해 까마귀 소리를 내기도 한다.
어룬춘족은 중국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수렵 중심의 생활을 유지해 온 민족이다. 따라서 어룬춘족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연구는 고대 동북아시아 수렵문화의 비밀을 푸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한국 고대문화 연구의 기초자료 제공
어룬춘족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고대 수렵문화를 이해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어룬춘족의 조상은 고조선, 부여, 고구려와 이웃으로 살아온 사람들로 고대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무쿤대회의 경우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과 비교연구가 필요하다. 복식에 대한 연구를 통해 고구려 복식 중 점 문양이 어룬춘족의 꽃사슴 가죽을 이용한 복식과 유사성이 있음을 확인하였으며, 모카신 제작기법을 사용한 부츠형 신발에서도 공통점을 발견하였다.
‘마루’는 어룬춘족 언어로 ‘존귀하다’ 또는 ‘신성하다’는 의미로 세런주 입구의 맞은편을 말한다. 마루에는 다양한 신들을 모시며 여성들이 접근하지 못하는데 일찍이 일본 학자는 한국의 ‘마루신앙’과 비교가 필요함을 언급한 적이 있다. 또한 혼례에 있어 데릴사위제, 형사취수, 혼외관계에 대한 엄격한 처벌은 부여나 고구려의 혼례문화와 비교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어룬춘족의 곰신화와 곰신앙의 경우 단군신화와 비교연구가 필요함은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