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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역사도시 이야기
근대사의 고통을 품은 고도, 난징
  • 공원국(작가)

난징(南京). 황금의 언덕(금릉, 金陵)이란 별칭을 가진 이 고도가 갖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대하 장강이 도시를 가로지르며 풍요를 더하고 책을 펼치지 않아도 아담한 언덕을 꽉 채운

고목들이 도시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겨우 몇백 년 전 친화이허(秦淮河)에 떠 있는 배들은 밤낮을 잊고 문인지사들은 강남의 풍요와 타락을 찬탄하면서도 우려했던 곳, 이곳은 강남 최고의 고도 난징이다. 손권이 건업(建業, 난징의 옛 이름)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명대 이래 난징은 기쁨()의 극지로 숭배되는 도시였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래의 근대사는 이 도시에게 슬픔과 고통의 극지라는 새로운 별칭을 안겨주었다. 태평천국운동이 실패로 돌아가고 난징이 함락될 때 청군은 성내 인구 절반을 도륙해버렸다. 성 안의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청말부터 역사의 격랑에서 표류하며 고통을 받던 이 도시는 193712월부터 시작된 일본군의 학살로 고통의 극을 맛보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도시가 아니라 도시의 사람들이. 몇십 년 전 성의 학살 구분선이 중국인-민간인일본인-군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근대사의 고통을 품은 고도, 난징인내와 사유의 공간이 된 대학살기념관

3월 둘째 주 일요일 오전 난징의 성곽을 걸었다. 고목은 학살의 역사를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한 강남의 푸르름을 더했다. 그러나 오후 난징 대학살기념관을 찾았을 때 날씨는 돌변하여 비가 무던히도 쏟아졌다. 비 오는 날임에도 기념관 안은 사람의 물결로 가득 찼다. 군중에게 나는 두 번 고마워했다. 나와 함께 살아 여기에 서 있는 것, 그리고 그 끊이지 않는 물결로 이방인의 눈물을 감추어 준 것.

얼마나 죽었던가? 중국 정부는 30만이라 하고 어떤 국제기구는 40만이라 한다. 하지만 일본 극우파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두 거짓말쟁이라며 학살을 완전히 부정하고, 일본 정부는 침묵으로써 은근히 부정한다. 사실 통계는 부질없는 것이다. 아이들을 다 잃고 불구로 살아남은 어머니처럼 죽음보다 괴로운 삶을 산 사람들은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실제 삶이 죽음보다 더 괴로웠음에도. 박물관 안은 마음을 짓누르는 증언들로 가득하다. 증언을 읽다가 차라리 증언이 거짓이길, 살인자들의 고백도 모두 거짓이길 바랄 지경이었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중산부두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일본군이 몇 천 명을 잡아 놓은 것을 보았어요. 일본군은 우리더러 강변에 앉으라고 하더군요. 주위에는 기관총을 설치해 놓았고요. 나는 낌새가 이상해서 동생을 데리고 여러 사람과 함께 장강으로 뛰어들었어요. 얼마 후 일본군은 강으로 기관총을 쏘기 시작하더니 수류탄도 던져 넣더군요. 그리고 강변의 시체에 기름을 끼얹어 불을 붙였어요. 시체를 훼손해 흔적을 없애려고요. 한밤중에도 일본군은 강변을 지키면서 칼로 강가에 떠다니는 시체를 난도질했는데, 나는 강변에서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 가까스로 그들의 칼을 피했어요.”

- 생존자 류용싱(劉永興)의 증언

     

나는 학살자가 속한 인류의 일원이자 동족끼리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경험을 가진 민족의 일원이기에, 또한 식민지 인민으로 어쩔 수 없었지만 일본 제국주의 학살자들의 하수인 역할을 한 민족의 후손이기에, 나에게 난징은 그저 악의 평범성을 확인해주는 공간이 아니라 인내와 사유를 요구하는 시험의 공간이었다. 도대체 왜, 그들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죽였을까? 제국주의와 그들이 일으킨 전쟁이 개인의 도덕을 먹어 치웠기 때문이다.

     

야만적 폭력의 강도와 빈도를 증가시키는 전쟁

도덕적 타락은 대략 세 단계를 지난다. 도덕적 실천의 좌절과 반복(반복된 경험), 연이은 도덕적 실천의지의 포기(자포자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광란의 파괴주의(반달리즘).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개인은 자포자기에서 멈춘다. 개인은 잘못을 저지르고 나는 형편없는 놈이야라고 자조하며 달아나더라도 특이한 경우가 아니면 타인을 해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수많은 일본군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들도 누군가의 자식이자 형제 때로는 어버이였을 텐데.

     

전쟁과 폭력의 근본적 원인에 대해 사회과학이 밝힌 바는 없지만 전쟁과 여타 폭력의 상관관계는 명확하게 밝혀졌다. 전쟁이 빈번한 사회에서 야만적인 폭력의 강도와 빈도는 증가한다. 악은 한 순간에 발현되는 것이 아니므로 특히 학살과 같은 대규모 악은 전쟁의 방어막이 없으면 자랄 수 없다. 그리고 전쟁 또한 마른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욕망을 위해 전쟁을 옹호하는 자들의 연합이 결성되면 전쟁의 본질을 모르는 자들도 부화뇌동하고, 천황이니 국가니 하는 가면 아래서 악은 싹을 틔운다. 그리고 전쟁이 벌어지고 참전자들은 처음 생존을 위해 경계 밖의 인간을 죽인다. 포위된 성벽 안의 인간을 죽이는 것처럼. 살인은 전염병처럼 퍼지며 살인을 방조한 사람들에게까지 자포자기의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그리고 자포자기의 심정과 가학자의 고뇌가 파괴적으로 결합하면 집단 속 개인은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어 앞장서서 파괴주의를 실천한다. ‘, 한 번 해보자구. 누가 짧은 시간에 더 많이 벨 수 있나.’ 이제 그들은 학살 기계에 불과하다. 기계는 도덕성이 없다.

     

힘들어도 난징을 방문하는 사람은 꼭 대학살기념관에 가 보시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곳이니까. 다행히 난징에 슬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난징은 강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다. 태조릉을 지키는 코끼리는 그저 소박하고 통통하니 예쁘고, 언덕마다 가득 핀 매화 향은 강남의 정취를 더한다. 장강은 끊임없이 흐르며 나름대로 인간의 아픔을 씻어낸다. 난징은 역사의 힘을 간직한 도시이니 역사의 슬픔도 극복하리라. 난징이 슬픔의 극지에서 벗어나 기쁨의 극지로 되돌아갈 때 우리 인류도 학살의 원죄에서 벗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