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은 지난 3월 22일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고조선의 서북경계는 어디까지인가:동호·흉노와의 관계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2017년 첫 번째 상고사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재단은 우리 상고사 연구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을 소개하는 토론의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해 왔다. 지난해에는 ‘왕검성과 한군현’, ‘고조선과 한(漢)의 경계, 패수는 어디인가?’, ‘고조선과 연의 경계, 만번한은 어디인가?’, ‘낙랑군의 위치’라는 주제로 모두 네 차례에 걸쳐 토론회를 진행하였고 관련 연구자들과 오피니언 리더들로 구성된 요서 답사와 현장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이를 통해 연·진·한 등 중국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고조선사 연구의 쟁점이 되었던 문제들을 살펴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시야를 확대하여 제3의 세력인 동호·흉노와의 관계를 포괄, 고조선의 세력권을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토론회에서는 재단 김은국 연구위원의 사회로 숭실대 이후석 박사와 민족문화연구원 심백강 원장이 발표를 하였다.
고고학적으로 살펴본 고조선의 중심지
먼저 발표에 나선 이후석 박사는 ‘고고학을 통해 본 고조선과 주변 사회-고조선과 연·산융·동호의 관계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를 통해 춘추·전국시대 고조선 및 그 주변 세력의 강역을 고고학적 물질문화를 근거로 분석하는 시도를 하였다. 이 박사는 춘추시대 고조선의 서쪽에 있었던 산융과 전국시대 고조선의 서북쪽에 있었던 동호는 모두 북방계통 종족(또는 주민집단)으로, 십이대영자문화를 중심으로 성장한 조선과 고고학적으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고고학적 문화의 분포를 통해 고조선은 춘추시기 요서 지역에 중심지를 두었다가 늦어도 춘추 후기(기원전 6~5세기)에는 요중 지역으로 이동하였으며, 전국 중기(기원전 4세기 후반)에는 연나라와 경쟁하다 전쟁에서 패해 요동 지역의 천산산맥 이남으로 중심지를 이동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 박사는 결론에서 고조선의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들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그 역사문화상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문헌 사료 중심에서 고고 자료 중심으로 연구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요수는 지금의 요하? 아니면 역수?
이어서 발표를 진행한 심백강 원장은 이후석 박사와 달리 그간 우리의 상고사 연구가 고고학 위주로 진행되고 문헌 연구를 소홀히 해왔다고 주장하였다. 학계에서는 중국에서 편찬된 사서를 위주로 역사를 연구하는데 그 외 수많은 제자백가류, 문학류, 문집류 등에 보이는 우리 상고사 관련 자료는 그동안 학자들의 관심에서 소외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심 원장은 이러한 맥락에서 ‘고조선시대의 요수로 본 요동·요서군과 한사군의 낙랑’이라는 글을 준비하여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였다. 심 원장은 위진남북조 시기 문학가 유신의 《유산자집(庾子山集)》에 수록된 ‘영회(永懷) 27수’ 가운데 ‘연객사요수(燕客思遼水)’의 ‘요수’를 지금의 하북성에 있는 ‘역수’(易水)로 비정하면서 한 나라의 요동군과 요서군의 기준이 되는 요수는 현재의 요녕성에 있는 요하가 아니라 하북성에 있는 역수라는 논리를 펼쳤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요동군과 요서군이 모두 지금의 하북성에 있었고 나아가 낙랑군 또한 학계의 주장대로 지금의 대동강 유역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북성에 있었던 것이다.
이어서 진행된 종합토론에서는 인하대 서영대 교수의 사회로 김종서 박사(한국과 세계의 한국사 교육을 바로잡는 사람들의 모임)와 박준형 박사(연세대)가 각각 이후석 박사와 심백강 원장에 대한 토론자로 나서 고고 자료와 문헌의 원천적 사료 비판에서 시작하여 고조선의 강역을 논하는 열띤 토론을 진행하였다.
이번 토론회는 주로 중국 왕조와의 관계에서 살폈던 고조선의 강역을 흉노와 동호 등 제3세력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재검토하여 고조선사 연구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것에 큰 의의가 있다. 또 한정된 쟁점 주제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 속에서 한국 상고사 인식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기 위한 재단의 노력을 재확인할 수 있었던 뜻깊은 자리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