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월 하순 일본교과서의 검정 결과가 발표되면 해당 교과서의 내용이 한국의 역사를 왜곡한 것은 물론 독도에 대한 영토 주권을 침해했다는 비판이 언론지상을 달군다. 이때 주로 제기되는 문제는 식민지배, 강제 동원, 일본군 ‘위안부’ 등 한국 근현대사에 관련된 내용의 왜곡이고, 전근대사에 대한 문제 제기는 상대적으로 적다. 그렇다면 일본 교과서의 한국 전근대사 서술 내용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이른바 ‘일제 식민사학’의 한국사 왜곡의 대명사는 오히려 전근대사 그 가운데서도 ‘임나일본부설’로 대표되는 고대 한일관계 왜곡 문제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의문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고대 한반도에 미친 일본 열도 세력의 ‘영향력’ 관련 서술의 온도차
의문에 대한 답을 미리 말하자면 많은 부분 고대 한일관계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려 노력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한국의 입장에서 문제를 제기할 부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영향력’이라는 단어이다. ‘임나일본부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용어는 ‘일본의 한반도 남부 경영론’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러한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일본 교과서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고대 한반도에 일본 열도 세력이 일정 부분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는 식의 서술이 아직 몇몇 교과서에 남아 있다.
『中学社会新しい歴史教科書』, 自由社, 2023, 42~43쪽
지유샤 교과서가 왜곡한 임나(가야)의 영역
지유샤(自由社)에서 발행한 현재 사용되고 있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고대 한일 관계 관련 서술의 일부이다. 이 내용만 읽으면 고대 한반도에는 일본의 ‘영향력’이 일찍부터 미치고 있었으며 그것은 6세기까지 지속되었다. 심지어 이 교과서는 이러한 ‘영향력’이 미쳤다는 ‘임나’의 범위를 과장한 지도를 싣고 있다. 이 지도에 그려진 ‘임나’의 범위는 이제는 한일 학계 모두가 인정하지 않는 고전적 의미의 ‘임나일본부설’에서 그려낸 그것과 완전하게 일치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러한 기조는 2024년에 검정을 통과한 같은 출판사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서도 유지되고 있다.
현재 사용중인 한국 교과서의 가야 영역
새역모 계열 교과서를 대표하는 지유샤처럼 노골적인 것은 아니지만 데이코쿠쇼인(帝國書院)과 이쿠호샤(育鵬社)에서 발행한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도 6세기에 들어와서야 일본이 고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했다는 서술이 있다. 이는 그 이전 시기 일본의 ‘영향력’이 존재했음을 의미하므로 결론적으로는 지유샤의 서술과 기조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현재 사용되는 교과서 8종 가운데 3종의 교과서에만 ‘영향력’ 관련 서술이 있으며, 나머지 5종은 ‘영향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고대 한일관계를 담담하게 사실에 입각해 서술했다. 이점은 일본 교과서의 고대 한일관계 서술이 현재 어느 지점에 와있는지를 알려준다. 객관적 서술을 위해 노력하지만 아직 일부 미진한 부분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미래는 현재보다 좀 더 개선된 결과로 다가올 것인가.
2024년 검정 통과 이쿠호샤 교과서의 서술 변화와 기대하고 싶은 미래
현재 사용 중인 새역모 계열 즉 일본 내 우익 세력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중학교 역사 교과서는 지유샤와 이쿠호샤의 2종이다. 이 교과서들의 채택률은 극히 미미하지만 문제가 있는 내용이 검정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고 심사를 통과했다는 점은 여전히 문제다. 그런데 2024년 검정 결과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유샤에서 발행한 교과서는 문제가 있는 서술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물론 오히려 악화되기까지 했지만, 이쿠호샤 발행 교과서는 고대 한일관계 서술의 경우 일정 부분 개선된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쿠호샤 교과서의 도래인 관련 서술 비교
고대에 한반도로부터 일본 열도로 건너간 사람들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있지만, 대체로 현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에 가까운 ‘도래인(渡來人)’이라는 용어가 학술 용어로 정착된 지 오래다. 반면 ‘귀화인(歸化人)’이라는 용어는 용어 자체에 내재된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반영 문제 때문에 학술 용어로서는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있었고, 이 때문에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새역모 계열인 지유샤와 이쿠호샤의 교과서는 다른 교과서들과는 달리 귀화인이란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2024년에 검정을 통과한 이쿠호샤 발행 교과서가 귀화인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도래인이란 표기를 정착시킨 것은 분명한 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우익 계열 교과서의 균열이라고 볼 것인지 아니면 일본 교과서 서술 환경의 개선으로 볼 수 있을지는 아직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다만 이러한 추세가 향후의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도 확인된다면 그것은 일본 교과서의 고대 한일관계 서술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긍정적인 미래를 약간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하는 단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