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전략적 경쟁과 갈등의 고조
미·중 전략적 경쟁이 점차 심화되며 두 강대국 사이의 갈등과 대립 또한 높아져왔다. 도날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America First’의 기치를 내세우며 중국을 압박했다. 하지만 중국의 국력과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동맹국을 배려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에 EU는 물론 일본과 한국 등 동맹국 내에서도 우려와 불만이 표출되었다.
2018년 G7 정상회담
2020년 1월에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자 미국은 동맹과 파트너 협력을 점차 전환해갔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대중정책은 미국 대 중국에서 자유진영국가 대 중국의 구도로 전환해갔다. 또한 미국에 의한 대중국 압박의 양상도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다자적인 모습을 띠고, 그 내용도 정치, 경제, 안보 등 현안별로 한층 구체화되어 갔다. 중국 또한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출과 함께 분야별 적극적인 대응을 실행해왔다.
미·중 전략적 경쟁의 국면 변화: 경쟁과 협력의 병행
미·중 전략적 경쟁 구도는 최근 한 가지의 분명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갈등과 대립의 구도에서 압박과 대화의 병행 국면이 펼쳐지는 것이다. 최근 미국은 물론, 독일, 프랑스, 호주, 일본 등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이 연이어 중국과 고위급 대화를 개최하고 경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EU에서는 2022년 11월에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다. 2023년 3월에는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다. 이어 4월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양국의 경제협력을 논의했다.
2023년 4월 6일 중·프 정상회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는 그간 악화되어왔던 중국-호주 관계에 변화가 나타났다. 2022년 12월에 페니 웡 호주 외교장관이, 2023년 5월에는 돈 파렐 통상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양국의 협력 확대를 논의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2022년 11월에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6년 만에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열었으며, 2023년 11월에는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이 개최되며 양국 간 경제 협력의 확대를 발표했다.
2023년 11월 6일 중·호 정상회담
일본도 2023년 4월에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이 중국을 방문해 친강 외교부장과 회담을 개최하며 양국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2023년 8월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중일관계의 도전요인으로 부상했으나, 2023년 11월 16일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제30차 A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일·중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2023년 11월 16일 중·일 정상회담(제30차 샌프란시스코 APEC 정상회담 계기)
이외에도 중국은 2023년 들어 주변 국가들과 정상회담을 연이어 개최했다. 3월에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다. 6월에는 뉴질랜드, 몽골, 베트남 총리가 각각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7월에는 솔로몬 제도의 총리 및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중국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2024년 들어서도 1월에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방중하여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미국의 대중국 압박-대화 병행 정책
미국은 자국의 주요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이 중국과 고위급 대화 및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움직임을 일정 부분 수용함은 물론, 자신도 중국과의 대화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 2023년 5월에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중관계가 조만간 “해빙(thaw)”되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라 발언했다.
이를 증명하듯 2023년 5월에 워싱턴에서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과 왕원타오 상무부장 간 회담이 개최되었다. 6월에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회담을 가졌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2023년 1월에 스위스에서 류허 중국 부총리와 회담을 가진데 이어, 2023년 7월에 중국을 방문하여 리창 총리 및 허리펑 당 정치국 위원 겸 부총리와 각각 회담을 가졌다. 같은 달 존 케리 미국 기후변화 특사 또한 중국을 방문했다. 이어 러몬도 상무장관이 2023년 8월에 중국에서 왕원타오 부장과 수출통제 조치를 포함한 양국 경제 현안들에 대해 논의했다.
중국도 왕이 당 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2023년 10월 및 허리펑 부총리가 11월 초에 각각 미국을 방문했다. 이어 2023년 11월 15일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중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2023년 11월 15일 미·중 정상회담(제30차 샌프란시스코 APEC 정상회담 계기)
미·중 대화국면의 배경과 전망
이번 대화 국면에서 미국의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이 보여주는 대중국 행보는 ‘탈중국’에 대한 현실적인 어려움과 함께 미국과의 동맹 또는 협력은 공고히 하지만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유지하며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반면 미국이 보여주는 중국과의 대화 국면은 근본적인 대중국 정책의 전환이기보다는 대선을 포함한 국내정치 일정 및 국채 문제에 대응하며 국익을 확대하기 위한 단기적인 전술적 대응일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기존 미국의 대중국 압박정책에서 나타났던 문제점들에 대한 정책적 보완의 의미를 내포했다. 특히 대외적으로 미국은 ‘디리스킹(de-risking)’에 동의하며 주요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이 미국과 함께 중국을 견제/압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이익 감소 및 공급망 불안에 대한 불만과 우려를 수용하고 이를 다독일 필요가 있었다. 중국이 가지는 시장의 규모, 주요 원자재와 산업 자재의 대량 생산력과 낮은 원가를 대체할 국가를 단기간에 찾기 어려운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인구 감소와 빠른 고령화 사회 진입, 도시 청년 실업률의 증가, 금융 및 부동산의 불안 요인, 미국의 첨단산업 견제 등으로 경제의 하방 압력이 증가해 온 점이 미국과의 대화를 수용하고 관계 개선을 타진하려는 주요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중국은 대화 국면에 대한 과도한 기대보다는 반간첩법, 대외관계법 등 내부적으로 제도를 정비하는 주의를 늦추지 않으며 미국과의 안정적인 경쟁을 위한 협상에 응하고 있다.
한국 대외정책에 대한 함의
최근 한·중 국민들 간 상호 호감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중국과 의미 있는 대화와 협력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한국의 입장에서 미국 및 주요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이 중국과 대화 및 협력을 확대해 나가는 모습은 일견 외교적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물론 한국 대외정책의 중심인 한미동맹의 공고화, 장·단기적 동북아 전략을 위한 한일관계 개선,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일 협력의 확대는 분명히 필요하다. 이에 더하여 한국은 미·중 대화국면의 도래에 대응해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의 ‘전략적 자율성’에 대한 논의와 정책적 검토가 필요하다.
미·중 대화국면 하에서도 한국 대중정책의 기본 틀은 공고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한·중 협력 관계의 강화 추구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공고화 과정이 한국에게 미·중 전략적 경쟁 속에서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 국가의 선택이 아님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은 대중정책의 효과적인 실행을 위해 한미/한중 간 양자외교는 물론 이에 더하여 다자외교의 역량 강화와 이를 활용하여 주요 현안 별 한국의 다자적인 정책적 대응을 구체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끝으로 한중관계에서 정치 및 군사·안보 영역이 민감하다면 사회·문화 영역에서 교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중 간 ‘동북공정’ 및 동북아 국가들의 역사 인식의 차이를 정치적 또는 민족 감정적 대립보다는 학계 전문가들의 학문적 교류와 논의를 바탕으로 시각의 차이를 줄여나가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나갈 필요가 있다.
ㅣ일러두기ㅣ 지면 관계상 외국인 인명의 외국어 병기를 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