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의 식민지 지배 인식과 문제점
일본 정부는 근대 일본의 조선 침략 및 조선 식민지 지배에 대한 불법성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나 강제동원 문제에 관해서도 법적 책임을 부정하고 배상을 거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발 방지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다. 필자는 과거의 가해 사실에 대해 일본 정부가 진상 규명, 법적 책임과 인정, 사죄, 배상,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조치 등을 실시하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30년 동안 일본 교육의 우경화가 가속화되고, 교육에 대한 국가 통제가 강화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2001년에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역사교과서가 검정에 통과한 이후 우파의 역사교과서는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나아가 일본 정부는 역사교과서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강화하고 있으며, 2021년부터는 교과서 회사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및 강제동원 문제 관련 용어를 변경하도록 하는 등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2018년에 강제동원 문제에 관한 한국 대법원 판결 후 일본 정부는 ‘국제법 위반’ 등과 같은 주장을 펼치며 한국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일본 언론은 ‘한국 때리기’에 나서며 일본 시민들의 인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와 같이 한국에 대한 적개심이 높아진 채로 2020년에는 한일 상호 간의 왕래가 크게 제한되기에 이르렀다.
현재 대부분의 일본 시민은 많든 적든 위와 같은 ‘한국 때리기’ 프로파간다에 영향을 받고 있다. 노골적인 역사부정론을 믿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으며, 식민지 지배의 가해 실태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사람이라도 ‘이미 해결된 일을 다시 문제 삼는 한국’, ‘반일 한국’과 같은 담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에 의한 가해의 역사를 비판하는 사람은 ‘반일’ 또는 ‘좌익’ 등으로 매도당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작년부터 한일 간의 왕래가 본격적으로 재개되었으며, 한일관계 ‘개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대체 무엇이 해결되었단 말인가?
2021년 출판된 『‘한일’의 답답함과 대학생인 나』
(『「日韓」のモヤモヤと大学生のわたし』, 大月書店)
올바른 역사인식 정립을 위한 대학생들의 활동
2021년 필자의 소규모 연구모임에 소속된 학생들이 『‘한일’의 답답함과 대학생인 나』(『「日韓」のモヤモヤと大学生のわたし』, 大月書店)를 출판했다. 학생들은 역사학의 연구성과에 입각해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배워나가면서, 일본 측이 가해 책임에 성실하게 마주하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일본 사회 다수파의 ‘상식’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 배경에는 일본 사회에서 역사학의 연구성과가 거의 공유되고 있지 않으며 역사부정론의 영향력이 대단히 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애초에 한일 간 역사문제는 금기시되는 경우가 많아 친구나 가족과도 이러한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에서 개최된 학술행사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사회의 과제에 대해 발표하는 학생들(2022.10)
이와 같은 불건전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연구모임 소속 학생들은 “일본 시민사회가 식민지 지배 책임과 마주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책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일본 사회에서 식민지 지배 책임에 마주할 것을 촉구해도 귀 기울이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일본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K-POP이나 한국 문화를 매개로 ‘모야모야’를 키워드로 한 책을 만들기로 했다. ‘모야모야’는 “답답함이나 꺼림칙한 감정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많은 일본인 팬들은 한국 연예인이 식민지 지배 문제에 대해 발언할 때 ‘모야모야’를 느낀다고 한다.
“일본 팬이 있는데 왜 일본인을 꾸짖는 듯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거지? 일본인이 싫은 건가? 팬의 기분도 생각해 주면 좋을 텐데”와 같은 ‘모야모야’ 말이다. 이러한 의문을 가지는 것 자체가 일본인이 얼마나 식민지 지배 역사에 대해 알지 못하는지 보여주는 것이지만 이것이 일본의 현실이다. 또한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을 계기로 식민지 지배 문제에 대해 배우려 하자 ‘반일’과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다는 학생도 적지 않았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의 의문이나 경험을 시작으로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해설하는 형식의 책을 만들게 되었다.
히토쓰바시대학 학교축제에서 개최된 『‘한일’의 답답함과 대학생인 나』 관련 학술행사(2022.11, 온오프라인 병행)
일본 언론 상황과 이를 극복하는 길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와 같은 학생들의 의견은 일본 사회 전체에서 보면 소수파에 속한다.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의 서평 사이트인 ‘호서호일(好書好日)’과 K-POP을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정보를 다루는 ‘모델프레스(モデルプレス)’와 같은 사이트에 학생들의 인터뷰가 크게 실리긴 했으나, 대부분의 유력 언론사가 관련 기사를 쓰는 일은 없었다. 학생들이 만든 책이 1만 1천 부나 팔린 사실은 큰 화제를 끌 수 있었을 텐데도 결국 이 문제는 금기시되었다. 일본 유력 언론사는 좌우를 막론하고 한일 간 역사문제는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해결 완료’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역사 문제를 외면하고 한일 간 정치적 타협을 추구하고자하는 이들은 이 책을 공격하기도 했다. 2023년 1월 15일, 유력 신문사 가운데 진보적이라고 알려진 『마이니치신문(毎日新聞)』의 웹사이트 ‘정치 프리미엄(政治プレミア)’에 한국 주재 경험이 있는 오누키 토모코(大貫智子) 기자(정치부)의 기명 칼럼이 실렸다. 칼럼의 제목은 「한국 문화를 즐기려면 가해의 역사와 마주해야 하는가」였으며, 현재는 삭제된 상태다. 이 기사는 과거의 역사에 얽매이지 말고 한일 교류를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세미나에 참석한 학생들의 책과 심포지엄의 내용을 비판했다.
2021년 11월 28일, “ARMY”로 알려진 K-POP 팬들이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BTS의 “Permission to Dance” 콘서트를 보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오누키 기자의 주장 자체에 큰 문제가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오누키 기자가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 우리 연구모임 측에 연락을 취하지 않았으며 취재를 하지않았다는 것이다. 기자로서 있을 수 없는 행동이다. 『‘한일’의 답답함과 대학생인 나』의 독자들은 온라인에서 “이 기
사에 문제가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따라 우리 연구모임은 『마이니치 신문』에 공식적으로 항의하였으며, 『마이니치신문』 측은 취재가 불충분했음을 인정하고 정치부장이 히토쓰바시대학에 직접 찾아와 학생들에게 사과하고 기사를 삭제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문제제기를 통해 언론의 기사가 삭제된 것은 큰 성과이며, 더욱이 이것이 독자들의 노력에 의해 실현된 점은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일본의 언론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식민지 지배 책임과 마주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만으로도 유력 언론사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올바른 역사 정립을 위해서 일본 시민사회는 식민지 지배 역사에 대해 착실하게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을 넓혀 나갈 필요가 있다.
용산역사박물관을 답사를 하는 학생들(2023.5)
일본 독자들의 반응
이 책은 지금까지 없었던 콘셉트의 책이었으며, SNS를 활용한 프로모션을 실시했다는 점이 화제가 되었다. 현재 6쇄를 찍었으며, 1만 1천 부의 판매를 기록했다. 식민지 지배 책임을 정면으로 다룬 책이 이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전례는 없기에 놀랄만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책이 K-POP 팬을 중심으로 SNS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애당초 K-POP 팬을 염두에 둔 기획이기는 했지만, 많은 K-POP 팬들이 “이런 책을 기다렸다”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K-POP 팬을 비롯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일관계에 ‘모야모야’를 느끼고 있으며,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 그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책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독자들은 책에 호응하는 형태로 자신이 느끼는 ‘한일’의 ‘모야모야’와 어떤 식으로 마주할 것인지에 대해 쓴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이러한 글이 또 다른 연쇄작용을 일으켰다. 필자는 “선배 K-POP 팬이 올린 글을 보고 책을 읽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몇 차례나 들었다.
그리고 트위터의 스페이스 기능(유저들이 서로 음성을 통해 대화할 수 있는 기능)을 통해 일부 K-POP 팬들이 사회문제나 인권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 늘어갔다. 수백 명의 청취자 앞에서 책의 저자들이 이 사람들과 의견을 공유하는 일도 있었다. 또 이 책을 주제로 하는 독서회가온라인을 포함해 수차례 열렸다. 이렇게 이 책은 온라인을 통해 새롭게 시민들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냈으며, 역사문제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 가운데 특히 BTS의 팬덤 ARMY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BTS가 인권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데, 일본의 팬들도 이러한 영향을 받은 것이다. BTS를 통해 ARMY 사이에서 인권문제에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에 이 책이 출판되면서 ‘화학반응’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일본사회에서는 식민지 지배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상황을 타개하는 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다섯 명은 이미 대학원생과 사회인이 되었다. 이들은 『ひろがる「日韓」のモヤモヤとわたしたち』라는 제목으로 2023년 속편을 출판할 예정이다. 저자들은 사소한 움직임일지라도 계속적으로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을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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