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의 〈일제침탈사 편찬사업〉은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탈과 식민지 지배 실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종합하여 총서로 발간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자료총서, 연구총서, 교양총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로 나누어 학계 전문가들이 집필에 참여하고 있다. 〈일제침탈사 시리즈〉에서는 발간된 일제침탈사 총서 가운데 한 권을 선정하여 소개한다.
여자고등보통학교의 재봉 수업(경기여자고등학교, 1937)
일본이 구상한 근대적 학교교육 체제
일본은 근대화 과정에서 소-중-고-대학으로 이어지는 학교교육제도를 창출해냈다. 각 학교들은 그 명칭이 주는 빈곤한 상상력만큼이나 노골적인 위계질서로 구조화되었다. 대학을 최고 정점으로 하는 상급학교 입학에 적합한 자를 식별해 낼 수 있도록 그 아래 하급학교들에서 보다 많은 예비자원들을 배출해 경쟁시키는 일련의 구조를 창안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위로부터 인재 선발을 주된 목적으로 고안된 학교 체제는 필연적으로 교육 희망자 절대다수를 교육제도로부터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다시 말해, 국가의 교육 수요와 개인의 교육 욕구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식민지 중등교육 체제의 형성
일본의 학교교육제도가 이식된 조선에서는 식민지적 상황으로 인해 중등교육정책의 모순이 더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 초기의 교육정책은 대학 등의 고등교육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고등교육이 국가 운영에 필요한 엘리트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면, 국가로서의 자주적 지위를 상실한 식민지 조선에 애초부터 대학 등의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민 당국으로서는 조선인의 교육 보급 요구를 일부 수용하고, 또한 일본의 식민 통치에 협력할 자들을 선별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식민지 조선에도 일본과 비슷한 형태의 학교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지극히 제한된 교육기회로 인해 조선의 중등교육은 일본과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첫째, 입시 위주 교육문화
식민지 교육정책에서 조선인에 대한 중등단계 일반교육은 억제의 대상이었다. 1930년대 말까지도 조선인 남자 대상의 중학교(고등보통학교)는 각 지방 도 단위에 단지 1개교만 설립할 수 있었다. 이렇게 좁은 문을 통과한 이후에도 보다 높은 상급학교로 진학하기 위해서 더욱 치열한 입시경쟁을 치러야 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상급학교 진학에 성공하는 것은 단지 학생 개인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학교와 지역의 명예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았다. 상급학교 진학자 배출 현황에 따라 해당 학교에 대한 사회적 평판과 서열이 정해졌다. 이러한 조건으로 인해 입시경쟁은 더욱 격화되었고, 또한 당시 학교들이 입시 위주의 파행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도록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결과가 초래되기도 했다.
고등보통학교의 교실(전주고등학교, 1940년대)
둘째, 현모양처 여성교육
식민지 교육당국에게 여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정책은 늘 부차적인 문제였다. 초등교육의 취학률은 대체로 남자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고, 1930년대까지도 공립 여학교(여자고등보통학교)가 설립되지 않은 도 단위 지역이 과반수에 이르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조선인 사회에서도 중등 여자교육 확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렇게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다. 선정적인 매체를 통한 신여성의 오염된 이미지와 함께 여자교육의 목적이 현모양처 교육과정으로 고착화되면서, 사회 일각에서는 여학교에 대해서 신부양성소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드러낼 정도였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극히 제한되었기 때문에 없었다. 중등 여자교육 확대 정책은 늘후순위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셋째, 기능 중심 실업교육
중등단계에서 일반교육을 억제하는 한편으로 식민 당국은 언제나 실업교육에 비중을 두고 있었다. 조선인의 중등 일반교육 확대 요구에 대해서는 매우 억압적이었고, 대신에 농업학교, 상업학교, 수산학교, 공업학교, 직업학교 등 실업학교의 설립만을 허용하였다. 이러한 실업학교들은 교육 목적이 졸업 후 현업에 직접 종사할 자를 양성하는 데 있었기 때문에 교육과정은 낮은 수준의 기능 습득을 위한 실무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당시 중등교육 기회 자체가 매우 제한되어 있던 상황에서 조선인들로서는 이러한 실업계 중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도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했다. 실업학교를 졸업하더라도 당시 조선인 사회에서는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업학교의 마경 실습(안동농림고등학교, 1943)
식민지적 중등교육 조건의 해체
이렇게 식민지 시기 조선에서는 남자 대상의 일반교육, 여자 대상의 일반교육, 그리고 실업교육이 각기 삼분립하는 형태로 중등학교 체제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중등교육 제도는 극단적으로 억압적인 식민지적 교육 상황에서만 기능할 수 있었고, 해방과 함께 중등교육은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여성의 권리 의식이 확산되고 사회 활동 공간이 확대되면서 남성과 구별되는 여자교육의 필요성은 크게 약화되었다. 그리고 고등교육을 통한 고급기술 인력이 배출되는 상황에서 낮은 수준의 기술과 실무를 익히는 중등단계의 실업교육은 점차 사회적 기능이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와는 반대로,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이 크게 팽창하면서, 중등단계 일반교육은 고등교육에 더욱 종속되어 대학 진학을 위한 입시준비기관으로의 성격이 한층 강화되었다.
『일제강점기 중등교육 정책』(동북아역사재단, 2021)
식민지 교육의 잔재와 중등교육의 과제
그런데 주목할 점은 해방 이후 교육 조건의 근본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시기에 형성된 삼분립된 형태의 중등교육제도가 매우 오랫동안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식민지 시기에 형성된 교육 잔재가 무엇인지 가늠해보면 다음과 같다. 즉, 중등교육은 초등교육과 달리 학생들을 평가하고 분류해 선별해야 한다고 믿는 교육관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재도 여전히 중등교육 제도를 구상할 당시와 동일한 정책적 과제들과 마주하게 된다. 즉, 공적인 국가 재정으로 운영되는 학교교육으로부터 배제된 이들에 대한 교육적 혜택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학교제도 안에서 필연적으로 예견되는 절대다수의 실패자들에 대한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 나아가 학교 체제에서 성공한 경우라 하더라도 과연 이들이 사회의 필요에 부합하는 존재인지 등 중등교육의 사회적 기능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창작한 '평가하고, 분류하고, 선별하는 중등교육'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