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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을 가다
연변 지역의 발해 유적
  • 임상선 재단 명예연구위원

연변(延邊) 지역은 오늘날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이며, 유사 이래 한민족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 발해가 건국된 곳이고, 발해의 수도 가운데 상경성을 제외한 현주(顯州), 동경(東京)이 모두 연변 지역에 있었다. 발해와 신라·일본 간 교류의 출발지이고 도착지였다. 연변 지역에 다수의 발해 유적이 남아있는 배경이다.



정효공주 묘지(높이 105cm, 폭 58cm, 18행 728자 중 2자 미판독)

 

정혜공주묘와 정효공주묘


19498, 길림성 돈화(敦化) 육정산(六頂山)에서 발해 3대 문왕(文王, 재위 737-792)의 둘째 딸인 정혜공주(貞惠公主, 737-777)의 묘지(墓誌)가 발견되면서 발해 역사지리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공주의 묘가 진릉(珍陵)’의 서원(西原)에 배장(陪葬)되었다는 기록에 따라 육정산을 발해 왕실고분군으로, 서쪽에 있는 성산자산성(城山子山城)을 발해가 건국되었다는 동모산(東牟山)’으로 비정하게 되었다.

1980년 또 다른 발해 공주인 정효공주(貞孝公主, 757-792)의 묘가 길림성 화룡현 용두산(龍頭山)에서 발견되었다. 공주는 문왕의 넷째 딸이며, 염곡(染谷)의 서원(西原)에 배장되었다. 벽화가 그려진 묘실에는 대략 25~45세로 추정되는 여성 인골(156)과 남성 인골(161)이 발견되었다

공주와 그 남편일 것이다. 정효공주묘의 발견은 인근의 서고성(西古城)이 발해의 두 번째 수도인 현주의 소재지라는 주장에 다시 한번 힘을 실어 주었다.


효의황후묘와 순목황후묘


중국은 발해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하여 2004년과 2005년 정효공주묘 주변의 무덤 14기와 우물 1기를 발굴하고, ‘간단한 보고(簡報)’(考古2009년 제6)를 했다. 그런데 간단한 보고에는 매우 놀랄만한 내용이 있었다. 발해 황후의 묘 2기를 발굴했고, 묘지도 출토되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문왕의 황후 효의황후와 9대 간왕(簡王, 재위 817-818)의 황후인 순목황후였다. 순목황후 묘지는 폭 34.5cm, 높이 55cm, 두께 13cm이고, 전체 141자 중 渤海國順穆皇后 簡王皇后泰氏也 建興十二年七月十五日 遷安陵 禮也” 29자만을 공개했다. 이를 통하여 발해국 순목황후는 간왕의 황후 태씨이고, 건흥 12(829) 715에 옮겨 안장했다는 것만을 알게 되었다.

순목황후 묘지와 달리 효의황후는 孝懿皇后’ 4자만이 보고서에 실렸다. 발굴 후 18, 간보 발표 1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황후 묘지의 전체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의 발해사 해석에 배치되는 내용, 예컨대 황후만 아니라 발해 왕도 황제를 칭했거나 혹은 고구려와 관련된 내용이 묘지에 있기 때문에 발표를 미루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떠나지 않는다.

 


용두산 고분 M14에서 출토한 고구려식 금관 장식

 

진릉동모산위치 재론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진릉(珍陵)’이 육정산고분군에 있고, 능 주인은 대조영(고왕, 재위 698-719), 무왕(武王, 재위 719-737), 혹은 문왕 중의 한 사람일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황후묘가 발견되면서 진릉이 육정산이 아닌 용두산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었다. 순목황후 묘지 의 보이지 않는 부분 자일 것이며, 문왕의 묘는 효의황후 옆의 M11, 간왕의 묘는 순목황후 옆의 M2라고 추정한다.

진릉과 함께 연길시(延吉市) 동쪽 10거리의 마반촌(磨盤村) 산성이 새삼 발해 건국지 동모산의 후보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가 2013~2020년까지 8년간 마반촌 산성을 발굴하고 발표한 바에 의하면, 성벽에서 출토된 목탄 측정 결과 초기 성벽의 축조 연대는 656~727년이고 후기 성벽의 축조 연대는 1150~1250년이었다. 초기 성벽의 연대는 바로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던 시기이고, 후기 성벽은 금나라 말 이곳에 건립된 동하(東夏, 1215-1233) 때에 축조된 것이 된다.

진릉과 동모산에 대한 보다 진전된 학술적 논의를 위해서 중국 측은 발해 황후묘와 마반촌 산성의 고고 발굴 결과를 하루속히 전면적으로 공개해야 할 것이며, 우리 학계도 연변 지역이 발해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대한 종합적 검토 작업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마반촌 산성 (산성의 가장 높은 곳의 해발 높이 388m, 둘레 4,549m)


용두산 고분 분포도 (주요 출토 유물 - M1 정효공주 묘지, M3 순목황후 묘지, M12 효의황후 묘지, M14 고구려식 금관 장식 등)

 

발견되지 않는 발해 왕의 묘지


발해사는 한국 역사 중 사료가 가장 적다. 그런 점에서 고고 발굴을 통하여 발견된 발해 금석문 자료의 가치는 절대적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4건의 금석문이 모두 묘 주인의 일생을 기록한 묘지다. 두 명은 공주이고 두 명은 황후다. 두 명의 공주와 한 명의 황후는 문왕의 딸이고 부인이다. 진릉의 주인공을 문왕, 무왕, 고왕의 한 사람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발해 왕의 묘지는 왜 발견되지 않는 것일까. 발해 사회에서는 여성만이 이름을 남기는 것일까. ‘안개 자욱한() 바다()’로의 탐험은 끝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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