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뉴스레터

동북아포커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김희곤 초대 관장을 만나다
  • 인터뷰 | 신효승 재단 한일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신효승 연구위원" 안녕하세요! 관장님. 먼저 초대관장으로 취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김희곤 관장" 감사드립니다. 책임이 막중하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효승 연구위원"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의 출범이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희곤 관장" 전 세계에 독립운동을 펼친 나라들은 굉장히 많습니다. 사실 침략 제국주의 국가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지만 식민지 해방 투쟁을 벌인 국가는 너무 많아서 숫자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런 대부분의 나라에 독립운동 영웅들을 기리는 기념관들이 많고, 그 영웅들을 중심으로 역사 해석을 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그러다 보니 국가사 차원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것을 이야기해 주는 기념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한제국이란 나라가 있었는데, 나라가 망한 뒤에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어떻게 연결되었는가 하는, 국가사의 맥락 정맥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제가 이야기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을 지어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물론 저만이 아니라 여러 연구자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가했던 분들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에서 계속 이 주문을 해 왔습니다. 3년 반 전에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에 참가한 연구자로는 이만열 교수님이 원로 연구자셨고, 지금 독립기념관 관장으로 계시는 한시준 교수와 제가 참여했습니다.


"신효승 연구위원" 그런 측면에서 다른 독립기념관들하고의 차별성이 명확히 보이는 것 같습니다.


"김희곤 관장" 1919년에 일어난 독립 선언은 우리가 독립국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독립국을 선언했으니 바로 그 국가의 이름이 있어야 합니다. 국가의 명칭은 대한민국으로 정했습니다. 민이 주권을 가지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영토와 주권, 국민, 이런 요소를 갖추지 못한 망명지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영토를 되찾아서 들어올 때까지는 이 대한민국을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이라는 두 개의 기구로 운영을 합니다. 임시정부는 국토를 되찾게 되면 정부가 되는 것이고, 임시의정원은 국회가 됩니다. 그것을 규정한 것이 1919411대한민국 임시헌장곧 제헌헌법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제헌헌법 제10조는 국토를 되찾으면 1년 안에 국회를 소집한다고 규정했습니다.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민이 주인이 된 나라를 우리 역사 최초로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여기서 정부와 의회가 이것을 이끌어 가는데, 국토를 되찾고 완전하게 건국을 하게 되면 그때는 정부와 국회가 그것을 이끌어간다고 명문화를 한 것이지요.


1948년도 대한민국 정부의 제헌헌법은 1919년에 나온 대한민국 임시헌장이라는 제헌헌법과는 달리, 두 번째 제헌헌법이 되는 셈입니다. 제헌헌법에는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고 세계에 선포했던 그 정신을 이어받아서 이제 민주독립 국가를 재건한다고 했습니다. 3·1운동 때 한 번 세우고, 우리가 이번에 재건하여 계승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1987년에 만들어진 현행 헌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정신을 명문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은 바로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국가사의 정통성의 맥락을 정립하고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제공)



상설1관 전시실 내부(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제공)

 

"신효승 연구위원" 임시정부에서 인상 깊었던 사건이라든지 일화로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김희곤 관장" 헌법 제1, 그러니까 1919411일에 나온 헌법을 보면 제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인데, 이것은 지금하고 똑같습니다. 저는 이게 우리 5천 년 역사의 최대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럽 중세 농노 사회에서 농노들이 자유민이 되고, 이 자유민들이 참정권을 요구하면서 일어나는 것이 시민혁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국민들이 참정권을 가지는 사회 그런 국가를 근대국가라고 합니다. 근대 국가의 요소는 정치적으로 보면 시민사회입니다. 그래서 시민혁명이라는 평가들이 나오는 것이지요. 3·1운동은 독립을 선언하고 전 세계에 우리들을 독립을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세운 국가는 바로 황제국가가 아니라 민국이었습니다. 시민혁명의 결실을 그냥 그대로 헌법으로 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1919년 상하이에서 선언한 헌법 1조가 우리 역사에서 큰 분수령이었다고 봅니다.


그 다음에 2조를 보면, 임시정부가 임시의정원의 결의를 얻어서 통치한다고 해서 의회를 더 위에 두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항목입니다. 그리고 꼭 짚고 싶은 조항이 3조입니다. 3조를 보면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빈부, 귀천의 차이가 없고 일체 평등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남녀평등을 헌법에 명문화한 출발점입니다. 이것은 서양 국가들보다 더 빠릅니다. 영국이 여성 참정권을 명문화한 것이 1928년이었고, 미국도 주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1920년대였습니다.


우리 헌법은 1919년에 남녀평등을 명문화했습니다. 이건 세계사적으로도 그 의미를 인정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임시의정원에 여성의원이 등장합니다. 김마리아부터 방순희 여사까지 일곱 분의 여성의원들이 계셨습니다. 임시정부 시기에 나타난 대한민국의 정치적인 진보성! 그것은 정말 놀라운 면모입니다.

 


 

"신효승 연구위원" 임시정부 수립이 과연 동북아시아 내에서 어떤 맥락과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었을까요?

    

"김희곤 관장" 열강들을 제외하면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식민지였습니다. 식민지들이 독립운동을 펼치면서 국가를 세우고 정부와 의회 조직을 만들어서 독립운동을 끌고 간 나라를 거의 찾을 수 없습니다. 1·2차 세계대전 때 많은 나라들이 임시정부를 세우기는 합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27년간 견뎌내면서 독립운동을 펼친 경우는 거의 찾기 어렵습니다.


동아시아에서 보면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인도 등 독자적인 망명지에서 국가를 세운 존재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정부와 의회를 구성해서 독립운동을 펼친 나라는 없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나라는 두 가지 공통된 지향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주 독립 국가의 건설, 또 하나는 근대 국가의 수립입니다. 중세 국가가 아닌 근대 국가를 세우려는 세계 식민지 해방 운동의 보편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특수성 가운데 하나는 바로 망명지에서 국가를 선언하고, 정부와 의회 조직으로 독립운동을 끌고 나갔다는 점입니다.


"신효승 연구위원" 기념관에 전시된 유물 가운데 말씀하신 내용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는 무엇이 있는지요?

    

"김희곤 관장" 박은식 선생은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입니다. 박은식 선생께서 국내에서 1915년에 출판했던 한국 역사의 비통한 역사를 쓴 한국통사(韓國痛史)의 초판본을 우리 기념관에서 소장해 전시하고 있습니다. 선생께서 3·1운동이 일어난 소식을 듣고 상하이에서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를 쓰셨습니다. 이 책자를 갖고 국내에 들어오면 그 자체만으로도 체포되고 형을 살 정도였습니다. 2대 대통령이 된 박은식의 한국통사첫 판본을 우리가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해방되어 충칭(重慶)에서 귀국하기 전에 김구 주석은 우리들의 애국가를 여러 나라에 알리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한글과 중국어, 영어로 된 악보를 충칭에서 만들었습니다. 음악 월간지 한 호에 한국애국가라고 하는 지금 우리들의 애국가를 4페이지 책자로 간행했습니다. 거의 팸플릿 수준이지만 가사와 악보와 그림, 그리고 한 면에 백범 사진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기념관에서 확보하고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마지막으로 귀국하기 바로 전에 국내외 동포에게 고함이라고 하여 국내외 동포에게 우리 임시정부가 귀국하면서 당면한 과제를 14가지 조항으로 제시했습니다. 예컨대 친일파들은 이렇게 정리를 해야 된다. 우리들은 빠른 시일 내에 정부를 국민들에게 드려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정리한 문서가 저희들이 갖고 있는 귀중한 유물입니다. 이번에 기념관을 개관하면서 구입해 지금 전시하고 있습니다.

    

"신효승 연구위원" 마지막으로 독립운동사, 특히 임시정부기념관과 관련해서 앞으로의 과제를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희곤 관장" 가능하면 우리 국민들에게 세계사 차원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바라보자는 메시지를 드리고 싶습니다. 자꾸 우리 안에서만 이야기를 하니까 특성이 덜 드러납니다만, 전 세계의 독립운동에는 보편성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자주독립 국가를 이뤄야 한다는 목표도 있었습니다. 또 하나로 근대국가를 지향했는데, 근대국가를 지향했던 것을 우리는 달성했습니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자들은 식민지 통치 덕분에 근대화가 이뤄졌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역사 발전상으로 보면 우리가 근대국가를 만들어냈습니다. 독립운동을 통해서 근대국가와 시민혁명을 달성하였다는 사실을 고려해 본다면 이것은 우리 스스로가 역사를 발전시켰던 겁니다. 그래서 독립운동으로 근대국가를 창설해 발전시켜 나가는 역사성을 우리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알려줌으로써 식민지근대화론 같은 주장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사의 큰 틀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바라보고,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가는 국가사의 맥락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신효승 연구위원" 말씀 감사합니다.

 


 

OPEN 공공누리 - 공공저작물 자유이용 허락(출처표시 - 상업적이용금지 - 변경금지)

동북아역사재단이 창작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김희곤 초대 관장을 만나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