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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포커스
보편적 인권 문제로서의 '위안부' 역사 초국적 역사 쓰기는 가능할까
  • 박정애, 재단 한일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1938년 1월 상하이 사변 뒤 일본군이 설치한 양가택 위안소. 일본군의 ‘위안부’ 범죄는 이미 입증이 끝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일/여성/공동 역사 쓰기의 어려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이야기다. 2001년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위안부기술 삭제를 주장하는 일본 우파의 공세에 맞서 한일여성공동역사교재편찬위원회를 꾸렸다. 2000년에 국제사회의 여성들이 일본군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을 열어 위안부문제가 보편적인 여성 인권 문제임을 공유한 다음 해의 일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여성 활동가, 연구자가 모인 편찬위원회 참가자들은 회의 때마다 격렬히 토론했다. 기획 단계에서 ·’, ‘여성’, ‘공동’, ‘역사교재라는 의미의 정체성과 내용 구성을 둘러싸고 많은 의견이 오갔다. 한국인과 일본인, 한국적이나 조선적 자이니치 등 참여자의 정체성, 그리고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공통성이 공동의 성격을 구성하느냐는 질문부터, 내셔널리즘과 몰젠더 관점으로 통용되는 역사적 용어 등을 젠더 관점으로 재전유할 방법에 대해 논의하였다.


거리와 언어의 장벽이 더해진 상황에서 이견을 좁히기는 쉽지 않았다. 편찬위원회 참가자들은 수많은 과제를 해소하지 못한 채 젠더 및 탈 내셔널리즘 관점을 공유한다는 원칙 하에 교재 집필을 시작하였다. 각 원고를 공동역사화하는 과정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한국 측은 서구 여성의 경험을 맨 앞에 배치하고 일본과 한국의 사례를 집필하는 방식이 탈 내셔널리즘 관점인가를 질문했다. 가장 중층의 차별을 겪었던 식민지 여성의 경험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보편적 여성사 쓰기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 반면, 일본 측은 식민지 여성의 피해를 부각하는 것은 초국적 여성 억압 문제를 경시하는 것이며, 여성 내 피해의 위계화를 만들어 결국 내셔널리즘에 포섭되는 측면이 있다고 비판하였다. 내셔널리즘의 맥락에서 승인되는 여성 피해를 전형화하고, 그 외의 중층적인 여성 억압 구조를 비가시화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내가 겪은 다름에 대한 논의 경험은, 보편적 인권 문제에 기초한 초국적 위안부역사 쓰기가 화두인 현 시점에서 매끄러운 위안부역사 쓰기를 불가능하게 한다. 편찬위원회 참가자들은 이미 일본군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을 준비하면서, 일본의 식민주의 책임을 법정에서 다뤄야 한다는 한국 측 주장을 둘러싼 갈등을 경험했었다. 이를 반대했던 이들은 먼저 보편적인 원칙에서 일본의 전쟁범죄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대응하였다. 식민주의 견지에서 위안부범죄를 사유하는 것이 위안부피해의 보편적 성격을 거스르는 태도일까.


 


1995년 9월 베이징 세계여성대회에 참가하여 여성 인권과 평화를 외치는 피해 여성들. 

보편적인 여성 인권 실현을 위해서는 젠더 및 식민주의 관점의 ‘위안부’ 인식이 필요하다.

소장: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보편적 인권 문제로서 위안부문제 사유하기

일본군 위안부피해는 부정할 수 없는 전시 여성 인권 침해 사례이다. 보편적 인권 문제로서의 위안부인식은 1990년대 초부터 꾸준히 공유되었고, ‘위안부피해 사실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입증되었다. 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군은 효율적인 전쟁 수행을 명분으로 여성의 성을 이용했고, 위안소 동원 피해자들은 본인의 의사에 반한 피해를 입었다. 동원 과정의 강제/자발 여부는 이들이 성노예 피해자라는 사실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러한 성동원, 성폭력 피해 사례는 시공간을 가로질러 지속, 반복되고 있다. 캐럴 글럭Carol Gluck“‘위안부이야기는 동아시아 기억 정치의 초점이자 국제 인권과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의 기준으로, 초국적 기억 경관의 세계적 피해자로 자리매김했다.”라고 단언했다.


그런데 일본 우파를 중심으로 한 역사부정론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뒤흔든다. 이들은 조선인 위안부동원의 자발성/강제성 여부를 쟁점화하고 위안부는 성노예도, 피해자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과거 일본군위안부제도 시행자들처럼 이들 또한 일본 국가의 이익과 체면을 중요시한다. 내셔널리즘의 옹호를 위해 피해 여성을 침묵시키고 혐오한다. 그리고 학술 영역에 조선인 위안부문제를 끌고 들어와 피해 여부를 입증의 영역으로 만들고자 한다. 이들의 치밀한 전략에 따라 설계된 2021년의 램지어 사태는 이 공세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통해 위안부문제가 이미 국제사회에서 확고히 자리 잡은 보편적 인권 문제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따라서, 역사부정론에 휘말려 위안부피해 입증에 애쓰기보다는 시기와 지역, 그리고 지역의 정치적 성격에 따라 양상을 달리하는 피해 사례를 더 많이 배우고 인식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아시아와 식민지의 경험을 초월한 보편적 인권 문제는 없다

역사적 보편성은 그 특수성의 총합으로 구성된다. 양상과 성격을 달리하는 성동원, 성착취, 성폭력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위안부피해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위안부역사 이해에서 젠더 관점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관점은 식민주의이다. 그리고 이 피해 사례가 일본과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였던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식민주의 관점에 대한 강조는 조선인 피해자에 국한된 한국 내셔널리즘의 발로로 비판되기도 한다. 하지만 식민주의는 식민지라는 정치·경제적 환경에서 존재한 여성들이 공권력에 의해 어떻게 동원되고 이송되고 배치되었느냐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예를 들어 조선에서 동원된 일본인 여성, 타이완에서 동원된 조선인과 일본인 여성, 아시아 현지의 친일 정권에 의해 동원된 현지 여성의 피해를 설명하려면 식민주의 관점이 필요하다. 제국주의를 경험한 서구 사회 중 식민지나 점령지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위안부피해의 역사는 시공간적 특수성에 따라 새롭게 쓰이면서 보편적인 인권 문제에 가까이 가야 한다. 이때 서로 교차하며 공권력과 연계되는 사회·경제적 권력들-민족, 계급, 젠더 위계에 따른 다양한 권력 주체-의 의도에 따라 위안부피해 양상은 달라진다. 보편적 인권 문제를 말하기 위해 우리는 그 다양한 양상과 차이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는 교차하는 권력들의 권력 행사 방식을 낱낱이 드러낼 때, ‘국익을 위한다는 권력의 명분이 인권에 반하는 죽음의 정치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공유할 때, 이 범죄에 우리들이 연루된 지점을 사유할 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기억의 의미를 갱신하며 위안부의 역사를 지속해서 써나가는 가운데 각종 레토릭으로 성을 이용하는 권력들을 경계할 수 있다. 이로써 우리는 본인의 의사에 반한 여성 피해를 반복해서 만들어내는 사회를 근절한다는 위안부문제 해결의 목적에 더 가까이 닿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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