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2017년 10월, 한일 민간단체가 공동으로 신청한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통신사기록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작업은 2012년 5월 ‘재단법인 부산문화재단’이 일본의 ‘NPO 조선통신사연지연락협의회(朝鮮通信使緣地連絡協議會)’에 통신사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추진을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 수년간의 노력 끝에 한일 두 나라가 공동으로 통신사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했고, 2017년 10월에 열린 제13차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회의에서 등재가 최종 결정되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자료는 총 111건 333점으로, 한국 소재 통신사 기록물은 63건 124점, 일본 소재 기록물은 48건 209점이다.
통신사 기록물은 임진왜란을 겪은 조일 양국이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200년간의 평화로운 교류 현장을 기록·묘사한 지적 유산이다. 통신사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평화적 공존, 타문화 존중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재고하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된다.
야마구치(山口) 현 소재 세계기록유산 등재 조선통신사 유물 현황
야마구치현은 에도시대에 다이묘 모리(毛利)씨가 지배하던 조슈번(長州藩)으로, 메이지 유신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야마가타 아리토모(山形有朋),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普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등을 배출한 지역이다. 일본에서 세계기록유산 등재 통신사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기관 총 25개소 48건 중, 야마구치현 소재 소장 기관은 7개소, 등재 유물 건수는 7건이다. 쓰시마에서 에도까지 이동하는 통신사 여정으로 볼 때 쓰시마·오사카·교토·에도와 같이 정치적으로 주요 지역이 아닌, 단일한 지방 영주 지배지에 현존하는 통신사 유물로는 압도적으로 많은 건수이다.
이것은 통신사에 대한 조슈번의 높은 관심도를 반영하는 것인데, 조슈번에서 통신사 유물이 생산된 시기는 주로 18세기로, 1711년 통신사행부터 각종 기록물이 집중적으로 작성되기 시작했다. 번주(藩主) 모리 요시모토(毛利吉元)는 1718년 번교(藩校) 명륜관(明倫館)을 건립하는 등 번내의 학문진흥을 꾀했는데 그 일환으로 통신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슈번은 1711년 통신사 때부터 ‘번의 명령으로’ 학식이 높은 조슈번 학자로 하여금 통신사 사행원과 학술교류를 행하게 하고, 그 성과를 채록하여 출판했다. 학술교류의 내용을 묶어 에도시대에 단일 서적으로 출판한 예는 조슈번이 유일한 듯하다. 단편적인 필담창화(筆談唱和) 수준이 아니라 한일지식인 사이, 유학자들 간의 학술 교류, 사상 교류라는 측면에서 관련 문헌에 관한 면밀한 분석과 연구, 통신사 접대 전반에 대한 조슈번의 자세, 특성에 주목해볼 필요성이 있다.
야마구치현 소재 세계기록유산 등재 조선통신사 유물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정덕원년 조선통신사 진물목록(正德元年朝鮮通信使進物目錄)
통신사가 조슈 번주 모리 요시모토에게 선사한 예물 목록. 모리 요시모토가 시모노세키에서 이례적인 번주 응접을 하여 조선통신사를 각별하게 접대한 결과 ‘조슈 시모노세키의 응접이 최고’라는 평판을 얻었고, 통신사는 감사의 뜻을 담아 모리 씨에게 예물을 증정했다. 일본의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신사어기록(朝鮮信使御記錄)
조슈번이 1711년 조선통신사를 접대한 향응기록. 번의 명령에 따라 행해진 최초의 학술교류 모습, 조슈번의 통신사 접대 상황이 망라되어 있다.
연향5년 조선통신사 등성 행렬도(延享五年朝鮮通信使登城行列圖)
1748년 통신사가 쇼군에게 국서(國書)를 봉정하기 위해 에도성에 등성하는 모습을 묘사. 작자는 행렬을 구경한 군중으로, 통신사 행렬 모습 외에 행렬에 대한 감상, 인물평, 현지 주민들 사이 떠도는 소문 등을 기재했다. 현존하는 통신사행렬도 중에서도 통신사에 대한 당시 일본 민중의 인식, 타문화에 대한 동경 등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보력14년 조선통신사 정사 조엄 서첩(宝暦十四年朝鮮通信使正使趙曮書帖)
1764년 사행 때 정사 조엄이 귀국하는 길 쓰시마에서 전前 번주 소 요시아리(宗義蕃)의 정성스런 접대에 대한 보답으로 선물한 서첩. 금칠, 금사를 사용한 호화로운 ‘접이식첩’에 중국의 고시(古詩)가 다양한 서체로 기재되어 있다.
조선통신사선 가미노세키 내항도(朝鮮通信使船上關來航圖)
6척의 조선통신사 선박이 조슈번 군선의 호위를 받으며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의 가미노세키에 입항하는 모습을 묘사. 1764년 사행 때의 것으로 추정된다. 세토나이카이를 항해하는 통신사 선박을 그린 그림은 드물어서 기록화로서 귀중하다.
습득도(拾得圖)
1643년 사행 때 화원(畵員)으로 동행한 김명국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화가이 그린 그림. ‘습득’은 중국 당나라 때 절강성 천태산(天台山)의 국청사(國淸寺)에 있었다는 전설적인 광승(狂僧)으로, 그 모습이 매우 괴이하여 후세인들이 특별시했고 보현보살(普賢菩薩)의 화신이라는 설이 생겼다고 한다.
하다 스잔 조선통신사 창수시병필어(波田嵩山朝鮮通信使唱酬詩並筆語)
조슈번 학자 하다 스잔(波田嵩山)이 1764년 사행단원들과 학술교류를 행한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