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뉴스레터

인터뷰
국제적 위상을 높인 고려의 외교적 노력을 재조명하다
  • 이정일(재단 한국고종세사연구소 연구위원)

국제적 위상을 높인 고려의 외교적 노력을 재조명하다

 

이진한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사학과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문학석사 및 박사를 취득하였다. 2007년에 일본 규슈대학 한국연구센터 객원교수를 역임하였으며,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회 활동으로는 한국중세사연구회 편집위원장, 한국사연구회 총무이사 등을 지냈으며 금년에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이 되었다. 저서로 『고려전기 관직과 녹봉의 관계 연구』, 『고려시대 송상왕래 연구』, 『고려시대 무역과 바다』, 등이 있다, 최근 논문으로 「고려시대 외국인의 거류와 투화」, 「고려시대 농법의 발달과 투화인의 개간」, 「『삼국유사』의 고려 예종대 불아 장래 기록과 그 장래자에 대하여」 등이 있다.

 

 

최근 재단에서는 고대부터 남북 분단까지의 한국의 대외관계와 외교사를 정리한 『한국의 대외관계와 외교사』 시리즈 고려·조선·근대편을 펴냈다. 이 중 「고려편」 격변하는 동아시아의 시대적 상황에서 고려의 대외관계와 외교를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1000년 전 강대국 거란을 상대로 통쾌한 승리를 거둔 귀주대첩은 고려가 거란과의 긴 전쟁을 끝내고 국제적 위상을 드높인 빛나는 쾌거였다. 이번 『한국의 대외관계와 외교사 - 고려편』의 주편을 맡은 이진한 고려대 교수를 만나 이 책의 학술사적 의미를 확인하고, 한국외교사 연구의 진흥을 위한 몇가지 제언을 들어보고자 한다.

 

 

국제적 위상을 높인 고려의 외교적 노력을 재조명하다Q

최근 재단에서 『한국의 대외관계와 외교사고려편』(이하 『고려편』)을 출간했습니다. 본서의 특징에 관해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한국의 대외관계와 외교사』 시리즈는 재단이 2015년 '한국외교사편찬위원회'를 구성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위원들은 사회과학 분야의 외교사와 한국사의 외교 및 교류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과거, 일제는 조선 강점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사를 외세에 의해 영향을 크게 받는 수동적인 존재로 그렸습니다. 해방 이후 남북한의 학자들이 이러한 조선사의 ‘타율성론’에 대해 비판해 왔습니다만,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우리의 조상들이 동아시아에서 주변국들과 경쟁하며 분투했던 역사를 한국인의 시각에서 통사적으로 서술한 책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시리즈의 발간은 타율성론을 극복하고 한국사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면모를 구체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 연구의 주권을 되찾은 지 68년이나 지나 이러한 성과가 나온 점은 만시지탄의 느낌은 없지 않으나, 오히려 그 만큼 학술사적 의의는 높다고 생각됩니다. 책이 나온 것을 계기로 여러 편찬위원들께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Q

『고려편』 집필에 교수님 포함 총 10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했습니다. 학자들 간의 다양한 학술적 견해차가 있었을 텐데 주편자로서 어떻게 조율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고려시대에 중국은 여러 왕조가 동시에 병존하는 시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송나라가 존속한 960년부터 1278년까지 중국에는 거란, 금, 몽골 등도 있었습니다. 제가 집필한 송과의 외교는 송을 중심으로 거란, 금, 몽골과 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고려가 중국의 다원적인 국제 정세 하에서 어떻게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외교를 펼쳤는지를 서술하였습니다. 반대로 거란이나 금과의 외교를 쓰신 분은 자연스럽게 송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외교적 사건과 관련하여 내용이 중복되기도 하고 시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서로 다른 견해가 병존하는 것이야 말로 역사 연구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이라 생각하여 어느 한편으로 통일하려 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견해를 적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은 용어의 사용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형식은 일치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집필에 들어가기 전에 전원이 모여 기본적인 서술 방향과 원칙에 관해 논의하였고, 먼저 들어온 원고를 다른 집필자에게 보내서 참고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결과 전체적으로 한 사람이 쓴 것 같은 책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Q

책의 서문에서 이 책이 외교사 편찬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이번 『고려편』은버전 1.0’이라고 지칭하셨는데 무슨 의미로 말씀하신 것인지요.

 

A

이번에 나온 『고려편』을 ‘버전 1.0’이라고 한 것은, 외교사로서는 처음 이루어진 저술인 만큼 부족한 점이 있을 것이니, 새로운 연구자들이 더 훌륭한 외교사를 써서 하루빨리 이 책을 ‘구판’으로 만들어달라고 하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최근 유능한 젊은 학자들이 외교사를 전공하고 있고, 국외의 자료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이 책을 뛰어넘은 완성도 높은 ‘한국 외교 통사’가 등장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Q

그렇다면 어떤 점이 이번 책에서 아쉬운 점인지요, 향후 대중들에게 접근성을 더욱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A

책의 집필에 앞서 저희가 고민했던 부분 역시 질문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고려 외교관들의 노력과 성과를 독자들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료를 직접 인용해달라고 집필자 선생님들께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전문성을 강조하다 보니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이에 후속 사업으로 쉽고 재미있는 ‘한국 외교사’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고대사에서 근대사에 이르는 4권의 책이 완간된 이후에 각 시대별로 주요 사건을 모아 한권으로 된 ‘한국 외교사’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요즈음 젊은 세대들에게 외교사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한국 외교사 100대 사건’ 또는 ‘한국의 외교관’ 등을 테마로 웹툰이나 동영상을 제작하여 동북아재단의 홈페이지나 유튜브 등의 미디어 플랫폼에 올리는 것도 대중과 소통하는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국제적 위상을 높인 고려의 외교적 노력을 재조명하다

 

Q

고려 시대에는 중국과의 관계도 복잡했고, 전쟁도 많이 치렀습니다. 혼란한 와중에 고려 왕조가 이룬 외교적 성과라고 한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A

고려 왕조가 주변 국가와 갈등을 겪고 여러 차례 오랜 전쟁을 수행해나가면서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면 패배하거나 멸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뛰어난 외교 역량 역시 고려 왕조를 지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거란과의 전쟁 때를 살펴보면 고려 왕조의 외교적 역량이 발휘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란과의 1차 전쟁 때 서희는 거란의 침입 목적을 정확히 파악하여 소손녕과의 담판을 통해 전쟁을 종식시키고 압록강 부근의 강동 6주를 얻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또한, 현종은 거란과의 3차 전쟁을 승리하였는데도, 국익을 위해 거란과의 사대를 결행하였기 때문에, 거란이 고려의 위상을 존중해주고, 고려 국왕의 생신을 축하하는 사절을 보내는 것과 같은 보통의 책봉관계에서 보기 드믄 수평적인 측면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고려는 인구 300만이 조금 넘는 작은 나라인데도 전쟁 과정, 강화 협상, 전후 처리 등에서 뛰어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여 거대 제국들과 맞설 수 있었습니다. 결국 고려 왕조는 발해 유민을 끌어안고 우산국과 탐라국을 영유하며, 건국 때보다 조금 더 넓은 영역을 보유하여 다음 왕조인 조선에 넘겨주었는데, 이것이야말로 고려가 해낸 최고의 외교적 공적이라고 할 만합니다.

 

 

Q

요즘 한국학에 관심이 있는 외국학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해외 학계와의 공유 방안, 혹은 우리의 연구 성과를 해외에 알리는 방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전 세계적으로 불고있는 한류 붐으로 인해 한국학을 공부하는 외국 젊은이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한국사 전공자로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해외에서 한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아주 유명한 대학을 나온 우수한 인재가 많습니다. 제가 만나서 교류하는 서구학자들 중에는 중국학이나 일본학을 전공했다면, 더 큰 명예를 얻고 부를 얻을 수 있는데도 한국과의 인연으로 한국학을 선택한 분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외국에서 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을 소중히 여기고 진심어린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그분들을 지원할 때 너무 시혜적인 입장에서 그들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외국에서 한국학을 연구하고 싶어 하는 새로운 학문 후속세대의 유입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오히려 겸손하게 성과 위주로 지원하여 그들을 실제적인 ‘연구자’ 또는 ‘학자’로 인정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비단 동북아역사재단뿐만 아니라 한국연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같은 지원기관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분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부한다는 것을 존중해줄 때 더 많은 외국인들이 용기를 갖고 한국학 연구에 도전할 것입니다. 또한, 서구학자들의 경우 대학에서 중국학이나 일본학을 하다가 대학원에 진학하여 한국학으로 전환한 경우가 많아 처음 배운 학문의 영향이 남아 있는데, 그것을 탓하거나 그것을 이유로 그들을 경원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 그들에게 한국 학자들과의 공동연구나 교류의 기회를 자주 부여하여 그들의 사고를 한국적인 것으로 조금씩 바꾸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Q

끝으로 한국의 외교사나 대외관계사와 관련하여 재단에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한국의 대외관계와 외교사 전4권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먼저 이 책은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관계사이므로 영어로 번역이 된다면 영어권 지역에서 한국사를 개괄적으로 이해하면서도 동아시아사를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입문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중국과 같은 강대국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자주 독립 국가를 유지해온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줄 것입니다. 아울러 이 책의 내용 상당 부분이 중국과 관계된 것이므로 중국인 학자들도 흥미를 가질 만 한데, 한글을 모르는 분들이 적지 않으므로 우리가 중국어 번역본을 만들어 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친절을 베풀어야 합니다. 실제로 책이 나온 후 중국의 학자들에게 보여주고 설명하였더니 중국어 번역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맥락에 비춰볼 때 일본과의 관계는 근대편에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므로 일본 역시 일정 부분 수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외교사를 전 세계에 알리는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이며 재단의 설립 목적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