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포럼은 역동적인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지속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이다. 올해로 제13회를 맞이하는 제주포럼의 전체 주제는 ‘아시아의 평화 재정립’이며, 동북아역사재단은 ‘역사 화해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라는 주제로 세션을 개최하였다. 4월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6월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동북아 지역에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이에 한국과 일본의 상호 이해와 협력 관계가 요구되고 있지만, 역사 인식의 문제가 양국 간 협력관계를 증진하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한일 간의 역사 갈등을 미래지향적으로 풀어보자는 취지에서 세션을 기획하였다. 김도형 재단 이사장이 좌장을 맡고, 발표자로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와 우메노 마사노부 죠에쓰교육대학 부학장이 참석하였으며, 토론자로는 하종문 한신대 교수와 남상구 재단 한일관계연구소장이 참석하였다.
자국중심주의 역사 인식 극복 필요
정재정 교수는 동아시아 정세와 각국의 변화를 정리하였다. 한국의 성취와 혼란, 북한의 곤경과 도발, 중국의 강성과 위세, 일본의 분발과 재생, 미국의 건재와 동아시아 재편 정책 전개 등으로 설명하였다. 한국은 객관적으로 현실을 자각하고 국제 정세를 보다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한중일의 무역과 교류, GDP 등 통계를 살펴보면 세계 무역국 중 중국과 일본은 한국의 주요 상대국이다. 동아시아에서 한중일 상호의존관계의 심화와 교류의 점증에도 불구하고 3국은 상대방에 대해 그다지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한중일 3국이 상호 의존적이면서도 역사 문제로 인해 반목하고 있는 상황을 ‘동아시아 패러독스’라고 명명하였다.
동아시아 패러독스의 발생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중일 역사교육과 국민들의 역사 인식 형성 과정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역사교육은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일본은 패전 이후 민주주의 교육으로 역사 인식이 개선되었지만, 아베 정권은 향토 사랑, 전통, 천황과 신화 등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 중화민족주의를 강조한다. 이러한 상황이 동아시아의 역사 갈등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으므로 자국 우월주의를 불식할 필요가 있다. 과도한 국가주의를 극복하고 종래 경시해 온 교류 협력의 역사를 중시하고, 역사 인식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인권과 평화, 자유, 민주 등 보편적인 가치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정재정 교수는 약 30년 이상 일본과 중국 그리고 세계 역사학자와의 공동 연구와 교류 경험을 토대로 병인요법, 대증요법, 생활요법 등의 질병 치료 방법에 비유하여 역사 갈등 극복 방안을 제시했다. 이 요법들은 긴 시간을 필요로 하면서도 단기적이고 지속적인 조치이며, 이를 위해서는 역사 연구에 바탕을 둔 역사교육이 중요하다. 연구자들이 노력하면 마치 EU와 같이 상대국과 공유 가능한 역사 인식 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데 경제 협력, 사람의 왕래, 학생 교류, 환경 등 실행이 쉽고 각국에 이익이 되는 분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한 화해와 공동체론의 사례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소개하였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에서 한중일 각국이 대등한 입장에서 공동 군단을 편성하여 외세 침략에 맞서고, 공동출자은행을 설립하자는 경제 공동체도 제안하였다.
한일 역사 대화와 성과에 대한 ‘공유’
우메노 마사노부 교수는 한일 역사 대화와 교류 성과를 축적하고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며 현 상황을 ‘정체기’로 진단하였다. 일본의 전후 처리는 한국과 협의 없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 인식의 문제를 일본과 본격적으로 논의하지 못했다. 80년대 교과서 문제가 발생하기 전, 역사 교류나 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본격적인 역사 대화와 화해의 계기는 90년대부터로 볼 수 있다.
즉, 미야자와 담화, 고노 담화 등 과거사에 대한 사죄와 반성에 대한 이들 담화는 일본 국내에서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정부 견해이므로 한일 양국 국민에게 공유되어야만 한다.
또한 1990년대부터 과거사 관련 재판이 100건 이상 일본에서 진행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전후 보상 관련 재판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승소 건이 드물지만 ‘사실 인정’이라는 점에서는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 특히 근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 시기에 아시아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연행되었다는 사실이 인정되었다. 어디서 누가 연행되었다는 사실이 있었다는 것, 이러한 사실 인정은 공유되어야만 한다.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가 논란이 된 것은 2000년 전후였는데, 이러한 내용이 널리 공유되지 못하고 한일 양국 국민들에게 충분히 전달될 기회가 적은 상황이다. 한일 간 역사 대화의 결과로 공동 교재가 발간되고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설치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최근 10여 년간은 역사 교류가 활발하지 못하여 성과물도 발간되지 않고 있고 위원회도 정지되어 있다. 우메노 교수는 최근의 이러한 상황을 역사 화해의 정체기라고 보았다. 이 정체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성과를 되돌아보고 공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하였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양국 정부의 공식 발언을 정리하여 공유하는 것은 다음 발걸음을 딛기 위한 첫 단계다.
역사 화해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 필요
이상의 발표에 대해 하종문 교수는 최근 남북 간의 화해가 동아시아 역사 갈등과 어떻게 관련될 수 있는가에 대해 논의하였다. 동아시아에서 남북 화해가 진행되고 있는 이때 새로운 형태의 역사 화해를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상구 소장은 일본 측의 사죄와 반성의 담화를 ‘공동의 자산’으로 표현하며, 현재까지의 공동 자산을 동아시아의 공동 자산으로 활용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하였다.
재단 세션은 청중들이 회의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동시통역으로 진행되었으며 청중으로부터 질의를 받기도 하였다. 재단 김도형 이사장은 역사 화해는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서로 같은 점과 다른 점을 확인해 나가는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하며, 역사 문제라고 해서 역사학자들만의 임무이고 학자들에게만 지워진 과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는 것이라는 말로 회의를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