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영화 <동주>가 윤동주 시인의 기일인 2월 16일 상영을 시작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사실 110분이라는 영화의 러닝타임 안에 윤동주의 27년 2개월 생애를 모두 담기란 애당초 불가능하지만 이 영화를 의미 있게 감상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이야기를 써 보려 한다.
송몽규의 발견과 윤동주 묘사에 대한 아쉬움
영화는 판결문에 적힌 기소 사항의 낭독으로 시작한다. 영화 <동주> 속 일본인 고등형사(김인우 분)는 마치 탐정이야기 속 셜록 홈즈처럼 분석가의 자리에 위치한다. 만약 그의 등장 없이 두 인물이 직접 스스로를 회상하는 식으로 전개됐다면 긴장감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또 송몽규(박정민 분)의 존재를 알린 것은 영화 <동주>의 큰 업적이다. 어린 시절 송몽규는 과대망상으로 들떠있는 듯이 보인다. 송몽규의 아버지는 윤동주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왔는데 그러다보니 더부살이 아이처럼 열등감이 있었고 그것이 송몽규에게 평생 추동력을 주지 않았을까. 숭실시대를 삭제했지만 송몽규의 적극적인 투쟁을 담아야 했기에 영화는 송몽규의 투옥을 연희전문 시절에 있던 일로 편집하였다.
윤동주(강하늘 분)는 송몽규와 대비되는 여린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남을 배려하는 윤동주의 조심스러운 태도에 대한 충실한 묘사도 돋보인다. 사소한 장면일지 모르나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러 경성으로 떠나는 길에 윤동주는 모자를 쓰지 않는다. 아버지가 “야 동주야, 그 연희전문 모자 바로 쓰라”고 하지만 윤동주는 학생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나타내는 학사모를 잘 쓰지 않았다. 아쉬운 점은 연희전문 시절의 윤동주가 너무 나약하게 묘사되었다는 점이다. 후에 연세대 교수가 된 박창해는 “윤동주가 손수레 끄는 여인을 뒤에서 밀어주고 농부와 사귀었다”고 증언했고, 여동생 윤혜원도 “오빠는 어른들이 힘든 일을 하면 외면하지 않았다”고 증언했지만 영화 속 윤동주는 방 안에 틀어박혀 시만 쓸 것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후반부 심문 과정에서 형사에게 당차게 응대하기는 하지만 나약한 청년이 시대의식을 갖고 결단하는 인물로 변하는 과정은 너무 급작스럽게 느껴진다.
시의 선택과 배치가 이룬 영상미
이 영화에서 시의 배치는 중요한 문제였을 것인데 간혹 시의 선택과 배치가 어긋난 경우도 있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정지용 시집》과 백석 시집 《사슴》은 실제 출판 시기가 영화와 다르다. 윤동주의 시는 총 14편이 나오는데 「쉽게 씌여진 시」는 영화에서 여러 번 나뉘어 등장한다. 형사는 동주를 심문할 때 “등불을 밝혀 어둠은 조금 내몰고 /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라는 구절을 읊으며 “세상에 대한 너의 태도가 분명히 읽힌다”고 압박한다. 「병원」은 동주가 후쿠오카(福岡) 형무소 안에서 이름 모를 주사를 맞으러 늙은 의사 앞에 앉을 때 낭송된다.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시를 1940년 12월에 썼지만 영화에는 1942년 후쿠오카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연상하는 식으로 배치되었다.
「별 헤는 밤」의 1~4연 낭송은 영화 <동주>에서 비극적 아름다움을 가장 잘 영상화한 부분이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까닭 모를 주사를 맞고 병들어 버린 윤동주가 감옥 철창 밖을 바라볼 때 별이 쏟아지는 듯한 밤하늘은 확대되고 밤하늘 아래로 카메라가 내려가면서 시퀀스(sequence)는 연희전문 시절로 바뀐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 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감옥에서 죽어가는 가장 비극적인 순간 객관적 상관물인 ‘별’을 매개로 작은 하숙방에서 송몽규, 강처중, 이여진과 《문장》을 편집하는 장면으로 플래시백(flashback)한다. 이어서 송몽규와 윤동주가 문학관의 차이로 목소리를 높인 뒤 윤동주가 이여진을 배웅하며 밤길을 거닐 때 「별 헤는 밤」 5~6연이 다시 낭송된다. 이여진이 윤동주에게 “좋아하는 시인이 누구야?”라고 물었을 때, 마치 윤동주의 내면에서 울리는 혼잣말처럼. 이어서 “별 하나의 추억과 / 별 하나의 사랑과 / 별 하나의 쓸쓸함과 / 별 하나의 동경과 / 별 하나의 시와”(4연)를 이어 넣는다. 「별 헤는 밤」을 영화 <동주>에 배치시킨 방식은 윤동주의 시가 가장 아름답게 영상화 된 장면이다.
영화 속 메시지와 한 권의 시집 같은 엔딩 크레디트
영화 후반부 형사와 윤동주가 나누는 격론(激論)에 제작진이 제시하고 싶은 메시지가 명확하게 담겨 있다. 윤동주는 고등형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시아 해방이란 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수십만 명이 희생되고 있는데...
그게 무슨 희망입니까.”
더불어 동주와 몽규의 생애가 실제 사진과 함께 비교되며 올라가는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ending credit)는 또 하나의 시퀀스를 이룬다. 마치 시집 뒤에 시인의 약력이 나오듯 두 인물의 연표로 닫는 엔딩 크레디트를 보면서 감독이 영화를 한 권의 시집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여러 노력과 장치가 있었기에 많은 대중이 영화 <동주>를 통해 시인 윤동주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었던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