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로부터 식민통치를 받고 해방된 지 반세기가 훨씬 더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국 간에는 여전히 과거사 문제가 풀리지 않은 채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사 문제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인가? 비록 일제가 35년간 우리 민족을 억압하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를 인정하고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정체성을 존중해 주었더라면 한일관계가 지금처럼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오히려 그들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등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필자는 일본 제국주의와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는 프랑스를 사례로 그들의 과거사 인식의 방식을 역사교육의 관점에서 검토함으로써 일본의 문제를 간접적으로 지적해 보고자 한다.
프랑스의 식민지 개척사
프랑스의 식민지 개척의 역사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프랑스의 식민지 개척은 스페인의 독주와 프랑스 내부의 위그노 전쟁으로 인하여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1605년 캐나다의 최동단인 아카디아(Acadia, 노바스코샤주의 옛 지명) 지방에 해안도시 뽀흐 후와이얄(Port-Royal)을 건설하면서 프랑스의 식민지 개척은 본격화되었으며, 1608년는 퀘벡을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북아메리카에 건설된 프랑스의 식민지는 누벨 프랑스(Nouvelle-France)라 불리었는데 누벨프랑스는 동시에 캐나다라는 명칭으로도 불리었다.
식민지 개척 초기에 프랑스는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의 열강들과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다가 나중에는 대영제국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17세기 초 무렵, 북아메리카, 카리브해, 인도 등지에 식민지를 개척하였다. 그러나 프랑스는 18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유럽 열강들과의 전쟁으로 초기에 정복한 식민지의 대부분을 상실하였다. 전열을 정비한 프랑스는 1850년 이후에 아프리카, 인도차이나, 남태평양 일대에 광범위한 식민지를 개척하였다.
프랑스는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식민지로부터 원료를 공급받고 그들이 생산한 공산품을 현지에 판매하는 등 식민지 개척에 적극적이었다. 프랑스는 그들이 개척한 식민지에 프랑스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가톨릭을 전파하는 등 영원한 제국 경영의 꿈을 꾸었지만 1945년 이후에 불꽃처럼 피어오른 반식민주의 운동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식민지를 상실하였고, 1980년에 바누아투의 독립을 기점으로 프랑스의 식민제국은 완전히 해체되었다.
학교 교육에 반영된 프랑스의 과거사 인식
오늘날 프랑스는 오랫동안 공들여 일구어 온 그들의 식민지 개척 역사와 피지배국에게 자신들이 저지른 억압과 폭력적인 행위를 어떻게 교육하고 있을까? 과거사를 바라보는 프랑스의 태도를 파악하기 위해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적 관점을 분석 틀로 설정하고 프랑스에서 가장 대표적인 역사-지리 교과서 2종을 선정하여 관련 내용을 살펴보았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프랑스 교과서에 ‘식민지(Les colonies)’와 ‘탈식민지화(La de′colonisation)’라는 제목으로 각각의 챕터가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식민지 관련 단원에는 제국주의자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정복 행위를 정당화하는 내용 위주로 학습내용이 구성되어 있을 것 같은데 프랑스 교과서는 식민지를 개척하던 당시 프랑스의 대외 정책이나 식민주의자들의 입장도 반영되어 있지만 식민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토착민들에 대한 노동력 착취, 강제동원 등 지배국으로서 자신들의 부정적인 측면도 동시에 지적하고 있다.
두 번째로 오늘날 지배국의 역사교육에 반영된 탈식민지화 관련 단원의 기술 관점에 따라 피지배국의 반발을 일으킬 소지는 다분하다. 만약 프랑스의 교과서에 피지배국의 열등함이 부각되거나 지배국 프랑스가 피지배국에 베푼 혜택을 강조한다면 양국 간에는 적지 않은 과거사 문제가 발생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경우 교과서에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로부터 쫓겨나가는 그림과 식민지를 떠나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제시되고 있으며 조국광복에 열광하는 알제리인들의 모습을 다뤄줌으로써 피지배국의 입장과 정체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교과서의 같은 단원에는 <프랑스 군인의 증언>이라는 읽기자료를 통해 알제리-프랑스 전쟁 당시 프랑스 군대의 잔혹성을 지적하는 내용이 있으며, <학생활동>란에는 “프랑스 군대에 의해 저질러진 전쟁의 폭력성을 지적하라.” 등과 같은 형식으로 과거에 그들이 저지른 폭력적이고 부정적인 행위와 역사를 직시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가르쳐야
오늘날 일본의 태도는 어떠한가? 피지배국이었던 한국민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한국의 독립을 존중하는 내용이 그들의 교과서에 기술되어 있는가? 한국을 식민통치했던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반성이나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있나? 비록 일본이 한국민들에게 35년간 씻을 수 없는 고통과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혔다 하더라도 과거에 저지른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한다면, 한일 간의 역사인식의 차이는 점차 좁혀지고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마음의 상처도 어느 정도 누그러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그들의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만행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있으며, 그들이 전쟁의 피해자인 것처럼 역사적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프랑스의 사례는 한일 간의 과거사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오늘날 역사교육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왜곡하거나 미화한다면 관련국들 간의 과거사 문제가 풀어지기는커녕 더욱 꼬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프랑스의 사례에서 본 것처럼 역사를 직시하고 균형 잡힌 내용 구성을 통해 지배국이 과거에 저지른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피지배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면 당사국들 간에 존재하던 역사인식의 차이는 좁혀지고 다가오는 역사는 함께 공유할 수도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