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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꾸준히 실적을 쌓아 동아시아 역사화해의 중심이 되길

정재정 서울시립대 교수


2016년 동북아역사재단이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동북아역사재단 뉴스〉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재단의 활동성과를 점검하고, 재단의 발전을 위한 고언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번 호에는 제2대 이사장을 지낸 정재정 서울시립대 교수에게 한·일 관계를 전망하고 동아시아 역사 영토 갈등 현황 진단을 바탕으로 재단의 발전 방향에 관한 조언을 듣는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교수

한일관계사학회 회장, 일본 도쿄대학 특임교수,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객원교수, 서울시립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제2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로 《일제침략과 한국철도》(1999), 《교토에서 본 한일통사》(2007), 《한일의 역사갈등과 역사대화》(2014), 《주제와 쟁점으로 읽는 20세기 한일관계사》(2014), 《한일회담 한일협정, 그 후의 한일관계》(2015) 등이 있다.

 

Q 재단 이사장 임기를 마치고 왕성한 연구와 저술활동을 하고 계시다. 퇴임 후 어떻게 지내셨으며, 현재 관심을 기울이고 계신 연구 주제가 있다면?

 

정재정 재단 이사장 임기를 마친 지 벌써 5년이나 지났다. 그동안 학교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밀린 연구를 하고 있다. 오랜만에 학생들을 만나 재단에서 경험했던 일들을 토대로 보다 넓은 시각에서 생생한 역사를 가르치다 보니, 학생들도 좋아하고 보람을 느낀다.방학 때는 특임교수로 일본 홋카이도대, 도쿄대에서 강의를 하며 보냈다. 요즘은 철도와 서 울에 관련된 역사, 곧 서울의 철도시설이 어떤 경위를 통해 형성되고 또 철도가 서울시민의 생활과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구명(究明)하는 책을 쓰고 있다. 언론에 발표한 나의 역사인식을 정리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

 

Q 재단은 역사 현안에 관한 연구도 하고 정책 대안도 만들고 교육과 홍보 및 시민사회와 협력도 병행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정재정 재단 설립 이유 중 하나가 인근 국가와의 역사 갈등에 잘 대응하라는 것 아닌가? 그것은 재단의 숙명인 동시에 강점이 될 수 있다. 일반의 역사 연구자들은 보통 자기가 좋 아하는 주제를 선택하여 사료와 자료에 파묻혀 지내게 된다. 그러다 보면 국민의 관심과 멀어지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문제와 씨름할 수도 있다. 반면 재단에서는 항상 국민의 관심 이 뜨거운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연구 결과가 정책에 반영 되기도 하고, 국민의 의식과 여론을 선도하기도 한다. 국민에게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또 외국과 수많은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하고 빈번하게 교류한다. 이는 연구자들에게 자극이 되어 폭넓은 역사관을 정립하는데도 도움을 준다. 따라서 이런 것들을 잘 조화 시켜 나간다면 대단히 좋은 연구 성과와 정책 제언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사장 퇴임 후 3권의 책을 썼는데, 재단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많이 반영했다.

 

Q 현재 한일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정재정 역사담론이라던가 역사인식이라는 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시대 상황에 따라 파동을 이루며 바뀌고 변한다. 최근 역사수정주의에 경도된 아베 총리가 지도자로 등장해 한국과 일본이 서로 대립하는 상황을 맞기도 하였지만, 크게 보면 한일관계는 개선되는 쪽으로 전진해 왔다고 생각한다. 역사인식과 과거사처리에서도 서로 접근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지난해 말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양국 합의에서도 두 나라는 나름대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면서도 타협하는 자세를 보였다. 재단은 이런저런 상황 변화를 정확히 진단하고 적절히 대응해가는 게 중요하다.

 

Q 최근 미국은 일본에게 한국과의 역사문제에서 최소한도로만 사과를 하게 하고 그 뒤 일방적으로 일본 편을 든다는 느낌이 든다. 자격지심일까?

 

정재정 확실히 미국은 역사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이 심각하게 대립하는 것을 걱정한다. 동아시아 안보 동맹의 기반을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미국 사회 한 편에서는 한·일 관계에서 한국의 인식에 상당 부분 동조하고 지원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은 한·일 관계만 보는 나라가 아니다. 동아시아 전체와 세계를 놓고 전략을 세 우는 나라다. 우리도 한·일 관계만 생각하지 말고 한·미 관계, 미·일 관계도 생각하면서 한·일의 역사 문제를 봐야 한다. 더 크게는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시야에서 한·일 관계 를 바라보고, 우리의 역사인식도 세련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외국과 역사문제를 논할 때에는 상대방이 납득할만한 언어와 태도를 구사하고, 유연하고 품위 있 는 언설로써 감동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Q 일본에 무조건 ‘안 했다’고 하기보다는 ‘이런 것은 좀 했는데 이런 것은 부족하고 이런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설득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였는데, 이런 말이 통할지 의문이 든다.

 

정재정 어느 쪽을 택하든지 가장 강력한 힘은 ‘사실’에서 나온다. ‘사실’에 어긋난 언동은 당시에는 시원할지 몰라도 오래 지속하지 못할뿐더러 다른 사람들이 납득하지 못한다. 예 를 들어 한·일 관계에서도 우리는 일본에게 매번 “사죄하라, 반성하라”고 하지 않나? 언론 보도나 여론 동향 등을 보면 마치 일본이 한 번도 식민지 지배에 대해 반성이나 사죄를 안 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1965년 무렵만 해도 일본에는 이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역사인식이 없었다. 하지만 그 후 50년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민주주의가 정착되 면서 일본인의 역사인식도 크게 바뀌었다. 특히 1990년대 이후에는 정부 요인이 여러 차례 사죄와 반성의 뜻을 분명히 표시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인정한 고노 담화, 식 민지 지배에 사죄와 반성을 언급한 무라야마 담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강제병합을 언급한 간 나오토 담화 등과 같이, 일본이 보여준 진전된 역사인식을 무시한 채 원론적으로 계속 사과와 반성을 이야기하면 일본인에게 오히려 반감을 사기 쉽다. 그러니 평가할 것은 평가하고, 부족한 점은 부족한대로 지적하는 것이 맞지 않겠나. 일본인들의 사과를 두고 흔히 ‘진정성’이 없다고 지적하지만, 사실 일본어에는 ‘진정성’이란 표현이 없다.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표현으로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기 보다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으 로 설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정재정 서울시립대 교수

 

Q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에는 동아시아공동체 담론이 활발했는데, 요즘은 잠잠하다. 이 담론은 이제 용도폐기된 것일까?

 

정재정 그것도 역사의 사이클과 관련된 문제인데, 지금은 한·중·일 3국 지도자들이 모두 상대적으로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시아인으로서 정체성이랄까 동 아시아 공동 번영을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한·중·일 세 나라는 여전히 매우 밀접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세 나라는 나라별 무역액 비중에서 서로 1~3위를 차 지하고 있으며, 매년 각국을 오가는 여행객이 약 2천만 명에 이른다. 지금처럼 교역과 사람, 정보가 활발히 오가는 현상은 역사에서도 드물었고, 현재 어느 지역에서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역사 문제, 역사인식 문제에서는 세 나라가 견원지간 비슷한 상황인데, 아마도 각 나라에서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여 분위기가 바뀌면 자연스럽게 다시 논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것은 중국과 일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대국이라는 사실이다. 일본도 자국 내수시장만으로 경제가 성립하는 나라고, 중국은 자신들이 곧 세계라고 믿는 나라다. 반면 한국은 GDP 90%를 무역에 의존하는 나라 아닌가? 중국이나 일본은 동아시아공동체에 관한 생각이나 기대가 우리만큼 절실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Q 제1기, 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 참여하셨는데, 3기 발족은 가능할까?

 

정재정 지난해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양국 지도자들이 통 큰 결단을 내려 ‘역사화해’로 방향을 제시하고, 다시 한 번 역사공동연구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 만 두 나라 지도자가 만나지도 않는 분위기에서 그에 관한 논의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만약 그 시점에서 공동연구를한다면 오히려 갈등이 커지고, 그럴 거라면 안 하느니만 못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두 나라 역사가들은 1, 2기 공동연구과정에서 서로 충분히(?) 싸웠고, 무엇이 문제인지도 잘 알고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의 공동연구는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작업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로는 어려울것 같다. 물론 그래도 필요하다고는 생각한다. 2014년 《한일의 역사갈등과 역사대화》라는 책을 냈는데, 일본에서도 출판되어 많이 읽히는 모양이다. 역사공동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의식이 확산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 한·중 교류가 활발해졌다. 재단도 한중 인문교류에 참여하고 있는데, 일부에서는 한중 인문교류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재정 역사인식이라는 것은 나라마다 민족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로 합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렇지만 서로 대화하면서 상대방의 역사관을 알면, 이른바 ‘화해를 위 한 싸움’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가 그동안 일본과는 그런 경험을 축적해 왔는데, 중국과는 좀 더 장기적으로접근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9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이 개 최한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돌’ 열병식에 참석하였다. 나도 초청을 받아 북경에 가서 심포지엄에 참석하고 그 행사를 지켜봤는데, 역시 한국과 중국은 체제와 이 념, 가치와 지향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차이를 뛰어넘어서 어떻게 교류하고 협력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

 

Q 재단 설립 10주년을 맞는다. 이사장으로 계시던 때를 포함해재단의 지난 10년을 평가한다면? 또 앞으로 미래 10년을 위해 조언해 주신다면?

 

정재정 먼저 재단은 지난 10년 동안 중국, 일본과 역사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싱크탱크로서 관련 주제에 관한 깊은 연구, 자료의 수집과 축적, 정책 제언과 국제 교류, 홍보와 교육 등을 나름대로 많이 해왔다고 생각한다. 이사장 퇴임 당시가 설립 6년째였는데, 나오면서 백서를 만든 기억이 있다. 그동안 해온 일들을 묶었더니 꽤 두꺼운 책이 되었다. 그런데 일은 많이 했는데, 빛은 찬란하지 않은 것 같다. 따라서 재단이 국가와 국민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을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지금까지 해온 수많은 연구와 사업을 어떻게 잘 정리해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방 향으로 묶어갈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두 번째로 재단은 다른 연구기관과 달리 역사현안에 관해 정확한 지식의 생산, 자료의 축적, 정책의 제안, 경우에 따라서는 실행까지도 해야 한다. 그것을 무시하고 다른 연구나 사업을 하겠다고 고집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점을 마음에 새기면서 구성원들이 재단의 아이덴티티를 적극적으로 정립해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말하면, 2010년 일본의 한국강점 100주년을 맞아 그해 8월 일본의 간 나오토 수상이 담화를 발표했다. 그것은 역대 수상 담화 중 가장 진전된 역사인식을 담았다. 여기에 “3.1운동에서 나타났듯이 정치적,군사적 조건 아래서 한국인의 의사에 반하는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인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끼친 것에 대해 통렬한 반성과 사죄의 뜻을 표시한다.”는 식의 문구가 들어가는데 나도 어느 정도 기여했다. 조선왕조의궤의 반환을 실행하는 데도 일조했다. 나는 그때까지 10여 년 동안 서울에 거주하 는 일본인을 상대로 역사 강의와 역사 기행을 실시해왔는데,나의 강의와 기행에 참가했던 모 인사가 의궤 반환의 법률을 통과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뜻하지 않은 데서 성과를 올린 셈이다. 재단은 이렇게 음양으로 역사 외교에서 꾸준히 실적을 쌓아가야 한다. 세 번째로 재단이 할 일은 동아시아 역사 갈등을 일으키는 중국과 일본의 억지 주장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대응하면서도, 궁극적으로 한국은 역사화해를 지향한다는 메시지를 발신해 야 한다. 중화주의나 황국사관은 역사의 재앙이었다. 이 점을 분명히 경계하면서 우리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역사관을 천명해야 한다. 그리고 인근 국가와 역사화해를 추구 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국은 국제화, 세계화를 선도하는 허브 국가로 나아갈 수 있고, 재단은 그 네트워크를 선도하는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재단과 그 구성원의 끊임없는 노력과 정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