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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제3회 한·러 정례 학술회의 한·러 교류 협력의 길을 모색하다.
  • 우성민 정책기획실 연구위원

지난 9월 19일부터 22일, 재단과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극동지부 역사고고민속연구소는 블라디보스톡에서 "동아시아 역사화해를 위한 한·러 간 교류와 협력"이라는 주제로 제3회 한·러 정례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블라디보스톡은 '동방을 지배하라'는 그 뜻에서 보여주듯 1860년 북경조약을 통해 러시아가 청나라로부터 받은 연해주의 주도(主都)다. 러시아 정부는 새롭게 획득한 러시아 극동 영토 개발에 필요한 한국인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인의 연안 지대 경작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였고, 그 결과 1869년 경 블라디보스톡에서 한 시간 거리인 우수리스크 지역에 한인 마을이 생겨났다. 고종은 갑신정변 후 조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러시아에서 찾고자 이곳 연해주로 사절단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또한 안중근이 거사를 계획하고 하얼빈역을 향해 출발한 곳도 바로 블라디보스톡역이다. 도시 구석구석에서 국외독립운동의 중추기지 구실을 하였던 흔적을 아련하게 볼 수 있었다. 현재 블라디보스톡은 150년 동안 일구어 놓았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하였고, 내년도 블라디보스톡 APEC 정상회의 준비가 한창이었다.

동아시아 역사화해를 위한 한·러 관계 토론

"동아시아 역사화해를 위한 한·러 간 교류와 협력"을 주제로 이틀간 진행된 이번 학술회의는 3개의 세션으로 나누어 역사학을 비롯한 문학, 정치, 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동아시아 역사화해를 위한 한·러 교류 협력의 길을 모색하였다.

제1세션, 역사학 분야에서 브라디(Vradij) 러시아 극동지부 역사연구소 부소장은 "한국에서의 러시아 상(像)의 형성(19세기 한국 자료를 바탕으로)"을 주제로 19세기말 한·러 관계를 보여주는 1880년대에 편찬된 아국여지도(俄國輿地圖)의 한인 이주 관련 내용을 분석하였다. 김영수 재단 연구위원은 "주러 한국공사 이범진과 한·러 관계" 발제에서 이범진 일대기 분석을 통해 그의 죽음이 자살이 아닐 가능성을 문제제기하며, 그동안 이범진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되었지만 한·러 외교협력관계의 주요 인물로, 최근 한국에서는 재평가를 시작하였고, 현재 관련 자료 복원 중임을 밝혔다. 문학 분야 발제를 맡은 문준일 경상대 연구교수는 "한·러 관계의 발전을 위한 양국 간 문학 분야 협력 방안연구"를 주제로 한국과 러시아는 아직 상대국에 대한 문화 상징을 갖지 못하고 있는 실정을 지적하였다. 정치 분야에서 미쉰(Mishin V. Ju.) 러시아 극동지부지역 안보센터장은 "이산가족·한국인의 민족적 비극 : 역사, 문제점들 그리고 그것의 해결방안"을 주제로 한반도 이산가족의 비극을 고찰하면서 통일이 한국만의 독단적인 힘으로 가능한지, 이와 관련해서 러시아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하였다.

제2세션에서는 최근 국내외 이슈가 되고 있는 독도와 동해표기 문제에 대해 재단 연구위원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도시환 재단 연구위원은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과 동북아 영토분쟁의 국제법적 함의-독도영유권 문제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가운데 한국 독립을 인정한 제3조항 및 독도가 일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것임을 검증하였다. 유하영 재단 연구위원은 "근대 이후 한·러관계와 국제법적 현안"발제를 통해 동해를 통한 한·러협력 문제를 검토하였다. 제2세션 마지막 발표와 둘째날 오전에는 러시아측에서 남·북한 통치이념과 정치체제에 대해 다루었다. 러시아 극동대학 톨스토쿨라코프(Tolstokulakov) 교수는 "북한 대외 정책의 사상적 기조"를 주제로 북한 이데올로기의 변화에 대해 발표하였고, 극동대학 예르몰라예바(Ermolaeva E. M) 교수는 남한의 통치이념과 체제에 대해서 발표하였다.

사회문화 분야에서는 꼬롤레바(Koroleva V. A.) 러시아 극동지부 역사연구소 교수가 "연해주 라디오방송위원회 한국담당부서 '1934~1937년'"을 주제로 1937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 이주정책 이전 1920~1937년까지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시기 한인과 중국인에 대한 민족정책을 다루었다. 특히, 1934년 라디오 방송위원회 한인관련 방송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한인 지휘자 '원세연'이라고 하는 위대한 음악가의 탄생 배경을 분석하고, 그녀가 극동지역에서 소비에트 한인 노래의 창시자로 칭송받기까지 활약한 내용을 밝혔다.

역사갈등과 영토의식에 대한 공감대 형성

마지막 오후 세션에서는 "중국 부상에 대한 한·러의 인식"에 대해 다루었는데 먼저 필자는 "중국 부상과 중국 역사학계의 새로운 해석"을 주제로, 당이 세계제국이 될 수 있었던 점은 '군림'이 아닌 '융합과 포용'에 있는데, 지금 중국은 21세기 세계 최강국 도약을 목표로 '성당(盛唐)시대 재현'을 강조하지만, 사실 '군림'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그러한 중국의 야심은 역사학계에도 반영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러시아측에서 레반첸코(Ryabchenko N.) 러시아 극동지부 역사연구소 교수는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의 역할 :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의 긍정적 역할을 분석하며 몇 가지 사례를 예시하였다. 흥미롭게도 러시아측은 중국 역사학계의 문제점에 대해 공감하지만,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중국의 긍정적인 역할 이외에는 발표를 제한하였다고 언급하였다. 이를 통해 한·중·일 역사갈등에 대한 러시아의 균형자로서의 역할에 대해 토론할 수 있었다.

이번 한·러협력포럼은 지난 2년간 근대 한·러 외교사의 초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다양한 주제를 통해 역사갈등과 영토의식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또한 아직 국내학계에 소개되지 않은 러시아측 자료를 활용한 연구성과는 향후 한·러 관계 공동연구 증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지속적 연구를 통해, 위대한 한인 지휘자 원세연의 작품을 복원하여, 조수미와 같은 세계적인 우리나라 음악가가 한·러 정상회담에서 공연하는 날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