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말 일본에서 날아온 두 가지 소식은 일본군 위안부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3월 30일 발표된 일본 문부성의 고교교과서 검정 결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소송이 제기돼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가 되고 있다'고 서술한 부분에서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라는 표현이 삭제되었다고 한다. 이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종결되었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튿날에는 지난 95년에 설립되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금 지급 등의 임무를 담당해온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 해산했다. 이 기금은 청구권 협정에 의해 법적 보상 책임이 종결되었다고 주장하는 일본정부가 도의적 책임을 표현하기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민간기금 형태로서 발족시킨 것이다.
발족 당시부터 일본 정부의 책임 회피 수단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잇따라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와 정대협 등 관련 민간단체들이 기금 수령을 거부하였고, 10여 년 동안 기금의 현금 지급을 수용한 피해자가 극소수에 그치는 등 동 기금의 활동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런 가운데 별다른 후속 조치 없이 기금을 해산한 것은 혹 도의적 차원에서도 일본이 책임을 다했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최근 일본 정부의 행보는 이런 우려를 더욱 깊게 한다. 아베 총리가 "광의의 강제성은 있어도 협의의 강제성은 없었다"고 한 데 이어, 일본 정부도 "강제 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위안부 강제 동원을 공식 부인하였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은 이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과 직결된 사안으로,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 당국이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것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없음을 주장하려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위안소의 설치, 위안부의 모집과 이송, 그리고 위안소 운영 등 위안소 제도 전반에 걸쳐 일본군 혹은 정부가 통제·감독했음이 일본군 및 정부의 자료에 나타나고, 상당수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군·경찰 등 관헌에 의한 폭력적 동원을 증언하고 있다. 무라야마 전 총리의 말처럼 "일본군이 위안소를 만들어 운영한 것은 틀림없다는 점에서 일 정부는 책임이 있는 것"이며, 일본군의 강제동원 직접 개입을 입증하는 물적 증거의 존재유무는 부차적인 사항이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요시미 요시아키 일본 중앙대 교수는 일본군과 정부의 개입을 보여주는 공문서를 발견하여,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과 국가적 책임을 인정하고 반성과 사죄를 표명한 고노 관방장관 담화를 이끌어내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는 책 서문에서 1991년 12월 김학순 할머니가 NHK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군에게 짓밟혀 비참하게 망가진 인생을 호소하며 "일본과 한국의 젊은 세대가 과거 일본이 저질렀던 일을 알았으면 한다"는 말에 감동해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유례없는 인명살상을 경험한 지구상의 여러 국가와 민족은 저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처럼 참혹한 사태의 진상을 밝히고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일방적 책임 추궁을 하려는 것보다는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는 그와 같은 잔혹행위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인류공존공영의 가치를 발견하여 후세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보스니아 사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여성에 대한 전시 폭력이 20세기 말에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지나간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인류보편의 해결 과제임을 상기시킨다.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과 진솔하게 대면하는 것에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 있음을 다시금 일깨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