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유적지 조사와 참고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2002년 7월 말 중국 장춘(長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새로 문을 열었고, 장춘에서 제일 크다는 서점을 갔다. 그런데 진열된 수 많은 도서들을 훑어보면서 놀라운 책 한권을 발견하고 그것을 구입하였다. 바로 『노조편(老照片) 16집』(2000년 12월, 산동화보출판사 발행)이란 책이다. 근현대 시기 중국의 풍물사진이나 회고담,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해설 따위를 모아 정리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에는 눈이 번쩍 뜨이는 사진이 몇 장 있었다. 바로 1937년 12월 일본군의 남경(南京)대학살 당시 소위 '중국인 목베기 시합'을 벌이던 두 장교가 일본 패전 후 중국에서 재판을 받고 총살당하기 직전 찍은 사진이었다. 이 사진과 함께 중국인 105명의 목을 벤 노다(野田)와 106명을 참수한 무가이(向井) 소위가 계속해서 경쟁적으로 중국인의 목베기 시합을 벌이고 있다는 1937년 12월 13일자 『동경일일신문(東京日日新聞)』기사도 함께 수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희대의 살인마인 이 두 장교는 바로 그 신문기사 때문에 일본이 패전한 뒤 A급 전범으로 지목되어 중국 당국의 전범재판에 회부되었다. 이들은 재판 결과 당연하게도 사형을 언도받았다. 이에 따라 1948년 1월 28일 중국에서 총살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이들은 재판정에서 위의 일본 신문에 실린 기사가 허위기사라고 둘러대는 등 자신들의 죄과를 인정치 않고 적반하장으로 억울하다는 주장을 펴 재판정을 어리둥절하게 하였다.하지만 이들 전범들은 총살당하기 직전 담배 한모금씩을 피고 결국 저승-아마도 지옥-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 악귀같은 일본군 장교들이 전혀 반성의 기색을 보이지 않고,오히려 총살되기 직전에 두손을 번쩍들고 군국주의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천황폐하 만세!" 따위의 허망하기 짝이 없는 구호였을 것이다.
현대전에서 일본도로 100명 넘게 적의 목을 벤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죽인 수백명의 중국인들은 사실상 무고한 민간인들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들 일본군 장교들은 마땅히 극형에 처해야하는, 흉악하기 이를 데 없는 수괴급 전범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태도를 보라!
이 사진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경우를 생각해보았다. 일제 강점기 일본 관헌이나 군경의 학살만행이 부지기수였지만, 언제 이들 전범을 적발하여 처단한 적이 있었던가?
예를 들면 3·1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4월 15일 수원 제암리에서 20여명의 일본군을 지휘하며 40여명의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던 일본군들은 당시 어떠한 처분을 받았고 해방 이후 한국정부가 수립된 이후 이들에 대한 처벌과 응징을 요구한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부끄럽게도 단 한 명의 일본 군경이나 민간인 전범도 단죄하지 못했다. 제암리 학살사건의 만행을 저질렀던 일본군 중위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는 겨우 30일간의 '근신' 처분을 받았을 뿐이다. 당시 이러한 민간인 학살만행 소식을 보고 받은 조선주둔 일본군 사령관이자 육군대장이었던 우쓰노미야 다로(宇都宮太郞)는 조직적으로 이 사건을 은폐하여 국내외 여론에 이 사건이 알려지는 것을 막았다. 최근 우쓰노미야가 쓴 일기가 공개되었는데, "(이 사건이) 제국의 입장에 심대한 불이익이 되기 때문에 간부들과 협의한 끝에 저항을 했기 때문에 살육한 것으로 하고 학살·방화 등은 인정치 않기로 결정했다"고 기록하였다. 이에 따라서 이 학살만행의 주역인 아리타는 형식적인 가벼운 처벌을 받았을 뿐이다. 최근 일본은 군비증강과 우경화의 길을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아베 국무총리와 일본 내각은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마저 부인하고, 일각에서는 나아가 동경재판까지 부정하려는 무모한 행각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일본정부와 일부 우익세력의 동향을 비판하는 양심세력도 있지만, 우리는 진정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일본인들은 이웃에 가한 피해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이 오히려 전쟁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비교적 문화적 동질성이 큰 동아시아 3국의 진정한 상호이해와 선린교류, 평화체제의 구축은 멀기만 한 것일까? 이 사진을 보면서 억누를 수 없는 분노와 허탈, 그리고 증오의 감정이 일어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도 똑같이 미워하기만 해서는 안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상대방의 진정한 반성과 참회가 없는 용서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