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일본군‘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발언을 해 국내외에 파문을 일으켰다. 아베 총리는 자신의 발언을 둘러싼 국내외 파문을 잠재우기 위해 자신은 고노 담화를 계승하고 있으며 ‘위안부’피해자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하고 있다고 표명했다.
그러나 정작‘위안부’문제에 대한 발언은 철회하지 않았다. 문제가 되고 있는 아베 총리의 발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위안부’모집과정에서 민간에 의한 강제(광의의 강제)는 있었으나, 군이나 관헌이 ‘집에 들어가 강제로 끌고 간 것 같은 협의의 의미’에서 강제는 없었다. 민간업자에 대한 군의 요청은 협의의 의미의 강제에 포함되지 않으며, 광의의 강제에 대한 책임은 민간업자에게 있다. 따라서 일본 정부나 군에게 직접적 책임은 없으며,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에 제출된 일본군‘위안부’결의안도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것이므로 인정할 수 없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강제성이란
강제를 협의와 광의로 구별하는 것은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레토릭이다. 따라서 먼저 아베 총리가 제기한 ‘협의의 강제성’이라는 개념의 허구성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첫째, 아베 총리는 강제성 문제를 동원과정의 문제로만 축소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강제성은 모집 과정뿐만이 아니라 이송 과정, 위안소 생활에 있어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구속·강제는 없었는가, 피해실태는 어떠한가 하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인권침해로, 피해자가 단순히 모집과정의 피해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1993년 고노 담화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동원, 이송, 운영에 일본정부(군)가 관여했고 그 과정에서 강제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할 명백하고 부정할 수 없는 자료들이 이미 시중에 나와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서 요시미 요시아끼(일본중앙대 교수)의 『종군위안부 자료집』(從軍慰安婦 資料集), 여성을 위한 평화국민기금 『정부조사 종군위안부관계자료집성(전5권)』이 있다.
둘째, 아베총리는 민간업자에 대한 군의 요청은 있었으나 이는 협의의 강제에 포함되지 않고, 민간업자에 의한 강제는 일본 정부(군)의 책임이 아니라 민간업자의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쟁시기 거짓말과 감언(사기)에 의한 유괴(誘拐)도 폭행이나 협박을 수단으로 한 약취(略取)죄와 똑 같은 범죄(3개월이상 5년이하의 징역)로 취급되었다. 또한 유괴·약취·인신매매된 자를 해외로 이송하는 자는 국외이송죄(2년이상 징역)에 의해 처벌했다. 당시 ‘위안부’ 모집활동이나 이송은 군이나 경찰의 통제하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민간업자들의 불법행위에 대해 일본 정부(군)의 책임이 없다고 한다면 1945년 이전의 일본 정부는 민간 업자들의 광범위한 불법행위를 막을 수 없을 정도의 무정부 상태였다는 말인가? 식민지 조선에서 ‘위안부’동원은 취업사기나 인신매매와 같은 공창제도 메커니즘이 주로 이용되었다. 즉 관헌이나 군이 묵인하면 협의의 강제 없이도 ‘위안부’로의 동원이 가능했던 사회구조였던 것이다.
결국 협의의 강제 즉 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이 없었으므로 군‘위안부’에 대한 강제성은 없었고 일본 정부(군)의 책임도 없다는 주장은 역사적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레토릭에 불과한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있어 협의의 강제성 없었는가
그렇다면 아베 총리의 말대로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서 ‘협의’의 강제성은 없었던 것일까.
첫째, 위안소의 설치, 관리, 이송은 물론 위안부의 모집 과정에서도 일본 관헌이 직접 가담한 바 있다는 사실은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에서 이미 명백히 인정한 바 있다. 더욱이 고노 담화 이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 실태에 대한 광범위한 규명이 이루어졌고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역사적 인식 또한 발전해 왔다. 요시미 요시아끼는 전쟁지역이나 점령지역에서는 군이 직접 징집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으며 군이 직접 납치한 것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을 밝혀낸 바 있다.
둘째, 이번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네덜란드 피해자 얀 루프 오헤른(86세)씨는 일본군에 의해 납치되어 강제로 일본군‘위안부’가 되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한국의 피해자 할머니들의 경우도 강제로 납치되었다고 증언하고 있고 이러한 증언이 고노 담화의 근거가 되고 있는데, 아베 총리는 3월 5일 일본 국회 답변에서 미 하원 청문회에서 이뤄진 증언 중 어떤 것도 확고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군이나 정부 조직에 의한 범죄의 경우 대부분은 문헌자료를 남기지 않는다. 피해자 또한 자료를 남기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피해자의 증언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만약 피해자의 증언이 신뢰할 수 없다면 그 이유와 증거를 명백히 밝혀야 할 것이다.
셋째, 윤명숙(한성대 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조선총독부가 직접 작성한 문헌사료는 발견되지 않고 있으나 일본 육군성이나 내무성이 일본군 ‘위안부’ 모집이나 이송과 관련해서 척무성(내무성)을 통해 조선총독부로 통첩한 자료는 상당수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총독부의 관련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조선총독부가 관여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실이 은폐되거나 말소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손바닥으로 역사적 진실을 가릴 수는 없다
문헌사료가 없는 것이 문제라면 일본 정부가 모든 관련 자료를 공개하고 문헌사료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해야 할 것이다. 일본 정부의 자료 공개와 조사가 철저하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연구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아베 총리의 발언은 군‘위안부’의 모집, 관리·운용에 있어서 일본 정부의 관여와 책임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를 실질적으로 부정하는 것으로써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아베 총리에게 일본군‘위안부’문제에서 강제성을 인정하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엄연한 역사적 진실이기 때문이지 결코 정치적 결단 차원에서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
아베 총리가 진심으로 ‘위안부’피해자의 고통을 동정(同情)하고 마음으로부터‘사죄’한다면 더 이상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절실한 절규를 외면하지 말고 역사의 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임으로써 밝은 미래를 열어가는 길을 선택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쪾본고는 국정브리핑(3월 7일 게재)에 기고한 내용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임
‘위안부’ 참상에 무지한 국제사회 영상통한 교육·홍보에 진지한 관심을미국 New America Media 기자 한 우 성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세계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달 들어 확인된 보도건수만 BBC가 4회, 뉴욕타임스가 6회, CNN이 6건 등이다.< AP통신, 로이터통신도 관계 기사를 계속 타전하고 있다. 일반인이 이들 언론사의 명성과 보도회수만을 놓고 봐도 그렇겠지만 기자의 입장에서 이 현상을 보면 문자 그대로 상전벽해와 같은 갑작스러우면서도 엄청난 변화다.
보도의 정확성이나 객관성이라는 면에서 세계 최고 언론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BBC(영국)를 꼽을 것이다. 뉴욕타임스(미국)의 명성 또한 결코 이에 못지 않은데, 이 신문은 주요 기사가 매일 미국 대통령에게 정기적으로 보고된다. CNN(미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케이블 뉴스다. 또, AP통신(미국)과 로이터통신(영국)은 AFP(프랑스)와 함께 세계 3대 통신사를 구성한다. 이런 매체들이 최근 1개월 사이에 갑자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주요기사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을 한국은 각별히 주목해야 한다.
국제적인 언론만이 아니다. 이달 들어서만 리 자오싱 중국 외교부장, 존 하워드 호주 총리, 막시메 베르하겐 네덜란드 외무장관, J. 토마스 시퍼 주일미국대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 발언을 했다. 물론 이들의 발언 요지는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 승전국(서구)이 판을 짰던 세계질서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종전과 함께 시작된 냉전구도의 틈새를 활용해 재기에 성공한 일본으로서는 서구 지도자들까지 과거사를 놓고 공식적으로 일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 모든 갑작스런 변화는 특히 19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피해자 및 시민단체의 끈기 있는 투쟁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나 역시 단기적인 직접적 동기는 지난 2월 15일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산하 아시아태평양환경소위원회에서 있었던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청문회 자체 보다는 이에 위협을 느낀 일본정부가 “미국의회가 결의안을 채택해도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거나 “위안부를 강제로 연행했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며 구차스런 작태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언론보도나 외국 특히 서방 지도자들의 발언 외에도 한국이 각별히 주목해야 하는 변화가 또 있다. 조만간 남경학살을 놓고 미국을 무대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질 작은 ‘영상전쟁’이다.
중국과 일본이 벌이는 영상전쟁
올해는 남경학살(1937~1938년) 70주년으로 지난 3월 1일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따르면 남경학살을 주제로 최소 1편의 극영화가 제작될 예정이며, 최소 3편의 다큐멘터리 필름이 이미 제작됐거나 앞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3편의 다큐멘터리 필름 가운데 2편은 남경학살의 잔학상을 고발하는 작품이고 나머지 1편은 남경학살이 허구임을 주장하는 작품이다.
여기서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극영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만행을 고발한 극영화 ‘쉰들러스 리스트’(Schindler’s List) 한 편이 세계에 미친 영향을 되돌아보면 왜 중·일이 영화 제작에 그토록 적극적인지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타임’에 따르면 남경학살과 관련된 영화에는 3,500만 달러가 투입될 예정이라 하니, 할리우드의 통상적인 영화 제작비를 감안한다면 초대형 작품은 아니나, 그렇다고 그리 작은 규모도 아니다. 일본의 전쟁범죄를 놓고 할리우드에서 이 같은 대작이 제작되는 것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이처럼 미국을 무대로 벌어지는 중국과 일본의 ‘영상전쟁’은 미국 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채택 시도가 촉발시킨 국제적 관심과 맞물려 한국으로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국제적 분위기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달 15일 미국 의회에서 있었던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 현장의 모습, 이에 대한 서방언론의 보도, ‘요코 이야기’ 사건 등을 종합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미국을 비롯해 서방의 정계, 언론계, 학계, 교육계 등은 ‘일본군 위안부’라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참상의 실체에 대해 충격적일 정도로 무지하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지할 뿐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매춘부(prostitute)’라는 편견까지 널리 주입돼 있는 황당한 현실이다. 일본군의 ‘위안소’를 부르는 용어도 ‘comfort station’(위안소의 직역) 또는 ‘military brothel’(군 매춘소)라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피해자들은 매춘부가 아니기 때문에 그 장소도 ‘군 매춘소’가 아니고 위안소인 것은 더더욱 아니며 마땅히 실체를 반영해 ‘rape station’(강간소)나 또는 이에 준하는 어떤 용어로 국제사회에서 불리는 것이 옳다. 이 같은 국제사회의 무지와 편견을 놓고 그들의 무식이나 일본의 로비만 탓할 수는 없다. 그 책임의 결코 작지 않은 부분이 오랜 세월 침묵과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우리의 몫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회사들이 자행한 또 다른 범죄인 징용 문제의 피해자들이 8년 전 미국 법정에서 일본 기업을 상대로 집단소송(class action)을 제기했을 때 적지 않은 한국인들을 인터뷰하면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문제 자체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나 압도적 다수가 “근본적으로 관심은 있으나 나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져도 문제 해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므로 현실적으로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다.
한국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심으로 일본의 사과를 바란다면, 그럼으로써 인류문명사에 그 같은 범죄가 다시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 우선 ‘나 하나’부터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국제사회에 대한 교육과 홍보에 나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북아역사재단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이에 대해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 홍보에 진지한 관심을 갖고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북아역사재단 뿐 아니라 다른 정부기구나 민간단체 또는 국민 개개인도 국제정세가 피해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급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빨리 파악하고 순발력 있게 대응할 수 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