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의 전쟁유적과 동북아 평화』
(동북아역사재단, 2010)
2024년 청일전쟁 130주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바라본 한중일 역사 교과서의 만남
동아시아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 근대화, 제국주의화와 식민지 경험, 전쟁 등 세계사의 주요 사건들을 겪으면서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 가운데 청일전쟁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끝나게 되고 그 대신 신흥 국가 일본을 이 지역의 패자로 등장시킨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전개에 크게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고, 이는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한국의 근대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었다. 또한 당시 아시아에서 각축하고 있던 영국과 러시아 등 제국주의 열강 간의 영토분할 경쟁을 촉발시킨 계기로 세계사적인 의의를 지녔다는 점에서 학계가 주목해 왔다. 따라서 한중일 삼국의 역사 교과서에서 근대와 관련한 공통 서술 내용으로서 ‘청일전쟁’은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져 왔다.
그렇지만 청일전쟁은 각국의 입장에 따라 교과서의 서술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본 교과서의 경우 청일전쟁 직전에 일본군이 조선으로 ‘출병’한 것은 청 정부의 파병에 ‘대항’하기 위한 ‘수동적인 조치’라고 서술하고 있다. 일본이 먼저 개전한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 않으나, 전쟁의 불가피성을 은연중에 강조하며, 일본의 승리와 대륙으로의 진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일본의 동아시아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당화하려는 황국사관이 여전히 교과서 서술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히로시마 대본영 유적지
반면 중국 교과서는 “일본이 중국을 노리고 도발하여 어쩔 수 없이 청이 선전포고를 한 전쟁”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애국주의 교육 정책에 따라 청일전쟁을 중국 내부의 전쟁 상황 전개에 중점을 두어 서술하면서 영웅적으로 투쟁한 중국인과 항일 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중화질서의 붕괴를 상징하는 시모노세키 조약 1조의 내용이 생략되기도 하고, 청일전쟁과 시모노세키 조약이 가지는 동아시아사적 의미는 간과하고 있다.
종래 한국 역사 교과서에서 청일전쟁은 독립된 단원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동학농민운동이나 갑오개혁과 관련되어 서술되었다. 하지만 현행 교육과정에 따른 일부 교과서에 청일전쟁의 도화선이었던 ‘풍도해전’이 새롭게 추가되고, 내용 면에서 청일전쟁의 원인과 경과 등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하는 등 어느 정도 변화하고 있지만, 청일전쟁이 가지는 동아시아사적 의의는 상대적으로 여전히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국내 학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한중일 삼국은 정도 차는 있지만 자국의 입장에서 청일전쟁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에 따라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생략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청일전쟁에 대한 한중일 3국의 용어도 다른데, 중국 학계에서 청일을 중일로, 궁극적으로는 청나라를 중국으로 혼용 혹은 등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재점검되어야 할 것들이 확인된다는 점에서 한중일 3국의 비교사적 연구는 심화되어야 할 것이다.
중국갑오전쟁박물관 입구
청일전쟁 관련 한중일
상호 인식 제고를 위한 제언
전쟁은 전체를 위하여 집단 살인과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국가적으로 용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쟁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 자라나는 세대들에 대한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향하는 역사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중일 3국 공통의 역사인식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와 영토를 둘러싼 동아시아 각국 사이의 갈등 상황이 학술 차원을 넘어서 국가 간 정치 외교 및 국민 정서로 확대된 지 오래지만 개선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국 중심적 역사인식이 더욱 심화되어 가는 실정이다. 특히 동아시아 역사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새롭게 발견하고 상호 교류의 동아시아상을 수립하고자 했던 학계와 정부 및 시민단체의 노력에 반해 한중일 간 활발한 학술 교류 조차 어려운 현실이다. 동아시아 전체를 시·공간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폭넓은 역사적 시각과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이해 능력을 제고한다는 차원에서 신설된 동아시아사 과목마저 최근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수능 과목에서 배제되었다.
이에 동아시아 국가나 지역에서 어떻게 역사를 둘러싼 화해를 실현시킬 것인가 하는 과제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따라서 한중일의 청일전쟁 관련 유적과 시설 현황을 한중일 학계 연구자와 같이 검토하고 교사들과 학생들이 교류할 수 있는 현장 체험 학습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한중일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한중일 삼국의 전쟁 기억과 유산을
동아시아 평화와 역사화해의 초석으로
한중일의 상호 이해 제고와 동아시아 미래의 평화를 모색하는 청일전쟁 관련 유적지를 답사한다면 어떤 코스를 개발할 수 있을까. 필자의 답사 경험과 기존 연구 성과를 참조하여 대상 지역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수년 전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어촌민속박물관은 풍도의 역사탐방 프로그램을 기획해 풍도해전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풍도해전 기획전시’를 개최하였다.
풍도 앞바다
같은 맥락에서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승전한 성환전투의 격전지 또한 한중일 3국의 역사 탐방지로 발굴하여 동아시아의 상호 이해와 평화 구축을 위한 장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경우 산둥 웨이하이(山東 威海市)에 위치한 중국 갑오전쟁박물관에서 청일전쟁 관련 많은 유물과 유적들을 발굴하여 전시하고 있다. 다만 당시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으로 위기에 처했던 역사를 상기시킴으로써 애국교육의 현장감을 강화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이고 있다. 이에 한중일 연구자들과 역사교사와 학생들이 자국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선전하는 것은 국민들의 반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며 진지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일전쟁의 발발의 배경과 과정 및 결과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적 이동을 고려하여 답사 코스를 기획한다면 청일전쟁을 지휘하기 위해 설치한 일본의 히로시마(廣島) 대본영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일본정부는 1894년 6월 2일 조선 주재 공사관의 보고를 통해 조선정부가 이미 중국에 청병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각의에서 공사관과 교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조선 출병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2차로 약 7,000명의 대병력을 동원할 계획을 가지고 6월 5일 대본영을 설치하여 전쟁 준비를 완료하였다. 이 대본영은 현재 히로시마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인 히로시마성 내에 위치한다. 이어서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한 청일강화기념관을 방문하여 청일강화회의 당시의 회담 사진을 확인하는 코스도 있다. 이 회담 사진은 중국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한중일 역사의 상호 이해를 위한 중요한 현장 학습 장소가 될 것이다.
한중일 삼국은 이렇게 전쟁에 대한 기억과 유산을 동아시아 평화와 역사화해의 초석으로 전환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궁극적으로 한중일 학계는 동아시아 미래의 평화를 모색하는 시각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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