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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리포트
일본 근대 개항장, 니가타(新潟)를 가다
  • 김현철 재단 한일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나가타시역사박물관 건너편에 위치한 구 다이시(第四銀行)은행 스미요시초지점 건물


니가타의 자연지리적 입지와 19세기 개항의 역사

 

 일본 니가타현의 중심인 니가타시(新潟市)는 도쿄에서 북북서방향에 위치하며 조에쓰(上越) 신칸센으로 약 2시간이 걸린다. 에도 막부는 1843년 니가타를 서일본의 해운거점지로 지정하고 막부의 영지로 편입했다. 막부는 니가타에 행정기관인 부교쇼(奉行所)를 설치하고 외국 선박들을 경계하기 위한 군사시설로 해안에 방어시설물을 구축했다. 니가타항은 1858년 막부와 미국·영국 등과의 안세이() 5개국 수호통상조약으로, 하코다테(函館요코하마(横濱고베(神戶나가사키(長崎)와 함께 개항되었다. 니가타항은 186011일 개항하기로 결정되었으나, 실제는 1869년에 개항되었다. 서양 각국은 1867년 니가타시 근처 사도섬(佐渡島)의 에비스()항을 보조항으로 지정한후 니가타항에 외국인 거류를 결정했다.

 5개 개항장 중 유일하게 서일본 연안인 시나노강(信濃川) 하구에 위치한 니가타항은 하천의 경사가 심하고 수심이 낮아 대형 선박이 입항할 수 없는 불리한 입지조건이었다. 이후 니가타항은 하천 개수와 제방공사를 통해 대형선박의 정박이 가능한 항만시설을 확장해가면서 개항장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니가타 시내의 개항장 유적과 세관청사 건물

 

 니가타 시내에서 동해(일본해) 연안과 시나노강 사이에 위치한 니가타시마(新潟島) 지역은 북쪽 지방으로 떠나는 선박의 기항지(寄港地)이다. 개항 당시 항구마을의 모습과 역사를 보여주는 거리와 건물들이 시모마치(下町) 지역 등에 남아있다. 개항 당시 대표적인 유적으로 세관 건물을 그대로 보존한 구 니가타 세관청사가 현재 니가타시 역사박물관 미나토피아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구 니가타세관청사는 좌우 대칭, , 아치 등 서양풍 건축 요소를 도입해 니가타항에 1869년 세관업무를 담당하는 건물로 세워졌다. 개항 당시 세관 시설로 사용된 운죠쇼(運上所)에 배로 운반해온 짐들을 하역하기 위한 돌계단이 시나노 강둑에 만들어졌다. 2004년 새로 건립된 역사박물관의 본관 건물은 1911년 준공된 니가타시 청사를 모델로 설계되었다. 역사박물관 부지에 구 니가타세관청사건물과 구 니가타세관석고(石庫),’ 그리고 1929년에 건립된 구 다이시은행(第四銀行) 스미요시초(住吉町)지점 건물과 버드나무 가로수를 주변에 옮겨 복원하면서 개항 당시의 경관이 재현되었다.


니가타시 역사박물관의 전시 내용


 역사박물관의 상설전시실에서는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항구 도시 니가타의 역사와 민속을 소개하고 있다. 개항 전후의 당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니가타 막부 부교쇼 건물 모형, 외국 선박 내항 그림, 개항 당시 니가타시 거리 풍경 사진 및 거주한 외국인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니가타의 초대 봉행 가와무라 나가타카(川村修就)가 맡은 주요 임무는 니가타초(新潟町)에서 밀무역 단속 강화와 해안 경비 거점의 정비였다. 가와무라 봉행은 포술에 정통해 스스로 도면을 만들어 대포를 주조했는데, 당시 오타츠(大筒) 대포 모형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또 니가타 시내 상인 숙소의 광고 전단지에 당시 러시아 선박 지킷호의 내항을 그린 그림과 개항 이후 출판된 영일(英日) 사전, 니가타 세관에서 사용된 문서들도 전시되어 있다.

 


1932년 니가타항에서 배로 만주로 건너가는 일본군 모습

 


니가타에 내항한 외국선반을 그린 광고전단지

 


1938년 동해항로에서 가장 큰 배인 쓰키야마루호의 취향 기념 포스터


니가타항의 확장과 한반도 및 대륙진출 항로의 운영

 

 에도 시대부터 니가타항은 서해안 지역의 물류거점이었으며, 이곳에서 수송하는 이출품의 대부분은 쌀이었다. 개항 이후 일본이 사할린, 연해주, 캄차카반도 해역에서 연어와 송어잡이가 번성하자, 니가타항은 북양어업의 중계항으로 번창하게 되었다. 1907년 러일 어업조약 체결 이후에는 니가타항에서 연해주와 사할린, 캄차카까지 진출하는 어업이 이루어졌으며, 일본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간 항로의 기항지로도 운영되었다.

 1910~1920년대 항만공사를 통해 니가타항에 대형선박의 출입이 가능해지면서 한반도 북부와 중국, 러시아 간 접경 지역으로 항로가 운항되었다. 1931년 도쿄와 니가타를 잇는 조에쓰선(上越線)의 개통 이후 니가타는 도쿄와 만주국 수도 신경(新京)을 연결하는 최단로 거점이 되었다. 니가타항에서 웅기(雄基), 나진(羅津), 청진(淸津) 등 한반도 북부를 오가는 북선(北鮮) 정기 항로가 개설되었으며 1930년대 이후에는 니가타항을 통해 만주로 건너가는 일본 군인과 무기 및 군수품들을 운반하는 배가 오갔다. 특히 아시아태평양전쟁 이후 니가타항은 환동해 항로를 통한 전시 수송의 주요 역할을 담당했는데, 1938년 이후에는 동해 항로가 확충 정비되어 도쿄-니가타-나진-신징(新京)’항로가 개설되었다.


 

나가타항에서 바라본 니가타시역사박물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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