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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포커스 3
고고학으로 증명하는 중화민족공동체
  • 배현준 재단 한중관계사연구소 연구위원


중화민족공동체 선전 포스터

"중화민족공동체 의식을 공고히 하자 각 민족은 석류알처럼 서로 꼭 껴안고 있다.

한 가족처럼 민족 단결하여 한마음으로 중국몽을 이루자"


중화민족 개념의 출현

    

중화민족이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단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中國)’이라는 나라 이름은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의 약칭이기도 하다. 중국의 정식 명칭에서 중화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중화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중화중국(中國)’화하(華夏)’가 결합한 단어다. 고대 문헌에서의 중국은 중원지역을 의미하는데 세상의 중심이라는 지리적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주변 오랑캐와 대비되어 정치, 문화적으로 우월한 존재라는 의미도 있다. ‘화하는 중국의 역사 속에서 오제시대(五帝時代)에 이어 등장하는 중국 최초의 왕조인 ()’를 따르는 다양한 종족을 통칭하는 화하족(華夏族)’을 의미한다. 이 화하족은 한대에 들어서 점차 한족(漢族)’으로 대체된다. 따라서 중화는 세계의 중심에 있는 우월한 한족을 의미하는 말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한족 중심의 중화개념은 청말 중국 중심의 중화질서가 무너지면서 변화가 발생한다. 중화질서는 아편전쟁(1840~1842)을 계기로 흔들리기 시작하였으며, 청일전쟁에 패하면서 완전히 무너졌다. 중국은 이 난국의 시기를 극복하기 위한 자기 정체성과 국가관이 필요했다.

1902년 량치차오(梁啓超)는 서양의 민족 개념을 차용하여 한족뿐만 아니라 다수의 소수민족을 포괄하는 민족집합체로서의 중화민족개념을 제시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이 멸망한 후 1912년 중화민국이 건립되었다. 초대 임시총통이었던 쑨원 역시 중화민족은 한족만이 아니라 5대 족군인 한족, 만주족, 몽골족, 회족, 장족을 포괄하며, 5대 족군이 공동으로 공화국을 건립하였다는 오족공화(五族共和)를 주장하였다. 한편 중일전쟁(1937~1945)이 발발함에 따라 외세에 대항할 수 있는 높은 단합력이 또 다시 요구되었다. 이에 1939년 역사학자 구제강(顧剛)은 중국의 여러 구성 단위는 비록 종족적으로는 서로 구분되지만, 중국이라는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중국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들을 혈연, 문화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단지 이들을 모두 중화민족으로만 부를 수 있다고 하였다.

즉 이때까지 중화민족은 민족단결을 위한 상징적 의미로서 한족+소수민족개념의 민족 집합체를 의미하거나, 민족 구분 없이 중국인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중화민족에서 중화민족공동체로

    

이후 중국 내 모든 민족을 통칭하던 상징적인 의미의 중화민족은 하나의 단일한 독립된 민족정체성을 가진 명칭으로 구체화된다.

1988년 사회인류학자 페이샤오퉁(費孝通)은 중화민족이란 수많은 독립된 민족 단위(多元)가 서로 융합되면서 하나(一體)가 되었다다원일체(多元一體)’ 논리를 제시하였다. 이 중화민족 다원일체론은 다원이 일체에 일방적으로 종속 또는 전환되는 개념이 아니라 다원과 일체가 공존하는 구조를 가진다. 56개의 각 민족은 중화민족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로 존재하며, 이들이 공통된 민족의식을 공유할 때 이 전체를 중화민족으로 부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공통된 민족의식은 구체적으로 신석기시대부터 출현한 여러 문화 단위가 수천 년 동안 민족 혼합과 융합, 때로는 분열과 멸망의 과정을 거쳐 형성된 서로가 공유하는 역사·문화적 동질 의식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화민족은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라 중국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이미 형성되었던 것이다. 다만 근대 이후 서구 열강 및 일본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이 민족 실체를 중화민족으로 비로소 인지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페이샤오퉁의 중화민족 다원일체 개념은 현재까지도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러 민족의 다양성보다는 공통점을 강조하면서, 이들이 오랜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정치, 문화, 경제, 정서적으로 서로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운명공동체를 형성했다고 하는 중화민족공동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고고학으로 증명하는 중화민족공동체

    

중국 소수민족은 사실 혈연, 문화, 언어 등에서 서로 다른 차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화민족이란 개념이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상상의 개념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그러나 중화민족공동체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떠한 여정을 거쳐왔는지 실물자료가 있는 고고학으로 설명 가능하다면, 중화민족공동체는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 현실 속의 존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하상주단대공정을 통해 신화로 여겨지던 청동기시대 하나라의 실재(實在)를 증명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중화문명탐원공정을 통해 이보다 앞 시기의 신석기시대 5명의 제왕, 즉 오제를 증명하고자 하였다. 위와 같은 고고학 프로젝트를 통하여 중화민족의 5,000년 역사가 실재했음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했다고 자평한다. 최근에는 고고중국 프로젝트를 통해 구석기시대부터 명청(明淸)시대까지 연구 범위를 확장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구석기시대는 중국 내에서 호모 에렉투스에서 호모 사피엔스로의 진화가 자체적으로 발생하여 현대 중국인의 조상이 출현하였음을 밝히고자 하며, 신석기시대는 농업의 발생부터 문명이 출현하는 과정에서 다원일체의(각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하였지만 문화적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는) 중화문명이 이미 형성되고 있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다원일체의 중화문명을 일구는 주체는 곧 중화민족이다. 이후 이들이 하상주(夏商周)시기 우수한 청동문명을 가진 왕조국가를 이룩하고, 진한(秦漢)~명청시기를 거쳐 통일다민족국가를 형성하고 발전하였음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하고자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연구 범위를 구석기시대까지 확장하였다는 것이다. 목적은 다양한 현대 중국인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혈통적으로 하나의 조상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는 중화민족공동체가 비록 다원의 과정을 겪었지만 필연적으로 일체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중국은 다원일체중화민족공동체라는 하나의 중국기치를 고고학을 통해 그 유구한 역사성과 실재성을 증명하고자 하며, 이를 통해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고 중화민족 의식을 강화하여 사회 안정을 도모하고자 한다.

 



중국에서 출판된 중화민족공동체 관련 연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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