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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대화
터널의 끝을 향해
  •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

강제동원&평화총서9 『터널의 끝을 향해-아시아태평양전쟁이 남긴 대일역사문제 해법 찾기』,정혜경 저, 도서출판 선인



터널의 끝을 향한 첫 걸음, 사실의 무게 느끼기

2017년에 책을 내면서 당시 한일관계를 터널의 한복판이라 표현했다. 터널의 끝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책 제목도 터널의 끝을 향해로 붙였다. 그러나 당시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더 깊은 터널로 들어가 버린 꼴이다. 터널의 끝을 향해 나가려는 노력은 양국 모두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한일 양국의 민중들이 식민 침탈이라는 사실의 무게를 느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작고하신 재일 사학자 강덕상姜德相 선생은 이미 15년 전에 사실의 무게를 아는 것이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설파하셨다. 그러나 그 일은 양국 국민에게 여전히 미완의 과제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한국 사회가 먼저 사실의 무게를 느끼고, 그 저력으로 가해국 일본 사회의 양심을 깨우는 일이 아닐까 한다. 그것이 필자가 조선 민중이 체험한 징용을 집필하게 된 이유이다.


진상 규명01

진상 규명02진상 규명03

 

책임을 묻는 일, 진상 규명

한일관계가 더 깊은 터널로 들어가 버린 직접적인 계기는 2019년의 소위 징용 소송 판결이었다. 그 배경에는 가해국 일본 사회가 패전 직후 유지하고 있는 봉인망각미화왜곡의 역사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피해국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제대로 된 책임을 묻는 일에 소홀한 점도 있다. 이준익 감독은 2016년 언론 인터뷰에서 영화 동주는 상대국에 대한 분노를 그린 영화가 아니라 양심에 대한 영화라고 했다. “가해자의 양심이 없으면 진실도 드러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가해자에 대한 문책을 70년간이나 하지 못했다. 그저 친일과 반일 항일이라는 식민지 프레임에만 갇혀 있었다. 가해자의 책임을 묻는 것을 게을리했다.”라고도 말했다.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일, 그것이 바로 진상 규명이다. 진상 규명은 피해국이 해야 하는 과제이자 최소한의 의무이다. 더구나 가해국은 그것을 스스로 하지 못한다. 전쟁 가해국의 모범으로 평가받는 독일도 그 길에 스스로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야드바셈이라는 진상규명기관을 통해 지속해서 작업을 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한 진상 규명은 피해자성을 공유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진상 규명, 피해자에 공감, 그리고 재발 방지에 나서는 3단계가 바로 피해자성을 공유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진상 규명에 동참하는 것을 어렵게 느낄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알려진 사실事實에 의문을 제기하고, 다양하고 객관적인 내용을 알고자 하는 노력은 최선의 동참 방법이다. 한반도에 남은 약 8천여 개소의 아시아태평양전쟁유적이 어두운 역사의 현장이 아니라 전쟁 없는 미래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평화의 마중물이라는 생각까지 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러한 점에서 재단의 일제 침탈사 바로 알기시리즈는 시민들이 진상 규명에 동참하도록 돕는 길라잡이다.

 

 


 

 

조선 민중이 경험한 징용은 어떤 것이었을까

한국 사회는 과거 8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징용의 역사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을까? 그보다 사람들이 가질 만한 궁금증에 대해 생각해본다. “일본이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후 국가 권력을 통해 자행한 강제동원을 징용이라 해도 좋을까?”, “모집, 관의 알선, 징용은 어떻게 다를까?”, “제주4·3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에서는 징용과 징병을 구분하지 않았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장총을 구해 온 마을 청년에게 한 사람이 총 쏠 줄 아냐며 비웃자 청년은 그럼 그것도 모릅니까. 징용 갔다 왔는데.’라며 통박을 준다. 청년의 말은 당시 사실에 부합할까?”


궁금증은 또 있다. “조선 땅으로 간 징용은 징용인가 아닌가?” “탄광이나 광산에 간 것만 징용인가?”, “어린아이나 노인은 징용에서 빼주었을까? 아니라면 누가 데려갔을까?”, “일본의 정치인들은 당시 조선인이 일본의 신민이었고, 법을 만들어 시행했으므로 합법적이었다고 하는데 그 말은 맞을까?”

 

일제침탈사 바로알기06 『조선민중이 체험한 '징용'』, 정혜경 지음

 

우리가 알고 있는 징용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아갈 수 있을까. 현재 한국 사회가 느끼고 있는 사실의 무게로는 답할 수 없는 궁금증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실의 무게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자는 현재 한국 사회가 알고 있는 징용과 당시 조선 민중이 경험한 징용과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한국 사회가 징용이라 불렀던 조선인 노무 동원 실태를 동원 지역별, 직종별로 빠짐없이 언급했다. 특히, 한반도를 포함한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의 작업 현장별 실태를 제시함으로써, 그간 조선인 노무 동원을 일본 지역에 국한한 것으로 인식해 온 한국 사회의 역사 지평을 확장했다.


또한 한국 사회나 학계가 간과한 여성·어린이의 피해 사례를 실증적으로 제시했다. 국제노동기구ILO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등 국제기구의 시각에서 일본 정부와 우익이 강변하는 강제동원 부정론의 실상을 논박함으로써 일본의 전시 강제 노동이 국제질서가 규정한 기준과 얼마나 배치되는지를 명확히 하고자 했다. 이는 한국과 일본 학계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아시아태평양전쟁의 피해가 조선만의 아픔이 아니라 아시아와 태평양의 민중이 경험한 아픔이고, 일본의 강제노동 문제가 아시아태평양 민중의 공동 과제임을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연인원 750만여 명이 겪은 징용피해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고 실천하는 데 필요한 소중한 경험이자 자산임을 공유하고자 했다. 이 책을 통해 가해자의 양심을 두드리는 일도 우리의 과제 가운데 하나임을 인식하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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