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중순 신주쿠 고질라 로드의 모습
달라진 일본 몰랐던 일본
지구적 규모의 팬데믹 상황 가운데 1월 초부터 일본 생활이 시작됐다. 해외로 나가기를 다들 단념하고 지내는 시기에 외국에 나와 있으니 나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며 1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일본에서는 현재의 코로나 시국을 ‘코로나禍재앙, 재난’라고 부른다. 오죽하면 와세다 대학에 오도록 도와주신 다니구치 신코谷口眞子 선생님이 나를 만나 건넨 첫 마디가 “1월 초에 올 거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진짜 일본에 올 수 있을지는 반신반의했다.”였다.
2주 동안의 호텔 격리를 마치고 도쿄에 도착한 나는 거주 신고를 해야 한다는 학교 직원의 안내에 따라 숙소가 위치하는 신주쿠구新宿区 구야구쇼区役所(구청)에 가서 이런저런 서류를 제출하고는 ‘마이넘버카드’를 발급받았다. 마이넘버카드는 일종의 주민 증명서여서 도쿄도가 나를 신주쿠구의 거주자이자 백신접종 대상자로 파악한다는 의미이고, 국민건강보험증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구야쿠쇼에서 신고를 한 게 1월 말이었는데 마이넘버카드를 받아 가라는 우편 연락이 3월 말에 왔다. 행정 업무에서 ‘빠름’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너무 오래 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사이 내가 크게 다치기라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좌)일본 편의점의 라면 진열 코너, (우)신오쿠보의 코리아 타운
1990년대 하반기,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일본의 경제적 풍요로움을 빈번히 체감했다. 그리고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 시스템이 잘 정비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2021년에 다시 주민이 되어 생활해 보니 예전같은 격차가 느껴지지 않는다. 일본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때와 비교해서 유난히 달라진 거라면 이제는 동네 어느 마트나 편의점에 가더라도 한국의 신라면과 소주, 막걸리가 진열되어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는 대형 마트에서 비비고 육개장과 고기만두를 사기도 했다.
불안했던 올림픽
도쿄올림픽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개최국 일본이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27개를 비롯해 총 58개의 메달로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미국과 중국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이 취소될 경우 떠안게 될 천문학적 위약금 등을 우려해 개막을 강행했지만, 결국 올림픽으로 떠안아야 할 비용은 역대 올림픽 중 최고 수준이 될 전망이다. 일본이 올림픽 개최를 위해 사용한 비용이 애초 예상의 3배인 3조 4천억 엔(약 35조 원)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이미 투입된 비용도 많은데 ‘무관중’으로 개최하면서 약 900억 엔(9,300억 원)의 수입이 공중으로 날아간 것이다.
일본에서는 연초부터 올림픽 개최가 가장 큰 뉴스거리였다. 작년에 한 번 연기된 데다가 백신 접종이 시작되지 않은 시점이라 올림픽 개최 여부가 미정인 상태였다. 어렵게 개최가 결정되기는 했지만 일본 정부는 코로나 대책에 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했다. 개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올림픽 운영 관계자의 실언, 과거의 추문 등이 터지면서 올림픽을 바라보는 일본 매스컴과 국민의 시선은 싸늘했다. 국민에게는 코로나를 이유로 장기간 ‘자숙自肅’과 영업 단축을 요구하면서 全 세계인을 불러들여 경기를 치르는 건 모순이 아니냐는 비판이 계속 따라다녔다.
무관중으로 열린 개막식은 일본만의 색깔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 느낌이었다. 전통문화의 요소라든가 대중문화에서 일본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많은 콘텐츠들이 거의 활용되지 못한 것 같았다. 올림픽 개막식치고 쓸쓸하기까지 했다. 나름의 내막이 있었겠지만 개막식 연출자가 개막을 코앞에 두고 해임되는 악재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전체 성적 3위를 차지하며 분전했다는 점, 여러 분야에서 젊은 선수들의 메달 획득이 두드러지며 스포츠에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일본은 위안을 찾고 있는 것 같다. 예년이라면 전 세계인의 스포츠 제전을 집중해서 즐겼을 텐데, 올해의 올림픽은 끊임없는 논란과 부정적인 뉴스로 얼룩져 시청자로서 지켜보는 나조차도 피로감을 느꼈다. 그나마 한국 여자 배구의 선전善戰은 손에 땀을 쥐고 보는 재미가 대단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경기에 임한 모든 선수에게 박수를 보낸다.
코로나 확산과 일본 정세
설상가상으로 올림픽 개막 이후 도쿄도를 중심으로 코로나가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올림픽 개막일인 지난 7월 23일 4,225명이던 1일 확진자가 8월 7일에는 1만 5,713명까지 급증했다. 코로나가 진정세로 접어들면서 1일 확진자가 200~1,000명을 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다 갑자기 5,000명을 넘어버린 것이다. 이미 지난주부터 중증 환자들이 제때 입원하지 못하고 자택에서 요양하며 대기하는 상황으로 돌입했다(8월 23일 현재).
일본 매스컴에서는 올림픽 개최가 원인이라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지만, 올림픽 관계자들이 입국하기 훨씬 전부터 확진자는 증가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체감이지만 5월부터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면서 거리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다니는 사람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무더운 여름의 시작, 백신 접종으로 인한 경계심의 이완, 오봉お盆(음력 7월 보름) 명절 기간의 일본 내 대이동, 여름방학 등이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여담이지만 얼마 전 스가菅 총리가 공적인 자리에서 연이어 발언 실수를 했다.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廣島 원폭 투하 76주년 추도식에서 연설문을 낭독했는데 연설문 중 일부를 빠뜨리고 읽은 사실이 알려졌다. ‘우리나라는 핵 병기의 비인도성을 어느 나라보다도 잘 이해하는 유일한 전쟁 피폭국이고, 「핵 병기가 없는 세계」의 실현을 향한 노력을 착실히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가 빠뜨린 부분이었다고 한다.
다른 날에는 “불요불급(필요하지 않고 급하지 않은)한 외출은 자제해 달라.”라고 말해야 하는 것을 “철저하게 해달라.”고 반대로 말하고 말았다. 삐걱대며 진행된 올림픽에, 폭증하는 확진자에… 뉴스는 스가 총리의 피곤한 모습을 함께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일본에는 또 하나의 올림픽 ‘패럴림픽’을 위해 외국 선수들이 입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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