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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코리아협의회와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 정유진, 코리아협의회 활동가

독일 베를린 거리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현장(2020. 9. 28)

독일 베를린 거리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현장(2020. 9. 28)


새로운 한독 시민사회의 탄생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1990년 발족 이후 독일 시민을 대상으로 한국 관련 이슈를 독일 사회에 알리고, 독일·폴란드·한국·일본 등 다양한 국가의 청년들과 함께 과거사 극복을 위한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이끌어 왔다. 2008년에는 산하에 일본군위안부문제대책협의회(AG Trostfrauen)를 설립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위안부문제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유럽 순회 캠페인을 하며 독일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협의회는 위안부문제를 독일 사회에 알리기 위한 캠페인, 국제여성인권단체와 연대한 집회, 다양한 교육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기획하고 진행했다. 1년에 한 번 피해 생존자들을 독일로 초청하여 순회 증언회 및 대중 강연, 기자회견 등을 열고 독일 정치인과의 만남을 주관하기도 했다. 베를린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일본의 사과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평화 시위를 꾸준히 열어 독일 여론을 환기하는 데 앞장섰다.


2019년 가을에는 위안부문제 및 전시 성폭력 상설 전시관 무언다언(無言多言)을 개관하여 상처 그림으로 증언하는 한국과 필리핀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전시회 및 주변 학교와 협력하여 청소년 워크숍을 개최했다. 현재 이 전시관은 재단의 지원을 받아 청소년을 위한 전시 공간으로 개선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

 

 

소녀상을 통한 기억과 공감의 확산

한편, 일본군위안부문제를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싼 독일 내 갈등은 여전하다. 독일의 역사를 기억하거나 기념하는 조형물이 아닌 경우 사실상 건립이 불가능하다. 역사 관련 조형물을 공공장소에 세우는 기준도 까다롭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지난 928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거리에는 정의기억연대가 기부한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독일에서 소녀상이 설치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지만 공공부지에 건립된 것은 처음이다. 주독 일본대사관과는 3남짓 떨어진 곳이다.


수원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프라이부르크의 소녀상 건립은 일본의 문제 제기로 무산되었고, 본에 위치한 개인 소유의 여성박물관도 일본 총영사 및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의 압력에 못 이겨 소녀상 건립을 포기했다. 라벤스브뤼크 나치강제수용소기념관(Ravensbrueck Memorial)에 전시된 10도 채 안 되는 초소형 소녀상마저 일본의 거친 외교적 압박으로 돌연 철거해야 했다. 따라서, 베를린 소녀상의 성공적 건립은 위안부문제가 단순히 한일 양국 간 문제를 넘어 전쟁 피해 여성 및 여성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내세워 위안부운동의 영역을 확장했다는 측면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독일 베를린 거리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현장(2020. 9. 28)

 

인내로 대항하는 힘, 함께 이루는 평화를 위해

협의회는 소녀상 건립과 지킴이 활동을 위해 독일베를린평화의소녀상연맹을 구성 중이다. 연맹에는 전시 성폭력 피해 국제여성단체 및 한독시민단체, 이주민 단체, 독일 개신교계 단체, 한인 교회, 지역 공동체 등 30개 이상의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데, 이를 보면 독일 사회에서 위안부운동이 차지하는 위상을 보다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13개 지역 단체가 가입한 공동체 레유니온(reUNION)의 참여다. 독일에서 특정 조형물을 공공부지에 설치하려면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공동체의 동의가 필수다. 이를 위해 무언다언 전시관 근처 학교의 공동 정원에서 주민과 함께 한국 텃밭을 가꾸고, 각종 문화 행사를 개최하는 등 지역사회와 긴밀히 교류하고 소통하여 레유니온이 연맹에 참여하는 성과를 만들었다. 이렇듯 다양한 회원들로 연맹을 구성한 배경에는 위안부문제를 아시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자각이 있었다. 전쟁을 비롯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의 참상을 알려야 한다는 의지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역사에 잘못이 있으면 청산해야 한다는 인식이 독일 시민사회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협의회는 일본 정부가 소녀상 설치 진행을 방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일본 정부의 사전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허가부터 건립의 모든 과정에서 보안에 주의를 기울였다. 제막식 직전에 행사 정보를 공개했음에도 3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경이로운 일이었다. 라벤스브뤼크 나치강제수용소기념관장을 역임한 종교학자 에쉐바흐(Insa Eschebach)평화의 소녀상은 공격적이지 않고, 주먹이나 깃발을 들거나 불꽃이나 무기를 들지 않고 항의한다. 소녀상은 존재와 인내로 대항한다. 이것이 바로 소녀상의 힘이다.”라고 일갈했다. , 독일 최초로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일본군위안부에 대해 기술한 다니엘 슈마허(Daniel Schuhmacher)독일은 제국주의 범죄와 여성에 가한 성폭력에 소홀한 점이 있는데 그 상징인 소녀상 건립을 통해 관련 주제에 대한 담론이 시작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에 일본은 우리의 입장과 기존 대응과는 상반되는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하고 다양한 관계자에게 우리 입장을 설명하는 등 계속해서 소녀상 철거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위안부이슈는 전시 성폭력에 맞서 여성의 인권과 평화를 드러내는 주제다. 그렇기 때문에 베를린시에서도 소녀상의 설립 취지에 공감한 것이고, 소녀상 자체의 높은 예술성에 매료되었다고도 생각한다. 독일과 일본은 같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지만 피해국과 과거사에 대해 각기 다른 태도를 보여왔다.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 시민들이 소녀상에 담긴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공유하고 확장하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우리는 관련 프로젝트를 꾸려온 오랜 경험과 독일 전역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꾸준히 위안부문제 해결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다시 한번 위안부피해 생존자 이용수 할머니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본다. “소녀상은 피해자들의 한과 슬픔이요, 후세 교육의 심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