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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 장세윤 재단 한일역사문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재단


올해 12월 말 만 60세에 동북아역사재단을 떠나게 되었다. 2006101일 이 재단이 출범하면서 입사했으니, 133개월만이다. 고구려연구재단부터 따지면 157개월이다.


떠나는 마당에 무언가 소회가 없을 수 없겠지만, 굳이 여러 독자들에게 퇴임의 변을 밝혀야 하는지 상당히 고민했다. 그러나 한 직장에서 나이 60세 정년까지 일하고 무사히 퇴직하는 것이 어쩌면 쉬운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서 간단한 소감을 남기기로 했다.


유태인 여성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5~1975)는 저서인간의 조건(이진우 옮김, 한길사, 2017)에서 인간사의 영역은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인간관계의 그물망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이 말에 공감한다.


우리는 독립적인 개인이기도 하지만, 가족·가정과 학교, 회사, 혹은 공공기관, 단체, 사회, 나아가 국가와 세계의 연계 네트워크에 연결된 전체 속의 일원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현재 자기가 속한 기관이나 단체, 어떤 집단에서 만나는 구성원들의 협력이나 지원, 또 관계된 시스템이나 네트워크에 크게 의존하며 생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개인과 조직은 적절한 조화와 공생이 필요하며, 개인은 공동체를 향한 헌신이나 열정, 봉사와 같은 덕목을 갖출 필요가 있다.


이런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볼 때 동북아역사재단이 정부 출연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라는 특성과 장단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연구자 입장에서 볼 때 자신의 소신이나 학문과 양심의 자유가 어떻게 공공의 목적과 연결되는 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한·, ·일간의 역사 현안이나 독도·동해 문제를 조사·연구하고, 이를 관계 기관이나 단체, 국내외 학계, 교육계, 언론 등에 제대로 알려서 궁극적으로 동북아시아의 공동번영과 평화를 구축하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점에서 분명 동북아역사재단의 임무는 막중하다고 생각된다. 떠나는 입장에서 이제 이 재단이 본연의 임무와 사명을 다하고, 내부 구성원들이 역량을 극대화하여 관련 기관·단체, 외부 세계와 조화로운 선순환(善循環) 구조를 이루어서 더욱 발전하고 잘되기를 바랄 뿐이다.


지난 시기 재단에서의 생활을 정리해보면 기본적으로 업무나 연구 관련 자료의 검토와 정리, 자기 나름의 관점으로 해석하거나 주관을 반영한 보고와 결재, 결재권자(이사장)와 이사회·자문위원회 등의 의견을 반영하여 결정된 사업이나 정책, 연구 내용의 실행과 확산(또는 전파), 그리고 평가와 환류(Feed Back)라는 일련의 체계로 집약되는 것 같다. 이러한 작업이나 업무내용, 특히 재단 연구직의 임무와 역할은 조선시대의 사대부(士大夫)’와 유사한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사(=선비, 또는 文士)+대부(大夫=행정가, 또는 관료)의 복합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반 대학교수 등 연구집단과 차이가 있다. 정책 결정과 수행을 위한 예산과 인력이 있고, 관련 시스템이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재단이 갖는 장점이 아닌가 한다. 이런 장점을 잘 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만 정년이 대학교수보다 5년이나 빠른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장세윤

  


일찍이 조선후기의 실학자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양반전에서 책읽는 사람이 바로 선비이다(讀書曰士)”라고 했다. 그런데 그는 글쓰기에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주창했다. 법고창신은 박지원 등 북학파의 북학사상으로 나아갔다. 옛 것을 본받아 구태와 진부함을 떨쳐내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이 개념은 생각처럼 실천하기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과거의 선비를 계승했다고 보는 지식인의 언행(말하기와 글쓰기 등)은 사회개혁과 공공성을 드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법고창신을 늘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사이불망(死而不亡[])’(: 오래도록 사는 것)’라고 한다는 중국 고전의 문구가 있다. 즉 죽어도 잊혀지지 않는 것을 정말 라고 했다. 영어권에서도 비슷한 말이 있었다. “Gone but not Forgotten, Hopefully.” 갔지만(혹은 사라졌지만) 잊혀지지 않은 사람! 바라건대!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시사하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서울 시내 중심가에 비좁지만, 그래도 열정을 태우며 일하고 연구할 수 있었던 공간을 제공하고, 삶의 가치와 공공선(公共善)을 실현하게 해준 동북아역사재단, 그리고 그 식구들! 정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3년 여의 세월은 무척 값진 것이었다.


얼마 전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최근 모 사립대학에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 연기자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한 후, 지금까지 가장 인상에 남는 대표작이 무엇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유명 배우는 예상을 깨고 과거에 자기가 출연했던 작품을 거론하지 않고, ‘다음 작품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나 역시 아직도 해야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욕심은 금물이라고 명심하기로 한다. 일찍이 중국의 장자(莊子)무용지용(無用之用)’을 설파한 적이 있다. 그렇다! 모든 사람이, 모든 사회가 자신의 쓸모있음을 강조하고 증명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때로는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의 역설을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천상병 시인은 유명한 시에서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고 읊었다. 나도 이제 인생의 한 단원을 끝내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는 마당에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일했던 시간을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무사히 퇴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성원해주신 재단 임직원 여러분들과 국내외 학자, 관계 기관 및 단체 여러분들, 지인, 친지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