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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레이와令和’, ‘아름다운 조화’의 시대가 열릴까?
  • 이명찬[재단 일본 파견 연구위원(게이오대 방문연구원)]

새로운 시대의 시작, ‘레이와令和’에 들썩이는 일본

4월 30일 일왕 아키히토(明仁)의 퇴위와 5월 1일의 왕세자 나루히토(德仁)의 즉위는 일본인들에게 역사적 사건이다. 무엇보다 일왕의 생전 퇴위는 메이지 이후 200년 만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다.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를 한 달 앞둔 4월 1일, 새로운 원호(元号) 발표가 예정되어 있었다. 발표를 앞두고 일본 전역은 들썩였고 그중 방송은 가장 뜨거운 매체였다. 4월 1일, 오전 11시 10분. TV 속에 등장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새로운 원호는 ‘레이와(令和)’입니다.”라 말하며 ‘레이와’가 적힌 액자를 2분 가까이 카메라를 향해 내밀었다. 그날 NHK 관동지구의 11시대 시청률은 19.3%. 이는 지난 4주간의 평균 시청률과 비교했을 때 10배 이상 높은 수치였다. 원호 발표 후에도 일본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신문사가 발행한 호외 쟁탈전이 벌어졌으며, 원호의 전거(典拠)인 만엽집(万葉集)은 완판 되기도 했다.



일본의 독자(獨自) 문화, 원호를 보는 시선

그러나 한 편에서는 ‘너무 과하게 반응하는 게 아닌가!’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미디어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었지만 일각에서는 조용한 ‘반원호(反元号)’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이제 슬슬 서력(西曆)을 써야 하지 않을까?”하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어쩌면 이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평소 원호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많을뿐더러 생일을 원호로 물으면 바로 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일본에서 원호는 일상생활 속, 역(曆)의 일부가 되고 있지만, 원호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의 비율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1975년에는 일본인의 82%가 원호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그 수가 34%까지 감소했다.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새 연호가 발표될 때마다 축제에 가까운 소동을 부리는 일본인들. 그렇다면 세계인들은 이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세계 각국에는 상식으로는 이해 불가능한 특이한 전통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좋다는 의견이 대세다. 세계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현대에 남을 일본의 독자 문화를 소중히 하는 것, 그게 더욱 가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새 시대를 여는 원호 ‘레이와’가 불러온 소동

레이와는 헤이세이 이전의 원호와는 뚜렷이 구별된다. 처음으로 중국 고전이 아닌 일본 고전에서 인용한 원호이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회견을 통해 “만엽집(万葉集)은 일본의 풍부한 국민문화와 긴 전통을 상징하는 국서(國書)”라 말했는데, 이는 보수층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를 두고 중국 미디어에서는 약간의 소동이 벌어졌다. 아베 정권이 ‘탈중국화’를 지향하는 원호를 내어 놓았지만 이 또한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주장이 일고 있는 것이다. 레이와의 출전인 만엽집(万葉集)은 중국 후한 시대의 정치가이며 학자였던 장형(張衡)의 시에 영향을 받았다고 복수의 연구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개원(改元)을 내셔널리즘의 문맥에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새로운 원호가 국서인 만엽집(万葉集)에서 인용된 것을 환영했던 아베 총리는 “일본의 국체를 확실히 다음 시대로 이어가야 한다.”, “일본 국민의 정신적인 일체감을 받쳐주는 것” 등의 말을 쏟아냈다. 사람들은 이런 아베 총리의 말을 내셔널리즘의 표방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과거를 되짚어 보면, 원호는 내셔널리즘의 표어라기보다 개인적이며 역사적인 표식으로서의 의미가 훨씬 더 크다. 외무성의 공식 영역에 의하면 ‘레이와’는 ‘Beautiful Harmony: 아름다운 조화’다. 이에 대해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물론 ‘레이令’라는 한자를 ‘명령한다.’라고 읽거나, 국가에 의한 국민 관리의 의도를 시사한다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출전이 와가(和歌)의 서(序)에서 매화의 개화를 노래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면 후자의 해석은 다소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미국과 영국 기자들은 만엽집(万葉集)에서 원호를 인용한 것을 두고 ‘일본 내셔널리즘의 대두를 시사하고 있는 것’ 또는 ‘반중 감정의 표시인가’ 등 관심을 나타내었다. 대부분의 영미인들은 이제 일본을 태평양전쟁과 연결시켜 보지 않는다. 헤이세이(平成)나 레이와가 국가와 관련되어 있는 개념이지만 레이와 원년을 맞이한다는 사실만으로 많은 일본인이 국민으로서의 프라이드를 품게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현장보고



시대의 명칭으로서 원호가 갖는 의미

원호는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역(曆)의 단위로서 독자적인 의미가 있다. 일본의 「일세일원(一世一元)」은 메이지 원호를 정했을 때부터 정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원호에 어떤 경외의 이념을 내포한다거나, 레이와를 그 일왕의 호칭이라 여기기보다는 그저 시대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일본인이 많다. 메이지와 쇼와 시대를 비교한다면 사회가 많이 달라졌고 이는 현재의 일왕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변화시켰다. 일본 일왕은 신성화된 공직이나 국가의 군주로부터 유럽의 왕실과 어느 정도 닮은 형태로 변해 왔다. 유럽처럼 일본에도 왕실의 열렬한 신봉자가 있지만, 강경한 반대파도 존재한다. 하지만 국민 대부분은 지금의 형태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왕족의 뉴스나 개원(改元)은 사람들의 호기심의 대상이며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시대의 명칭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걸까? 적어도 그것을 시작할 때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레이와’ 두 글자의 유래와 의미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엇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레이와의 시대가 ‘아름다운 조화’의 시대가 될 것인지 현시점에서는 가늠할 수 없고 그 시대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왕세자인 나루히토(德仁)는 일왕으로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일본 사회는 전례 없는 진화를 경험하고 있고, 왕실에 대한 언론의 지지와 경외는 옅어지는 추세다. 왕실 제도는 국민으로부터 강력히 지지받고 있지만, 생전 퇴위를 둘러싼 소동이나 여성 일왕 문제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그 역할은 매우 유동적이다. 인구의 감소, 섬나라이기에 갖는 지리적 제약 그리고 다른 국가들의 경제적 발전으로 인해 일본의 경제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저하될 거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발휘해 나가기 위해서는 ‘레이와’가 지닌 의미를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대의 명칭을 넘어 한 시대를 반영하는 원호로 기억되길 희망한다.



편집자주 일본 국왕에 대해 우리 정부는 국제외교 관례에 따라 일반적으로 ‘천황’으로 호칭하고 있으며, 언론 등에서는 국민 정서를 감안하여 ‘일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재단 뉴스레터도 일반 대중이 독자라는 점을 감안하여 ‘일왕’으로 표기하고 필자의 양해를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