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컬 만주」가 출판되어 국제기구의 관여라는 측면에서 두 번의 세계대전 사이 만주의 국제성과 지역성을
환기시켰다. 이 책은 만주의 위상과 관련하여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그 내용은 구체적으로 ‘태평양 문제 연구회IPR’의 내력, IPR의 만주 관련 회의, 국제연맹 리튼 조사단의 만주사변 보고서, 2000년대 만주의 지경학적 동향 서술 등 크게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의 가장 생산적인 부분은 역시 IPR의 만주 관련 회의와 국제연맹 리튼 조사단의 만주사변
보고서에 대한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20세기 전반의 만주, 그리고 국제연맹, IPR의 내력과 실체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만주는 1930년 전후 IPR과 리튼 조사단의 활동을 통해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역사적으로 “만주는 전략적 요새, 경제적 보고, 교통의 요충지라는 특징이 있다”고p.279 할지라도 만주의 지역적·세계적 위상은 변할 수밖에 없었고, 본질적으로 중요한 지역 따위는 없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만주가 세계적 관심 지역으로 부각된 것도 하나의 역사적 현상일 수밖에 없다.
저자는 만주 본토의 자체적인 노력을 중시하여 “만주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만주가 세계의 관심 지역으로 부상한 것은 1929년 7월 동북 변방군 사령관 장쉐량張學良이 중동 철도에 대한 소련의 관리권을 무력으로 회수하기 위해 중동 철도 사건을 일으키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p.24라고 본다. 그러면서도 20세기 초에 아시아와 태평양을 향한 세계의 관심이 확산되었다고 했다.p.20 실제로 저자도 일부 러일전쟁 이후1 만주 문제의 부상을 시사하고 있다.
다만 이 책에는 러일전쟁에서 1929년 중동 철로 사건까지의 만주 문제에 대한 분석과 여러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아쉽게도 저자는 이 대목을 분석할 여유를 갖지는 못했고 1929년 7월 중동 철로 사건 이후를 대상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서 러일전쟁 개전 직전인 1904년 1월 21일 국외 전시 중립을 선언함으로써 자주 중립의 의지를 표명한 대한제국 정부의 노력 등을 충분히 부각하지 못했다. 또한 만주에 대한 미국의 관심도 보다 장기적인 견지에서 분석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2 일본이나 소련의 중국 진출 통로인 만주를 중심으로 관련 강대국들이 맞붙은 것이 만주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강대국들이 국제 질서를 주도하기는 했지만 서로 견제하는 상황에서 국제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국제적 모색의 결과가 국제연맹이나3 IPR4 등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국제 협력 부문에서 가장 규모 있는 국제 조직을 꼽으라고 한다면 1920년에 결성된 국제연맹으로, 이는 국제적인 조직을 통해 전체 세계와 협력하면서 평화를 이루고자 한 것이다.”, “또한 국제적으로 아시아·태평양과 관련된 중요한 이슈의 해결점을 찾아보고자 미국 YMCA 주도로 1925년 호놀룰루에서 결성된 비정부기구가 IPR이다.”p.241
“IPR은 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이슈가 된 문제를 선정해 연구한 후 각국의 지식인이 모여 태평양 지역의 이해를 심화해나가는 국제회의 기구였다.”p.57 “IPR의 학술 활동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연구이다.”p.80 “IPR은 30여 년간 활동하면서 회의를 총 13차례 개최했는데, 그중 1929년 제3차 교토 회의와 1931년 제4차 상하이 회의에서 만주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p.94
한편 국제연맹은 1931년 9월 21일 중국이 만주사변의 불법성에 대해 정식으로 제소하자 제소 당일 이사회를 개최하여 같은 해 12월 10일 조사단을 발족하였다. 그리고 “만주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1933년 2월 24일 국제연맹 총회가 개최되었다. 여기에서 19개국 위원회 보고와 권고안이 42대 1로 가결되자 일본은 회의장에서 퇴장했고, 3월 27일 자로 국제연맹을 탈퇴해버렸다. 이때 가결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리튼 조사단의 만주관이라고 할 수 있다.”p.249 이 책에서 다각적으로 설명하듯이 당시 국제연맹의 활동은 당시 국제 관계의 특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회의 정황에 대해서는 매우 자세하게 재현했지만, 논의된 내용, 특히 관련 자료들에 대한 분석은 다소 소략하게 설명하였다. 일본 IPR과 중국 IPR에 대한 분석도 심도 있게 진행하고, IPR 이후의 후속 연구와 각국 IPR의 활동에 대한 연구를 보충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들을 보완하여 분석할 수 있다면 미국 등에서 IPR이 ‘지역학’의 대두에 기여했던 역할을 보다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이 연구가 IPR만이 아니라 ‘만주’라는 초점 때문에 분석 범위 설정에 다소 난점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이 책은 만주와 IPR·국제연맹의 하이브리드가 산출할 수 있는 지적 흥미를 잘 입증하고 있지만, 기왕의 성취보다도 향후 후속 연구와 파생 연구의 성과가 더욱 기대되는 책이다. 만주 지역 연구의 중요성은 현재와 미래의 문제다. 그와 관련하여 IPR은 우리에게 지역 조사·연구기관의 설계와 운영 측면에서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하겠다.
<각주>
1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개최한 “1899년 제1회 헤이그 평화회의”에 이어 “1907년 제2회 회의는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주최하고, 44개국이 참가해 13개 조약과 1개 선언을 채택했다.”p.198 “그전까지 국제사회는 유럽 중심이었지만, 이 회의는 지리적으로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까지 참가한 획기적인 것이었다.”p.199
2 저자가 지적했듯이, “미국이 만주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자국의 정치적⋅경제적 이유뿐 아니라 1922년에 중국의 영토와 행정 주권을 인정한 ‘워싱턴조약’ 체결과 1928년 ‘켈로그 브리앙 조약’ 체결에 관여했기 때문이다.”p.23
3 1920년 1월 10일 26개조 규약이 실행되어 국제연맹본부 제네바이 창설되었다. “국제연맹은 20세기에 가장 규모 있는 국제조직이 되었다.”p.201 “국제연맹은 국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이 참여하지 않았고, 1930년대 이후 계속된 국제적인 분쟁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제2차 세계대전을 억제하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1946년 4월 21일 해체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p.202
4 “《뉴 리퍼블릭The New Republic》의 기자 크롤리가 “정치적으로 들에 핀 백합”이라고 묘사한 IPR 회의는 ‘사실 발견 위원회’라고도 불렸다.”p.64 저자는 하버드 대학 존 페어뱅크 교수의 말에 따라 “아시아 태평양학동아시아학을 탄생시킨 시조”는 IPR라고 하기도 했다.p.36 실제 “다른 어떤 기관도 IPR 같이 학문적 영역에 크게 공헌한 조직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p.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