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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제적 경쟁력 갖춘 역사 연구가 양성이 시급해
  • 심재훈(단국대 사학과 교수, 재단 자문위원)

심재훈 단국대 사학과 교수, 재단 자문위원

 

세계화 시대에 맞는 역사 인식의 정립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요즘,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를 발간하며 우리 역사 인식의 문제점과 정직한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한 심재훈 재단 신임 자문위원에게 중국 고대사와 한국 고대사 연구 현황을 바탕으로 역사학 발전 방향에 관한 조언을 듣는다. _ 편집자 주

     

대담 : 김인희 한중관계연구소 연구위원

     

     

심재훈 단국대 사학과 교수, 재단 자문위원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 동아시아언어문명학과에서 중국 서주사(西周史)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부터 단국대에서 동아시아 역사를 가르치며 문과대 학장과 도서관장을 겸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2016)와 역서 공자시대 중국사회(2011), 중국 고대국가의 형성(2006) 등이 있다.

     


     

Q1. 올해 재단 자문위원이 되셨는데, 간단한 소감과 <동북아역사재단 뉴스> 독자들에게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심재훈 사실 자문위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덜컥 맡아 조금 걱정인데 이렇게 인터뷰까지 하게 되어 무척 영광입니다. 뉴스레터 독자들을 지면에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 같이 역사를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은 사실 역사에 관심을 가져주는 분이라면 누구라도 고맙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에 더 많은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Q2. 지난 해 발간하신 책에서 스스로를 비주류 역사가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생각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심재훈 사실 작년 8월에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를 출간한 뒤 적지 않은 분들이 그 부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미국에 유학을 하고 수도권 대학의 교수까지 된 사람이 어떻게 비주류일 수 있냐고.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당연히 타당한 지적입니다. 그런데 제가 책에서 굳이 그 얘길 꺼낸 이유는 저 정도 괜찮은 스펙을 갖춘 사람까지도 한국의 역사학계 내에서 스스로 비주류라고 여길 만큼 학계가 경직되어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졸업한 학부 위주의 학벌 카스트 문제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닌데 제가 너무 민감한지 모르겠지만 학계는 일반 사회보다 편 가르기가 심했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은 확실히 이전보다 많이 나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이런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게 그 증거인지도 모르겠네요. 적어도 학계에서만큼은 실력과 업적 이외의 다른 평가 기준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Q3. 1988중국 고대국가의 형성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으셨는데, 그 당시 얼리터우(二里頭)와 옌스상성(偃師商城), 정저우상성(鄭州商城)에 관한 자료를 국내에서 보셨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이러한 자료들을 구하기 어려우셨을 텐데요?

     

심재훈 당시에도 중국사 관련 외국서적들은 영인본 형태로 제법 나와 있었지만 제가 다룬 주제가 좀 특수하다 보니 자료를 모으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석사과정을 지도해주신 윤내현 교수님께서 홍콩 싼롄서점(三聯書店)을 통해 1980년대 나온 중국의 대학 학보들까지 거의 정기구독을 하셨어요. 그래서 정말 큰 도움을 받았는데 그래도 구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죠. 마침 친하게 지내던 후배 한 명이 그때 뉴욕에 살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컬럼비아대 도서관에서 며칠 동안 제가 못 구했던 자료들을 다 복사해서 보내주었어요. 운이 좋았죠. 그 대학 도서관에 중국어, 일본어 자료들까지 거의 다 있는 걸 보고 내심 놀랐습니다.

     

Q4. 미국 연구자들은 중국 고대사를 어떻게 공부하는지 궁금합니다. 교수님께서 미국 대학에 머무는 동안 경험했던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심재훈 미국 대학에서 중국 고대사를 깊이 있게 연구하는 대학은 열 곳 남짓일 것 같은데 대학마다 특징이 있기에 일반화해서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공부했던 시카고대의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리면 일단 서양에서는 중국을 비롯한 지역학 연구를 해당 지역의 언어부터 시작합니다. 시카고대 동아시아언어문명학과에는 다양한 레벨의 중국어와 한문 코스들이 개설되어 있는데 사실 저도 초급 중국어부터 거기서 공부했습니다. 이렇게 어학의 기초를 닦은 학생들이 전공 교육을 받는데 제 경우 전공의 특성과 지도교수의 영향으로 주로 자료 자체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구체적인 예로 갑골문, 금문 같은 출토 문헌을 공부하는 세미나를 수강하며 기초적인 읽기에서 최종적으로는 그 자료를 활용한 역사 논문 쓰기까지의 과정을 거칩니다. 출토 문헌 이외에 시경, 서경, 주역의 삼경도 같은 방식으로 최대한 정확히 읽을 수 있게 훈련시키고, 그 문헌들의 내용 중 쟁점이 되는 부분에 대해 소논문을 쓰게 하고, 그걸 종합해서 연구논문으로 발전시키는 방식이 좋았던 것 같아요. 사실 미국에 가면서 멋진 이론들을 공부하길 기대했는데 실증에 치중하는 꼼꼼한 연구방식을 주로 배우게 되었지요. 물론 미술사를 전공하는 우홍(巫鴻) 교수 수업을 비롯해 다양한 중국학 수업들도 수강했습니다.

     

국제적 경쟁력 갖춘 역사 연구가 양성이 시급해 


Q5. 중국인이 연구하는 중국 고대사와 미국인이 연구하는 중국 고대사는 목적, 방법, 내용에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심재훈 일단 연구하는 대상에 대한 기본 인식에서 큰 차이가 있겠죠. 중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사나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합니다. 실제로 어마어마한 고고학 성과를 보면 충분히 이해되는 측면도 있고요. 서양 사람들도 그게 대단한 건 인정하지만 거기에 자긍심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죠. 그러니 사실상 그들의 중국 고대사 연구는 순수한 학술적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고대 중국을 더 미화하고 싶을 수 있는 중국 연구자들과는 출발점이 다른 것이지요.

전래된 문헌들에 대한 인식도 중국학자들이 대체로 그것들을 신뢰하는 신고(信古) 경향이라면, 미국 학자들은 구제강(顧頡剛)이 주창했던 의고(疑古) 경향을 띱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서양 학자들도 고대 중국 연구가 전 세계 인문학 분과 중 가장 역동적인 분과라는 건 인정한다는 점인데 다양하고 새로운 출토 자료들이 기존의 역사를 새롭게 볼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Q6. 미국학계의 중국 고고학 연구에 대한 입장은 어떤지요? 예를 들면 중국의 일부 학자들은 고문헌 기록들을 바탕으로 신화전설상의 인물을 고고유적에 대입하여 고대사를 확장하려 하는데요.

     

심재훈 신화학의 영역에서라면 다룰 수도 있겠지만, 역사학 분야에서 그런 접근을 하는 연구자는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제가 석사논문 주제로 다루었던 얼리터우 유적은 지금 중국 학계에서 하()나라 후기 도읍으로 거의 공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권에서 나온 연구들은 아직도 얼리터우 문화 혹은 얼리터우 국가 등의 용어를 사용하지 이를 하()나라의 유적으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입증할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이야기지요. 일례로 제가 번역한 중국 고대국가의 형성(2006)은 중국학자천싱찬(陳星燦), 리우 리(劉莉)들이 영어로 쓴 책입니다. 물론 리우 리 교수는 현재 스탠포드대에서 가르치니 중국학자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어쨌든 그 책에서 다루는 주요 주제 중 하나가 얼리터우 유적과 관련이 있는데 얼리터우와 하()나라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그 책과 거의 동일한 내용을 중문 논문으로도 발표했는데 거기서는 얼리터우=하나라의 등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Q7. 교수님의 전공 분야는 아니지만, 현재 미국에서 한국 고대사에 대한 연구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심재훈 일단 구미에서 한국 전근대사 연구자 수가 손꼽을 정도이니 고대사 연구자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삼국시대까지를 고대사로 본다면 서너 분이 고대사 전공자라 할 수 있겠네요. 캘리포니아대 산타바바라(UC Santa Barbara) 배형일(Hyung-Il Pai) 교수가 낙랑군 연구로 박사논문을 썼지만 그 이후에는 근현대쪽 연구를 주로 하고 계시고, 최근 부여사 관련 책을 펴낸 마크 바잉턴(Mark Byington) 박사, 백제사 전공자인 조나단 베스트(Jonathan Best) 교수, 신라사 전공자인 리차드 맥브라이드(Richard McBride II) 교수 정도가 떠오르네요. 미국에서 한국 고대사 연구는 불모지나 다름없는데 가장 큰 이유는 언어 문제일 겁니다. 한국어 외에 최소한 중국어와 일본어도 공부해야 하는데 서양 사람들 입장에서 그게 쉽지 않거든요. 또한 워낙 관심을 끌지 못하는 분야다 보니 한국 고대사 교수 자리가 있는 대학이 한군데도 없습니다. 대학원생이 이 분야에 뛰어들려 해도 주저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지요. 미국에서의 일본학 부흥이 일본 정부의 지원에 힘입은 바 크듯이, 우리도 정책적으로 장학금과 연구비를 줘서 미국에서 한국 고대사 전문가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Q8. 교수님께서는 춘추시기 오패 중 하나인 진나라 고고학을 연구하셨습니다. 사실 진나라는 춘추시기 패()로 지칭된 시기가 가장 긴 나라로 100년 이상 이어졌는데 일반 독자들에게는 생소하게 여겨집니다. 진나라가 어떠한 나라인지 소개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심재훈()이라는 나라는 춘추시대에 가장 강했던 나라입니다. 전국칠웅 중 한, , 조 세 나라가 진에서 갈라져 나왔으니까요. 그런데 제 박사논문과 이후의 연구들도 진이 강력했던 시대보다 그 이전의 발전 과정을 주로 다룬 것입니다. 서주시대 진나라 제후들의 묘지를 비롯해 진과 관련된 상당히 풍부한 새로운 고고학 발굴이 그 계기가 되었지요. 연구 범위는 진이 서주 초기(기원전 11세기)에 분봉된 산시성(山西省) 서남부의 정치적 상황에서 진 문공(文公)이 기원전 632년 패자로 등극하기까지의 과정을 포괄합니다. 진후묘지(晉侯墓地)가 발굴되기 전까지 진에 대한 인식은 북방의 이민족인 융적(戎狄)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한 나라로 보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명문 자료까지 포함하는 서주시대 진의 고고학 성과를 활용하여, 진이 주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측근 세력이었다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융적과의 친밀한 관계는 춘추시대 들어서야 시작된 것이고요. 최근 지금까지의 진에 대한 연구를 종합하는 저서를 거의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Q9. 지난해 발간한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에서 한국 고대사 연구와 한민족 중심주의가 초래한 우물 안 개구리역사관에 안타까움을 나타내셨는데 어떤 부분에서 이런 견해를 갖고 계시는지요?

     

심재훈 많이 엷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공고히 유지되는 한민족 중심주의가 역사하면 한국사와 등치시켜버리는 경향에 대한 안타까움을 피력한 것입니다. 사실 작금의 세상은 세계화, 국제화라는 말이 이미 식상할 정도로 최소한 경제적으로는 전 세계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이 공부한 역사는 주구장창 한국사 밖에 없으니 두렵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고등학교 때 세계사를 제대로 공부한 학생들이 사학과 입학생들 중에서도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동양사야 그렇다 치더라도 현재의 세계를 만든 서양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결여된 학생들이 어떻게 국제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중국사의 경우도 사실 마찬가지이지요. 현재 중국과의 거래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고, 앞으로 중국 의존도는 더 커질 텐데 그 나라의 역사를 어느 정도라도 공부하지 않고 잘 버티어 낼 수 있을까요? 다양성을 추구해도 모자라는 판에 현재 역사 국정교과서 논란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더욱 안타깝습니다.

     

Q10. 역사학 공부를 지망하는 학생들, 혹은 중국사 연구를 계획하고 있는 이들에게 선배 연구자로서 해주고 싶은 당부의 말이 있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심재훈 사학과에서 다양한 학생들을 가르치다 깨닫게 된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역사 같은 사회 과목만 잘해서 사학과에 들어온 학생들이 학업 성취가 더딜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국어나 외국어 실력이 좋은 학생들이 우수한 면모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고요. 결국 역사학을 비롯한 인문학의 성패는 얼마나 잘 읽고 잘 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에다 중국사 같은 외국사의 경우는 한문이나 중국어, 일본어, 영어 등 외국어에 능통해야겠지요. 그러니 학부 때는 세련된 이론이나 재밌는 연구에 치중하기보다 힘들고 표시도 안 나지만 어학 등 기본기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