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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영화 <암살>과 여성독립운동가 - 영화 <암살>을 보다 -
  •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장

영화 <암살>과 여성독립운동가

 

3.1절이나 광복절이면 늘 주목하게 되는 독립운동가. 우리는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겼던 시대에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시대의 무게감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했는가를 전해들을 때면 조금이나마 그 여운을 느끼게 된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거침없이 희생했고 목숨을 던졌다.

지난해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애국의 무게를 문화를 통해 소통하고 공감했다. 특히 온 국민의 심장을 강타했던 영화 <암살>은 그동안 역사에 가려져 있었던 여성독립운동가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여성은 독립운동가를 보좌하는 역할자로만 인식되어 왔지만, 영화 속에서 묘사되고 있는 여성독립운동가는 어깨에 을 메고 적진을 누비는 여전사의 모습으로 신선한 충격을 남겼다.

     

영화 속 안윤옥과 실제 인물 남자현

영화 암살은 우리의 암울했던 역사의 현장 속에 내재되어 있던 시대의 간절함을 통쾌하게 그려냈다. 주인공을 통한 개연성 파괴는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을 뿐 아니라 대중의 공감을 자아냈다. 주인공 안옥윤과 쌍둥이 자매는 침략자 일본에 기대어 누리려했던 자와 끊임없이 저항했던 우리 민족의 이중적 모습을 상징적으로 대비시키기도 했다. 총독 암살을 위해 적진에 뛰어든 여전사 안옥윤은 역사의 뒤안에 있던 인물이 아닌, 당당히 독립운동의 대열에 선 인물로 그려졌다.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여성독립운동가의 모습은 신선했지만, 20168월을 기준으로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은 여성독립운동가가 284명이고 여성광복군이 29명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는 전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영화 속 안옥윤의 실제 모델은 여성독립운동가 남자현(1872-1933)’으로, 그녀의 총독 암살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단지 혈서로 표현한 독립의 염원과 의지

남자현은 의병에 참여했던 남편의 전사를 계기로 의병 활동에 직접 뛰어들었고 3.1운동, 만주지역의 무장 투쟁활동 등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여성독립운동가였다. 일제의 탄압으로 독립단체 간 의견이 충돌되는 현장에서 대립이 아닌 통합이 살 길입니다라고 외치며 혈서를 썼던 독립계의 대모’, ‘세 손가락 여장군’, ‘여자 안중근별명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9264, 남자현은 권총 한 자루와 탄환 여덟 발을 들고 일본 총독 사이토를 처단하기 위해 적진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1926426일 순종 황제의 장례현장에 먼저 나타난 청년 송학선이 일본 고관살해를 시도하면서 그녀의 1차 총독 암살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이어 만주국 수립 1주년을 맞이하여 각종 행사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93331일 일본 전권대사 부토 노부요시를 처단하기 위해 그녀는 다시 암살을 시도했다. 성공적인 계획 실행을 위해 무기 확보, 조달, 장소 확인과 동선을 점검하며 남자현은 더욱 세밀하게 암살 준비를 했다. 권총 한 자루와 탄환, 폭탄 두 개를 준비했던 모습은 실제 안옥윤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거사를 앞두고 대양 3원을 빌려 도외구도가에 있는 무송도사진관에서 동지들과 최후의 기념사진을 찍었던 장면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거사를 5일 앞둔 227일 오후 4시 경, 노파 분장을 했던 그녀는 조선인 밀정에 의해 체포되고 말았다. 그렇게 그녀의 두 차례 총독 암살계획은 실패로 끝났지만, 영화는 통쾌하게 성공적으로 묘사되어 감동을 넘어선 기쁨을 대중에게 선사했다.

     

죽음마저 독립운동으로 무장했던 남자현

남자현은 체포된 뒤 하얼빈 감옥에 투옥되어 여섯 달 동안 갖은 고문을 당했다. 일본 전권대사 암살 미수사건의 주모자로 그녀에게 가해진 고문은 신념에 가득 찬 여성독립운동가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스스로 음식을 끊고 죽음을 준비했다. 1933817. 거의 죽음을 앞둔 시점에 병보석으로 가족에게 인계된 그녀는, 하얼빈 지단가의 조선인이 운영하는 여관에서 아들과 손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감추어둔 행낭을 찾아오라고 했다. 그 속에는 ‘24980의 현금이 들어 있었다. 죽음을 앞두고 초연했던 남자현은 이 돈 중에서 200원은 조선이 독립되는 날, 정부에 독립 축하금으로 바쳐라. 그리고 남은 돈 4980전의 절반은 손자를 공부시키는 데 쓰고, 나머지는 친정에 있는 손자를 찾아서 교육시켜라.”라고 유언을 남겼다. 죽음마저 독립운동으로 무장했던 남자현은 강인했던 여성독립운동가의 대표적 인물이다.

영화 <암살>은 대중으로 하여금 역사의 기억을 더듬을 수 있게 충분한 소통의 통로를 확보했다. 일제에 저항했던 현장에서 무심한 듯 툭 던진 독립운동가들의 한 마디는 대중의 가슴 한켠을 파고들어 역사의 여운을 상기시킨다.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지붕에 물이 새거나 부수어져도 고치지 않았다. 곧 독립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어이 3천불, 우리 잊으면 안 돼라는 대사를 통해 소리없이 항전에 항전을 거듭했던 독립운동가의 고뇌를 기억하게 한 영화. 물론 영화의 묘미를 위해 극적인 대비와 긴장감 있는 전개로 사실을 극화시켰지만 영화 <암살>은 잊혀진 여성독립운동가를 주목시켰고, 그 시대에 오직 독립만을 위해 살았던 조선 청년들의 모습을 여성독립운동가를 통해 재발견하게 한 작품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