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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솜방망이식 대일외교(對日外交)의 반성
  • 글  김문원 신한대 석좌교수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보다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지 교육을 심어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1905년 폭력과 불법으로 조선왕조를 겁박하여 체결된 을사늑약에 따라 노예화의 길을 걸어야했던 조선 민족이 해방의 기쁨을 맞은 1945년 8월 15일. 당시 일제 마지막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가 내뱉은 이 무서운 저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오늘 필자가 이를 새삼 상기시키는 이유는, 지금 우리 모두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70년 전의 끔찍한 저주가 한낱 허공의 메아리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벌이는 교활한 수법을 자세히 살펴보면 70년 전 아베 노부유키의 망령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최근 양국 사이에 벌어진 산적한 문제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전쟁 중에 일어났던 한국인에 대한 강제동원, 노역 그리고 특히 독도 문제에 대한 치고 빠지기 식의 교활한 행동이야말로 패전 당시의 망언을 되살리기에 충분한 현실 아니겠는가?

 

독도 관련 내용이 거짓으로 부풀려 기술되는 일본의 새 검정교과서

우선 독도 문제를 살펴보자. 지난 3월 18일 일본이 공개한 2016년도 교과서 검정 결과를 살펴보면 지난 2014, 2015년도에 검정했던 내용과 동일하게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음이 밝혀졌다. 이 교과서 내용들은 “정부 입장에 기본해서 교과서를 쓰라”는 지시에 따라 집필된 것인데, 이번에는 한술 더 떠 이제는 새 고등학교 교과서 내용까지도 거짓으로 부풀려 기술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즉, 최근 검정을 통한 고등학교 교과서 등은 독도에 대한 서술의 분량이 종래 초·중등학교 교과서 내용과 달리 그 분량이 크게 늘어났을 뿐 아니라, “에도 시대에 독도 영유권을 확립” 등 허무맹랑한 논거를 들고 있다. 아울러 이들은 한국이 1952년 독도를 일방적으로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불법 점거했다는 주장도 곁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일본 측 주장은 터무니없는 역사 왜곡에 불과하다. 당시 조선 정부와 에도 막부가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을 놓고 갈등을 벌인 끝에 결국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확인하는 합의가 이루어졌음은 현재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역사적 사실인데도 “에도시대 독도 영유권 확립” 등 정반대의 거짓 역사를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역사적 증거는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날 스즈키 히데오 일본대사관 총관 공사가 서울 외교부 청사로 불려 들어가 한국 정부의 항의를 받았으나 솔직히 이는 체면치레에 불과한 솜방망이 항의로, 일본 또한 이를 일과성 해프닝으로 치부해 버리는 듯한 행태를 우리는 뚜렷이 목도하고 있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엄연한 우리 영토임에도 일본이 자기 땅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행태야말로 합법적인 남의 아내를 자기 부인이라고 우기는 작태와 무엇이 다른가?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이들에게 어떠한 태도로 맞대응해야 할 것인가?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일본의 극우역사관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이때, 우리의 대응 역시 종전의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새롭고 강력한 대책을 세워나가야 한다.

 

극적, 눈치보기식이라는 비판에 직면한 위안부 대책

다음으로 현재 우리 정부의 위안부 대책 역시 너무 소극적이고 눈치보기식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23년 전 고 김학운 할머니가 절규했던 말씀을 기억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한 게 무엇이 있소? 일본 눈치나 봤지.” 사실 오늘날까지 위안부 할머니들이 바라는 사과와 보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를 극적으로 타결했다고 주장하지만 결과에 대한 양측의 해석마저 상반되는 실정인데다, 지난 2012년 이명박 정부가 거부한 일본 정부의 제안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난해 양국 위안부 문제에 관한 극적 타결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 일본은 올해 입시생들이 배울 고등학교 검정 교과서에 “식민지에서 여성 모집”, “식민지 여성들이 위안소로 보내졌다.”는 식의 행위 주체를 뺀 서술로 사실관계를 애매모호하게 흐려놓고 있는 실정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앞서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 책임을 통감하고 사죄한다.”고 해놓고 뒤돌아서서 이러한 고교 교과서 검정기준을 마련해 시달했다는 후안무치, 이율배반적 작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또 최근 우리가 정신 차리고 눈여겨 볼 것은 일본이 1905년 을사늑약으로 무장해제의 만행을 저질렀다면 오늘날에는 일본 내에 팽배한 혐한 운동과 더불어 경제 침략을 통한 이른바 ‘신정한론’을 공공연히 떠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 당국은 이제부터라도 이른바 눈치보기식, 솜방망이식 흐리멍덩한 외교자세를 걷어치우고 지금 국민의 울분과 뜻을 분명히 반영할 수 있는 대 일본 외교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연구와 강력한 대처방법을 찾아야 한다.

집안에 A급 전범의 조상을 가진 아베 신조가 일본의 총리가 되면서 소위 ‘집단자위권’이라는 명분 아래 평화 헌법 9조를 무력화시킴으로써, 오늘날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만들어 버린 작태를 보며, 패전으로 도망치면서도 복수를 울부짖던 아베 노부유키의 망언이 되살아남은 필자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