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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재단 설립 10주년 기념 특집 재단에 바란다 자체 연구 역량 제고, 국제적 연구 기관으로 뻗어나가야
  • 진행 정리 · 강정미 (대외협력실 행정원)

2016년 동북아역사재단이 설립 10주년을 맞았다.〈동북아역사재단뉴스〉에서는 재단 이사장, 자문위원장을 역임한 유공 인사와 학계 원로를 모시고 지난 10년 동안 재단의 활동 성과를 점검하고, 재단의 발전을 위한 고언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번 호에는 재단 초대 이사장을 역임한 김용덕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에게 동북아 역사와 영토 문제의 추이와 현황을 바탕으로 재단의 발전 방향에 관한 조언을 듣는다. _ 편집자 주

김용덕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

서울대 사학과 졸업. 미국 하버드대 동아시아사 박사(일본 근대사 전공).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역사학회장, 서울대 국제대학원 원장, 2006∼2009년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현재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 2006년 일본 국제교류기금상 수상

Q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임기를 마치고 퇴임 후 광주과기원 석좌교수로 부임하셨다. 좀 의외였다. 이 곳에서의 근황을 여쭙고 싶다. 현재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연구 주제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김용덕 서울대학교 정년과 동북아역사재단(이하 재단) 퇴임이 같은 때여서, 퇴직 몇 달 전부터 한두 군데 이야기가 있었지만 되도록 광주나 호남 지역으로 가서 일하고 싶었다. 한국의 지식인이라면 광주에 도덕적 부채 의식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침 광주과학기술원(Gwangju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이하 지스트)에서 새롭게 과학영재교육을 위한 학부과정을 만드는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아 기쁘게 받아들였다. 지스트 대학은 이공계 특성화 대학인만큼 인문학 교육을 통한 인성교육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학생들이 과학 지도자가 되기 위한 품성 함양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전통과 문화〉,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 〈역사학특강〉 등 강의와 세미나를 하면서 지식습득만이 아니라 우리 문화, 아시아의 지혜 등을 역사적 시각에서 가르치고 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 주제는 아직도 끝맺지 못한 “메이지 시기의 지식인 운동 : 明六社”가 남아있고, “일본 사학사(日本史學史)”와 “일본인의 국가인식과 역사적 책임”들이다.

Q 재단이 벌써 설립 10년을 맞는다. 초대 이사장으로서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다. 2006년 당시 재단 설립의 의미를 평한다면?

김용덕 당시 중국과 사이에는 동북공정 문제와 백두산의 역사성 논란이 대응해야 할 역사 현안으로 있었고, 일본과는 독도 영유권, 동해 표기, 역사인식 차이(일본군'위안부', 역사교과서) 문제가 있었다. 재단 설립 초기에 세운 목표는 현안을 객관적, 학술적, 역사적 맥락에서 검토하여 한국 측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펴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하여 국내외적으로 평가받고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수준 높은 연구기관을 지향하였다.

Q 동북아 역사와 독도 현안이 세 나라 사이의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재단은 연구, 정책 대안 제시, 실행(교육과 홍보)을 주요 과제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셋 사이에 균형 잡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내부에서는 물론이고 재단을 바라보는 혹은 재단에 뭔가 기대하는 사람들의 시선도 다양하다. 재단이 학술 연구 집단이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고, 정책적 대안 제시와 실행이 더 중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이사장 재직 당시 이런 것 때문에 어려움은 없었는가?

김용덕 이러한 주제에 맞는 재단 자체의 연구능력 제고와 국내외 연구 활동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수준 높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 제안과 교육・홍보를 하는 것이 적절하고 효율적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감성적 대응에 민감한 국회와 언론의 비판, 그리고 재야 학계의 일방적 비난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설득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Q 재임 기간 동안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이나 관심을 기울인 분야가 있다면? 혹시 아쉬웠던 점은 없는가?

김용덕 연구기관으로서 위상을 높이는 것이 1차 과제였다. 단단한 학술 근거를 바탕으로 국제 사회와 학계에서 인정받는 기관을 세우면 우리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중국, 일본 등에 논리로 압박을 가할 수도 있을 것을 기대하였다. 원래 역사나 영토 문제는 당사국 사이에 해결을 보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한국 측 주장이 학술적으로 타당하고 논리적이라면 국제 사회에서 동조자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아울러 중국, 일본과 유사한 갈등을 빚고 있는 다른 나라들(러시아, 몽골, 베트남, 중앙아시아 국가들)과도 학술교류를 통하여 연대망을 구축하려 하였다. 다만, 북한과 공동 보조를 취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Q 2006년 한창 재단 설립을 준비하던 당시와 10년이 지난 지금 한일, 한중, 또는 한중일 사이 역사 현안과 갈등의 양상, 또 해결을 위한 당사국의 노력에 어떤 변화나 차이가 있다고 보는가?

김용덕 한중 관계 호전으로 재단이 부담해야 할 현안 문제에서는 조금 여유가 생긴 것 같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한일 관계는 더욱 경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학계나 시민운동 차원에서는 10년 전에는 협력이 잘 이루어진 부분이 있었으나, 지금은 이마저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한 심정이다. 정치 공학적으로, 정권의 명분용으로 풀어가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한국이 동아시아 세 나라 관계에서 지렛대 역할을 할 수도 있는데, 이러한 자산을 우리가 활용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국제 수준의 연구기관으로 뻗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들리는 비판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재단 본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Q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두 정부는 해결됐다고 하지만, 정부 합의를 해결이라고 보지 않는 견해가 있다. 지난 10년 동안 한중일 역사를 둘러싼 갈등이 더욱 격화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런 현실에서 재단이 해야 할 역할 내지는 재단만의 영역이 있을까?

김용덕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에 맞게 설득력 있는 학술 성과로 대처하는 것이 재단의 활동 목적이다. 현안 해결을 위한 역사적, 학술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를 한중, 또는 한・일 간 특수상황으로 보고 그 해결에 급급하기보다 세계 역사의 보편상황으로 문제의식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독도 현안이나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을 제국주의 침략 과정에서 발생한 세계사 차원에서 다뤄야 할 문제 또는 현재도 그치지 않는 여성인권 문제로 확산한다면 국내에서 감성적 대응을 냉정하게 객관화하고 국제 사회의 동의와 공감, 지원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Q 2014년 2월에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 공동 주최로 열린 한일 지식인 좌담회에서 '한일 역사적 진실과 화해 위원회' 같은 모임을 구성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으셨다. 그 제안은 아직도 유효한가?

김용덕 이전에 '한일 역사공동위원회' 등이 있었으나 시한을 정해 놓은 정부지원 위원회였기 때문에 항구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진실과 화해를 위한 위원회는 정해놓은 기간에 구애 받지 않으면서, 정부의 입김을 배제한 순수한 지식인들의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담아 제안한 것이다. 여기서 토론 과정은 무엇이 문제인가를 먼저 합의하는 단계, 두 나라가 문제 해결을 위한 견해를 제시하는 단계, 실체적 진실에 관한 순차적 합의 단계, 화해와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 단계 순으로 진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구상해 본 것이다.

Q 지난 2년 동안 한일 관계는 더욱 나빠졌다. 2015년 9월 열린 '한일관계사학회'에서 “전후세대 일본인들의 자기 나라에 대한 인식에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신 바 있다.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란 무엇을 염두에 둔 것인가?

김용덕 현재 전후세대 인구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일본에서 전쟁 전 잘못을 이들이 책임져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다. 아베 수상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일본이 더 이상 사죄할 필요는 없다고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일본이라는 나라는 역사적 연속성 위에 존재하는 '역사적' 실체다. 일본 국민들이 일본이라는 국가 구성원이라면 '역사적 실체' 로서 일본이 떠안은 역사의 자산(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을 모두 지고 가야 한다는 뜻이다.

독일은 일본보다 훨씬 전면적으로 전후 정치체제가 바뀌었음에도, 전쟁 전에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을 무한히 지고 후세들이 이를 인식하도록 교육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현재 독일인은 '역사적 실체'로서 독일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국가인식 때문일 것이다. 일본인들의 역사 인식 문제는 국가 인식이 부실해서 생긴 것 아니냐 하는 것이 내 주장이다. 물론 사죄보다중요한 것은 사죄에 합당한 실천과 행동이다. 이를 통해 사죄의 진정성을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Q 지난해 연말 한일 정부는 더 이상 양국의 관계가 나빠지지 말자는데 동의하고 관계를 정상화하였다. 정부 사이에 어떤 사안으로든 외교적으로 갈등하는 것은 국제 정치에서 상수라고 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양국 시민들 사이의 감정까지 냉랭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다.

김용덕 오히려 국민들의 불만을 일본만이 아닌 한국 정부도 함께 떠안은 것이 아닌가 싶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일본의 진정한 사과에 있지, 돌아가시기 전에 보상금을 받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체 일본군'위안부' 희생자들 중 매우 적은 수만 현재까지 살아 계시는데, 이 생존자들만 대상으로 하는 태도는 본질을 외면한 것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 많은 희생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 깊이 고민하여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미국의 압력일 수도 있지만, 현재 주일 미국대사는 아베 수상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에 노골적으로 비판을 했던 인물이다. 우리가 과연 미국을 얼마나 활용했는지, 역으로 이용당했는지 하는 점을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더구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은 한국을 그 틀 안에 넣어두려는 일본의 의도에 동의해 준 것이다. 이것을 보아도 일본의 사죄가 얼마나 진정성을 갖추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사죄보다도 그 후 하는 행동이 중요한 까닭이다.

Q 많은 사람들이 동북아 갈등이 커지고 있고, 가장 큰 책임은 일본 아베 정부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베 수상은 물론 그 정부의 각료들은 개선해야 한다거나,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하여 얻는 이익이 무엇이며, 다른 노림수가 있는 것일까?

김용덕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위상을 세우려는 것이다. 이른 바 '보통국가'(국력에 맞는 군사력도 갖춰야 한다는 논리)를 지향하며 세계질서를 구축할 때 한 축을 맡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미국과 함께 동아시아 강국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자임하려는 정치적 야심을 실현하려는 것 아닐까?

Q 전문가로서 한일 관계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한다면?

김용덕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합의라고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문자대로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고, 또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오히려 두 정부의 '미봉책'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인들의 인식전환을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양심적이고, 바른 역사인식을 하는 일본인들이 적극 활동하고 이들의 견해가 널리 퍼져 나갈 수 있도록, 우리도 감성적으로 대응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냉정하게 대응하고 일본의 변화를 지켜보는 인내심도 보여야 한다. 아베 정권에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일본 정치가 변할 때도 있을 것이다.

Q 퇴임 후 꽤 긴 시간이 흘렀다. 재단의 활동을 한발 떨어져 지켜보시고 계시다. 재임할 때와 또 다른 생각이 들 것 같다. 전임 이사장이 아니라 역사학계 원로로서 재단의 새로운 10년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는가?

김용덕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국제 수준의 연구기관으로 뻗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들리는 비판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재단 본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국내외 연구 업적을 빨리 수용하며, 재단 자체 연구역량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다른 기관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흔들림 없이 지속해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