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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제20회 동해 지명과 바다 이름에 관한 국제세미나'공정성'과 '인본주의' 관점에서 '동해표기'를 논하다
  • 신승혜 독도연구소 행정원

동북아역사재단은 사단법인 동해연구회와 공동으로 지난 10월 26일부터 29일까지, 경주에서 제20회 동해 지명과 바다 이름에 관한 국제세미나(The 20th International Seminar on Sea Names)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동해(East Sea) 명칭을 국제표준화하기 위한 관련 논의를 확산하고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1994년 처음 열렸고, 재단은 2007년부터 공동 개최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전 세계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열고 있는데, 올해는 20주년을 맞이하여 특별히 동해바다를 끼고 있는 경주를 개최지로 선정하여 미국·영국·오스트리아·헝가리·벨기에·러시아·알제리 등 10개국에서 온 지리학·지명학·역사학·국제정치학·국제법 분야의 전문가 30여 명을 초청하여 성대하고 의미 있는 행사로 치러졌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지명 표기, 사회 정의, 교육적 가치', '문화유산으로서 지명', '지명 표기의 역사적, 언어학적 접근', '국제법, 국제관계, 국제기구와 지명 표기', '표기 문제 인식과 해결방안'을 주제로 논문 16편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문화·역사·사회·경제의 산물로서 지명과 사회정의

미국 웨스턴미시간대학의 조셉 스톨트만(Joseph Stoltman) 교수는 '지리교육과 지명 표기 문제'에서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 증진과 문제해결능력 향상을 위해 지리교육학 주제로 지명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사회정의(social justice)란 어떤 쟁점에 관해 어느 일방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이익을 공정하게 고려해야하는 원칙이자 사회가 지향해야 할 공동체의 가치라 할 수 있다. 지명은 장소와 지역의 문화·역사·사회·경제의 산물이므로 사회정의와 지리교육은 밀접한 연관성이 있으며, 동해/일본해 표기 문제는 사회정의 차원에서 지리교육에서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버지니아주 교민인 최연홍 전 서울시립대 교수는 미국 버지니아 주 동해병기법이 중요한 교육 가치와 교육 목표를 실현한 모범 사례임을 강조하였다. 미국 주정부, 지방정부에서 교육의 중요한 임무는 정당성(justice)을 함양하는 것이며, 지명 병기는 미국 학생들에게 공정함(fairness)이라는 정의를 습득하도록 하는 좋은 사례라는 것이다. 따라서 버지니아주 동해병기법은 미국의 다른 주나 국제사회가 동해/일본해 병기로 나아가는 중요한 단계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명 문제와 영토 문제 분리 전략 검토를"

참석자들은 10월 29일 학술세미나를 마치고
경주와 동해바다를 답사하였다.

한편, 미국 코네티컷대학 알렉시스 더든(Alexis Dudden) 교수는 '역사의 중요성 : 일본 제국의 시각에서 본 동해/일본해 표기 이슈'에서 일본은 자신의 영토로 편입한 해역을 일본의 내해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고, 바다이름 명명도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일본에서는 동해표기 확산 움직임을 일본의 과거사를 비난하려는 것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동해표기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명 문제를 영토 문제와 분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과거사를 강조하기 보다 동해수역을 공유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실익을 서로 얻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지역적 협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상균 연구위원은 19세기 중반 이후 '일본해' 명칭이 확산되는 과정을 일본 제국주의의 영향력 강화와 일본의 세계지도 제작 측면에서 검토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7~20세기에 만들어진 동서양 지도를 분석해보면, 18세기부터 정밀한 동양 지도가 등장한다. 이상균 연구위원에 따르면 18세기 서양 지도에서는 'Sea of Korea'라는 지명 사용이 우세하였으나, 1787년 프랑스 탐험가 라페루즈 항해기에 '일본해'라는 명칭이 나타난 후 '일본해' 명칭이 널리 쓰이기 시작하였고, 19세기부터 서양열강이 '일본해'로 지도에 표기하였다고 설명했다.

경희대학교 주성재 교수는 '동해표기의 현황과 향후 과제'에서 표기 문제에 관한 해결방안을 모색하였다. 한국과 일본이 합의 할 수 있는 대안으로 △두 개 이름을 함께 보여주는 대안적인방법, △한 도면에 표로 모든 이름을 나열하는 방안, △국제용과 국내용 표기를 구분하고, 국제 표기명칭을 위한 새로운 이름에 합의하는 것을 제안하였다. 또 동해 표기 문제 해결을 위해 '인간'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바라볼 것을 제안하였다. 바다와 그 이름에 관해 사람이 느끼고 공유하는 친밀감과 무형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의 가치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바다 이름을 둘러싼 갈등을 푸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세미나는 지리학적 관점만이 아니라 교육, 문화, 사회정의, 역사라는 다양한 관점에서 지명의 의미와 역할을 살펴봄으로써, 동해표기 문제를 논의할 영역을 넓혔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또 유럽·미국·아프리카 등 여러 국가에서 참가한 연구자 중에는 동해세미나에 처음으로 참여한 사람들도 많았는데, 지명 문제 논의가 학술적으로 더욱 다양하고 활발해지는 계기를 마련한 점도 나름의 성과다.

동해표기 문제 등 해양지명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은 지명의 병기인 만큼 이와 관련한 일반적 원칙 수립이 중요하다. 지명 병기에 관한 규정을 명문화하여 국제사회의 표준으로 삼는다면 동해수역 명칭 분쟁은 물론 다른 지명 분쟁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해결하는 데 국제기구가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지 회의를 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명에 관한 합의를 유도하고 지명 병기에 관한 결의안을 제정하는 데 국제기구와 국제회의에 여전히 기대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