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침체에 마침표를
재단은 지난 8월 11일(목)~12일(금) 양일간 “동아시아에서의 문화와 전쟁”이라는 주제로 2022년도 동북아역사재단 연례 국제학술대회(2022 NAHF Annual Conference)를 비공개로 개최했다.
코로나19는 해외 연구자들과의 소통을 크게 제약해왔다. 그 기간이 너무 오래 지속되어 코로나19로 인해 생긴 일상이 이제 ‘정상’(normal)이 되어버린 듯하다. 재단은 코로나19 종식을 기대하며 작년부터 국제학술회의 개최를 준비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대면 회의에서는 계속 어려움이 있었다.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례 국제학술대회는 대면, 비대면으로 참석한 해외 연구자들과 새로운 교류의 기회를 쌓는 기회가 되었다. 부디 내년부터는 모든 학자들이 직접 참여하여 얼굴을 마주 대하고 교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연혁과 기획
이번 연례 국제학술대회는 그간 재단에서 개최한 국제학술회의의 성격을 고려하여 기획했다. 기획 방향은 이영호 재단 이사장의 환영사에 잘 나타나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동북아시아의 역사 갈등을 해소하여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2006년 설립되었습니다.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재단은 국내외 학자들과의 교류와 협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습니다. 일본과 중국, 그리고 베트남, 몽골 등 동아시아 지역의 학자들, 나아가 구미학자들과도 교류하고 소통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대체로 국가별 교류에 치중하다보니 국제적 차원의 학술 교류의 장을 마련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려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불균형을 보완하기 위해 재단은 올해부터 매년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국내 학자는 물론, 일본과 중국 등 동아시아의 학자들 그리고 세계 여러 지역의 학자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학술마당을 마련하여, 동아시아 문제에 대한 국제 학술계의 연구 성과를 수렴해가려 합니다. 재단은 동북아 역사 갈등 해소를 위해 국제학술회의를 통해 다음과 같은 노력을 하고자 합니다. 첫째 보편성과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비교사적 시각을 적극 수용하고, 둘째 한·중·일 사이의 역사 현안 뿐 아니라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사까지 포괄하여 다양하고 폭넓은 주제로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설립 당시부터 국제학술회의의 개최는 재단에서 중요한 사업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중국과 일본의 역사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와의 공조가 핵심적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단의 과제는 한국학 중심의 여타 기관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러한 과제를 재단은 나름 잘 정의하고 수행해왔으며 또한 발전해왔다. 재단 설립 초기에는 대체로 중국· 일본의 연구자들과의 만남이 중심이 되었지만 이를 보완하기 위해 베트남, 몽골, 구미 등 연구자들과도 다양하게 교류하였다.
그럼에도 회의의 성격이나 내용이 국제적 수준에는 다소 한계가 있었다. 여기에는 재원을 비롯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기 위한 부대 상황의 미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도 재단의 현안을 국제적인 시각에서 조망해서 문제를 새롭게 재설정하는 과정이 부족했다. ‘우리의 현안’이 곧 국제사회의 현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오래 전에 자각한 바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성장 수준에 걸맞는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을 고려하면서, 역사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적절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번 연례 국제학술대회는 문화와 전쟁을 소재로 국제학술계와의 접점을 찾아보려 했다. 중국발 역사현안이 포함되어 있는 주제였다. 8월 11일 첫날 문화 세션에서 한국 측 발표자들은 중국의 문화 원조 논쟁을 대응하는 차원에서 발표했고, 구미 연구자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문화현상에 대해 발표했다. 동아시아 문화현상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말씀해주신 한경구 한국유네스코 사무총장의 흥미로운 기조강연(keynote speech)에서, 향후 국내와 해외 학계의 간극을 어떻게 좁혀갈지 큰 화두를 받은 느낌이다.
둘째 날은 임진왜란과 6.25전쟁을 다루었다. 두 패널의 발표는 확실히 국내 두 전쟁에 대한 통념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밴더빌트대학(Vanderbilt University) 피터 로지(Peter Lorge) 교수의 기조강연에는 ‘열강’(powers)의 역학관계에 초점을 둔 미국학계의 연구 경향에 대한 반성이 포함되어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중소 국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계기였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정일, 오병수 재단 연구위원이 조직한 두 개의 전쟁 주제 패널은 ‘지역’(local)을 통해 ‘세계’를 보았다. 이것은 로지 교수의 연구방법론에 대한 반성과 맞물려 있었다. 이러한 접점의 발견은 향후 전쟁사 연구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된다.
재단은 이번에 개최한 국제학술회의에 특별히 ‘연례’라는 말을 붙였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진행할 것이란 결심을 나타낸 것이다. 하지만 ‘작심삼일’이란 말이 그냥 회자되는 것이 아니듯, 그 결심도 이내 희미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개인의 결심이 아닌 한 조직의 결심인 만큼 지속성의 차이를 보이리라 기대해 본다. 한 개인의 기억보다 한 조직의 기억이 더 오래 지속하듯 말이다. 유럽 통합의 아버지로 불리는 장 모네(Jean Monnet)는 그의 회고록에서 영국인이 제도를 잘 관리하고 유지하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말했다. 영국의 국왕이나의회를 보면 그 말이 참 잘 이해된다. 모처럼 시작한 재단의연례 국제학술회의도 제도 유지의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동아시아 역사연구를 선도하여 역사화해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학술대회로 뿌리를 내리기를 바라본다.
학술대회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재단 내에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한다. 해마다 큰 주제를 설정해서 패널을 구성하자는 의견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발표 주제의 다양성을 강조하며 자유롭게 운영하자는 의견이 있다. 현재 재단이 안고 있는 여러 어려운 여건을 고려해보면 두 의견 모두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이 문제는 향후 재단의 여건 변화와 실천상의 어려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융통성 있게 풀어가야 할 것이다.
국제학술 교류의 방향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대응은 재단의 주요 과제다.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재단은 설립 이후 줄곧 중국과 일본을 대상으로 직접 소통을 하려고 노력하였다. 당사자가 만나서 서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당사자 위주의 소통은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한 당사자 위주의 소통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과거 30년 동안 우리와 중국은 경제적 공동이익을 매개로 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이제 중국 경제의 성장으로 공동이익의 분모가 크게 줄었다. 또한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중국은 세계의 패권국가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은 역사문제에서 우리를 동등한 대화의 파트너로 보지 않는다. 중국이 우리를 동등한 대화의 파트너로 간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세계무대에 직접 자신의 논리를 전파하려 하는 한, 우리가 중국을 대상으로 설득하려는 시도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역사왜곡 문제에서 국제사회를 설득할 필요성은 당사자 중심의 대화가 한계를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국제화하는데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걸림돌은 재정적 제약과 더불어 설득의 논리를 개발하는 데 따른 어려움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국제학술 교류는 국제사회를 설득할 논리를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설득 논리의 개발은 시간과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신뢰를 쌓는 일은 그런 것이다. 꾸준함과 신뢰를 바탕으로 국제사회를 설득할 논리를 개발하는 일이 향후 재단의 국제학술대회 조직과 교류의 방향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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