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사通史란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의 하나로, 대상이 되는 나라의 모든 것을 훑어볼 수 있도록 서술한 역사서를 말한다. 『고구려 통사』는 고구려의 전 시대를 살피고 그 역사를 이룬 모든 구성 요소를 종합적으로 다룬 것이다. 언뜻 보더라도 서술 범위가 방대할 것이라는 점에서 대상 모두를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꽤나 곤란한 작업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학계의 고구려사 연구가 지난 10여 년 간 급성장을 이루어, 과거에 알고 있던 고구려사와는 많은 부분에서 내용을 달리하게 되었다는 점에 있다. 잘 다루지 않던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의 초기 기사를 적극 활용하여 새로운 논의와 방법론이 다각도에서 모색되고 있는 것도 그 성과의 하나이다. 정치사와 대외관계사를 중심으로 주제가 세분화되고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고고학에서는 중국·북한의 연구 성과에 기초하여 남아 있는 유적의 현황을 개설적으로 정리하던 경향에서 벗어난 지 오래이다. 임진강 이남의 한반도 중부 지역에서 고구려 유적에 대한 조사가 늘어나면서 고분·성곽·토기의 양식을 이해하고 편년을 설정하는 등 독자적인 연구 성과물이 나오는 단계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학계가 이용하고 있는 고구려사 개설서는 2007년 재단이 발간한 『고구려의 정치와 사회』, 『고구려의 문화와 사상』이 가장 최신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밖에 『한국사 5 - 삼국의 정치와 사회Ⅰ- 고구려』(국사편찬위원회, 1996)와 『한국사』(전 27권 중 제3권, 한길사, 2000)의 개설서와 『고구려사 연구』(노태돈, 1999) 등 개인 연구자의 저작들도 그때까지의 연구 성과를 반영한 결과물이었다. 이들이 학계의 고구려사 연구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재단은 다음의 세 가지 이유에서 통사를 발간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통사를 발간하는 까닭
첫째, 축적된 연구 성과를 정리해야 할 필요성이다. 재단의 발간물이나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는 당시의 여건 상 담고 있는 내용이 제한적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현재 사장된 학설을 소개하는 대목도 보인다. 그동안 우리 학계의 고구려사 연구는 비약적으로 성장하였고, 세계 학계의 고구려사 연구를 선도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한 새로운 정리물이 절실한 시점인 것이다.
둘째, 역사상에 충실한 이해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간의 연구로 고구려사가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일부에서는 재검토가 요청되는 섣부른 결론도 적지 않아 보인다. 이 경우 역사상에 부합하는 이해를 제시하여 신진 연구자나 관심 있는 이들이 학술적으로 타당한 이해를 토대로 고구려사를 조망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기존의 연구사 정리는 관련 연구를 진행한 개인 연구자가 책임지고 해당 장·절을 집필하는 방식이었다. 이 경우 해당 내용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특정 학설이나 주장에 치우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지금까지의 관련 저작들은 대개 그러하였다. 이 점에서 집필자의 선정에 앞서, 어떻게 하면 역사상에 충실하며 특정 견해에 치우치지 않는 집필이 가능할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셋째, 중국의 동북공정식 연구가 추동한 위기의식 때문이다. 짧은 시간 내에 고구려사 연구가 이토록 발전한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식 연구도 한몫 하였다. 중국 동북지역의 역사 체계를 중국 중심으로 구축하려는 동북공정 연구는 고구려사를 핵심 과제로 다루었고, 자연히 고구려사를 구성한 여러 분야를 섭렵하는 연구가 쏟아졌다. 최근에는 패망 후 당으로 들어간 고구려인이 남긴 묘지墓誌나 『한원』翰苑 등 1차 사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으며, 중국 현지의 고고 자료를 활용한 새로운 논리 개발도 적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점에서 이들 신출新出 자료에 대한 충실한 소개와 함께, 중국 측의 새로운 이해와 논거에 대한 학술적 비판과 정합적 이해도 필요해지고 있다.
고구려 통사의 특징
재단은 통사 발간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기획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통사를 어떻게 구성할 것이며, 집필 내용의 구성 요소로는 무엇을 넣을 것인가, 집필의 주안점은 어디에 둘 것인가 등 체제를 세우는 일이 여기서 이루어졌다. 각 권의 내용 기획안도 여러 차례의 논의를 거쳐 확정하였다. 집필된 원고 내용을 검토하는 작업도 기획위원들이 맡아, 기획안에 따라 원고가 작성되었는가를 살폈다. 그 첫 성과물이 『고구려 통사 1-고구려의 기원과 성립』, 『고구려 통사 3-고구려 중기의 정치와 사회』(2020)였다.
고구려 통사는 고구려 전기사(2권), 중기사(2권), 후기사(3권), 고고(2권), 총론으로 구성하였다. 각 시대마다 혹은 고고 자료의 특성상, 통사의 각 권이 서술할 내용의 조건은 매우 다양하다. 중기사는 자료의 한계로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한 기술이 적지만, 후기사는 최근에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유민 묘지에 힘입어 수·당과의 전쟁이나 관제 등에서 내용이 풍부해지고 있다. 따라서 각 권을 구성하는 연구 주제나 내용 역시 이러한 자료 조건이나 연구자들의 관심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통사는 고구려 역사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편찬된다는 점에서 목차 구성에서 주제별·시기별 균형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각 권의 서술에 나타날 편차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였다. 이를 위해 기획위원회는 각 권별 내용 구성안을 마련하였고, 이에 따라 해당 원고를 작성케 하고 있다.
현재 『고구려 통사 2』와 『고구려 통사 4』의 원고 집필이 마무리되었고, 작년에 집필되어 수정·보완된 『고구려 통사 5-고구려 후기의 정세 변화와 지배 체제』, 『고구려 통사 8-유적편』이 발간 작업 중에 있다.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는 『고구려 통사』는 연구에 입문한 이들에게 고구려사의 주요 맥락과 과제에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는 지침서가 될 것이며, 고구려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간 알지 못했던 고구려의 새로운 모습을 살피게 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리라 생각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창작한 '『고구려 통사』 발간의 의미 고구려라는 나라의 시작에서 끝, 그리고 그 자취의 모든 것'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