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개국 125개 도시에서 진행된 일본 교과서 바로잡기 ‘세계 행동의 날’.
일본 문부과학성 앞에서 항의 중인 한일 시민의 모습(2001. 6. 12).
20년 전에도 전개된 일본 제품 불매 운동
최근의 한일관계를 상징하는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는 한국의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었다. 거리 곳곳에 “사지 않습니다, 가지 않습니다.”라는 구호가 걸렸다. 그런데 약 20여 년 전에도 같은 사건이 있었다. 그때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을 후원하는 일본 기업의 제품을 불매하는 운동이었다. ‘새역모’는 일본의 기존 역사관을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하고, ‘자유주의 사관’을 제창하며 교과서를 만들어 역사를 왜곡했다. 이에 한일 시민들은 역사 왜곡의 심각성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대사관을 항의 방문하였으며, 일본 역사 교과서 개악 저지 집회, ‘새역모’ 교과서 불채택 운동을 이어가며 86개 단체가 참여한 ‘일본 교과서 바로잡기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를 4월 23일 창립하였다. 그해 후쇼샤판 교과서 채택률은 한일 시민이 연대하여 벌인 운동으로 인해 0.039%(총 521권)에 그쳤다.
『미래를 여는 역사』, 『한·중·일이 함께 쓴동아시아 근현대사』
한국어판·중국어판·일본어판·영어판
새로운 목표,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 인식을 향해
‘운동본부’를 비롯한 한·중·일 시민단체들은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을 저지하는 데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 인식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2003년 ‘운동본부’는 보편적인 아시아 시민 연대를 지향하며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로 개칭하고, 아시아 공동의 역사 인식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다.
한·중·일 학자, 교사, 시민이 함께 모여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 인식을 만들 방안, 그리고 그것을 학생들과 공유할 방법에 관한 고민을 시작한 것은 2002년 3월 중국 난징에서 개최한 ‘역사 인식과 동아시아 평화 포럼’(이하 ‘포럼’)에서였다. 포럼을 통해 실질적인 대안을 모색한 것은 물론, 동아시아 최초의 ‘공동 역사 부교재 편찬 사업’을 결의하였다. 배타적 역사 인식을 지양하고 미래를 향한 공동의 역사 인식을 위해, 한·중·일 시민사회가 뜻을 모았다. 2005년 ‘포럼’은 한·중·일 학교 현장에서 공동으로 사용할 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를 발간했다. 2012년에는 두 번째 결과물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1~2권)를 출간하였고, 2022년에는 세 번째 결과물을 출간할 예정이다.
동아시아 평화 구축을 위해서는 미래세대와의 공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실천 현장인 ‘동아시아 청소년 역사 체험 캠프’는 2002년 서울에서 첫 행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일 양국의 청소년으로 시작하였으나, 2004년부터는 중국 청소년도 참여하였다. 이 캠프에서는 한·중·일이 공유 가능한 역사 주제를 선정하여 현장을 답사하고, 전문가를 초빙하여 강연을 들으며, 3국의 선생님들이 공동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각 학생들은 자기의 역사 지식과 다른 나라 친구들이 알고 있는 역사 지식을 비교하며 서로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게 된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동아시아 평화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 여러 나라들은 교류가 단절되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극한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출간된 고등학교 『한국사』와 『동아시아사』 교과서 중 상당수가 동아시아 평화의 중요성과 그 실현을 위한 활동을 강조하며 우리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의 활동을 소개한다. 이렇듯 한·중·일 공동 역사 부교재와, 동아시아 청소년 역사 체험 캠프는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중요한 활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교과서에 소개된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의활동(『한국사』 동아출판, 2020, 303쪽).
끝나지 않은 교과서 역사 왜곡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가 활동을 시작한 지 이제 20년이 되었다. 그런데 한일관계는 여전히 평화롭지 않다. 전 세계 대부분 국가가 세계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열린 교육을 지향하지만, 현실은 자국 중심의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3월, 일본 정부는 내년부터 자국의 고등학생 필수 과목인 『역사총합』을 비롯한 교과서 검정을 통과시켰다.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들은 형식이나 자료 제시 등에서는 상당한 수준을 보여주었지만, 제국주의 시선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일본 정부의 지침에 따라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이 강화되었고, 일본군‘위안부’ 관련 문제 서술은 후퇴했다. 이는 한일 간 해묵은 역사 인식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아시아평화를 향한 여정은 아직 멀고도 험하지만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는 또 한 걸음 내디딜 준비를 하고 있다. 동아시아 시민의 지혜와 열정, 그리고 연대가 그 시간을 단축해 나갈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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