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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일본 외교 전략가 오카자키 히사히코를 다시 생각한다
  • 박영준,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

오카자키 히사히코, 岡崎久彦 (1930~2014) ⓒOkazaki Institute

오카자키 히사히코, 岡崎久彦(1930~2014)

ⓒOkazaki Institute


오카자키 히사히코의 두 얼굴

오카자키 히사히코岡崎久彦는 일본의 전형적인 엘리트 외교관이었다. 1960년대 초반 도쿄대학 법학부 재학 중에 외무성 외교관이 된 이후 케임브리지 대 및 하버드대에서 연수하기도 하였고, 사우디 및 타일랜드 대사를 역임하였다. 퇴임 이후에는 개인 연구소를 세워 국제 정세를 분석하면서, 저술 활동을 통해 일본 외교 전략에 대한 제언을 활발하게 발신하기도 하였다.

다만 일본 동향에 어느 정도 익숙한 한국인들 사이에서 오카자키 히사히코는 보수적인 평론가, 혹은 극우적인 인사로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사실 외무성을 퇴임한 이후 오카자키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역사를 재평가하려는 모임에 참가하였고, 기타오카 신이치北岡伸一 동경대 교수를 포함한 보통국가론자들의 사부적 역할을 하면서 아베 총리의 핵심적인 외교 안보 브레인으로도 활동하였기 때문에 이 같은 평가가 그다지 틀린 것은 아니다.


    

김대중-오부치 공동 성명(1998. 10. 8.)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는 공동 성명을 통해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이 양국의 폭넓은 참여와 노력에 의해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될 수 있다는 공통의 신념을 표명하고, 양국 국민이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의 구축·발전을 위한 공동 작업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연합뉴스

김대중-오부치 공동 성명(1998. 10. 8.)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는 공동 성명을 통해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이 양국의 폭넓은 참여와 노력에 의해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될 수 있다는 공통의 신념을 표명하고, 

양국 국민이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의 구축·발전을 위한 공동 작업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연합뉴스


오카자키의 파격적인 한국 인식과 그 영향

비록 일본 내 지식인 지형에서는 보수 우익적인 인사였지만, 오카자키는 한국 사회와 역사에 대해 일본이 정확히 인식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을 70년대부터 표명한 인물이기도 하였다. 1973년도에 한국 대사관에 참사관으로 부임한 그는 한국 체재 경험을 바탕으로 이웃 나라에서 생각한 것えたこと이라는 제하의 에세이를 1976~77년에 걸쳐 제군諸君에 게재한다. 사실 그가 한국에 체재한 시기는 1974년 문세광 사건으로 인해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시기였다. 이로 인해 당대의 일본 정계는 물론 지식인 사회는 한국에 대해 군사 독재 등의 이미지를 가지고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하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오카자키 참사관은 일본 사회가 한국 역사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고 평가했다. 일본 대학에서 한국의 역사와 언어를 연구하는 것에 대해 강한 저항과 반발이 있음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그는 한반도 삼국 통일의 역사나 고려 태조 왕건의 역사 등이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의 역사에 견주어 보아도 흥미로운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였고, 심지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는 교양이 있는 조선 시대의 애국자로서, 일본의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에 비교할 수 있는 일류의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당대 일본이 한국의 역사와 사회에 대해 여전히 무지한 상태이기 때문에 일본 내에서 한국에 대한 멸시가 배태되었고, 한일 간 상호 불신과 혐오도 결과되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오카자키는 한국의 일반 시민들이 대단한 수준의 교양이 있고, 당시 진행되던 한국의 경제 성장도 주목할 만한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일본으로서는 한국의 경제 발전이나 안전 보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한 지원이 한국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대일 역사 감정을 풀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결론적으로 그는 한일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가의 여부가 일본의 국가 백년대계라고 강조한다.


오카자키의 이 에세이는 당시 일본수필가협회가 제정한 상을 수상하는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자민당을 필두로 하는 일본 정치권의 대한국 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일관계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성명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과거사를 직시하며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점에 합의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내에 오카자키와 같은 인식을 가진 식자와 정치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는 그의 생전인 2007731, 도쿄 소재 오카자키 연구소를 방문해 그와 1시간 정도 대담을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노령임에도 일본의 안보정책과 미·일 동맹에 관한 필자의 질문에 진지하게 답변해 주었고, 결론적으로 향후에도 한미일 간에 외교 및 방위 분야에서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오카자키 히사히코의 에세이 「이웃 나라에서 생각한 것 (隣の国で考えたこと)」

오카자키 히사히코의 에세이

「이웃 나라에서 생각한 것 (隣の国で考えたこと)」


21세기 일본과 한국 정치인들의 현실

다만 최근 일본 정치를 보면 오카자키와 같은 대국적인 시각에서 일본의 외교정책과 그 연장선상에서의 대 한국 정책을 생각하는 인물이 그리 보이지 않는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일부 일본 내 보수 우파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위안부관련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였고, 나아가 일본 정부의 기금으로 위안부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그런데도 당시 일본 정치 지도자들은 위안부피해자들에 대해 진정한 사과의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다. 중국의 강대국 부상 및 공세적인 군사정책, 그리고 북한의 지속적인 핵 능력 증강에 직면하여 일본은 동맹국인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과도 다양한 연대와 협력을 지속해야 한다. 그럼에도 일본 지도자들은 전략 물자의 수출 규제 등 한국을 자극하는 조치들마저 취하였다. 한일관계가 일본의 국가 백년대계라고 갈파한 젊은 날 오카자키의 탁견이 그 후배 일본 내 식자들과 정치가들에게는 망각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우리 정치 지도자들도 이 같은 비판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 못지않은 경제적, 외교적 중요 국가로 부상하고 있는 한국은 기존의 약소국 멘털리티에서 벗어나 국제 정세 및 국가 간 관계를 보다 크게 조망하는 시각이 절실하다. 오카자키가 그러했듯,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현재의 한일관계 속에서 양국의 식자와 정치가들이 21세기 동아시아의 백년대계 속에서 양국관계를 재구축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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