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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일 갈등 극복과 역사 화해를 위한 일제 침탈사 연구총서·자료총서 발간 사업
  • 박찬승,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

박찬승,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였고 특히 사상사, 사회사, 독립운동사에 관해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한국사연구회, 한국사회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한양대학교 비교역사 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에는 한국 근대 정치 사상사 연구, 민족주의의 시대, 근대 이행기 민중 운동의 사회사, 언론운동(한국독립운동의 역사), 한국 근현대사를 읽는다, 국역 조선총독부 30년사등이 있으며, 국내외 학술지에 약 1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일제 식민지의 실상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려면 객관적 자료에 입각한 충실한 연구와 역사 교육이 기반 되어야 한다. 이에 재단은 일제 식민지배 정책과 피해 실태, 일제의 한국 침탈 피해를 총체적으로 규명하는 일제 침탈사 연구총서·자료총서 발간 사업을 시작했다. 식민지배의 성격과 통치 인력, 각종 정책, 전시(戰時) 동원, 언론과 문화 통제, 종교에 이르기까지 주제만 50가지에 이르는 역사학계 사상 최대 규모의 연구 사업이다. 본 사업의 편찬위원장 박찬승 한양대 교수를 만나 그 추진 배경과 의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대담 | 남상구, 재단 한일역사문제연구소 소장

     


     

Q. 식민지 근대화론이 본격적으로 학계에 등장했던 것은 1990년대입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부상하게 된 배경이나, 이론의 출발점으로 삼을 만한 연구 혹은 유사한 이론이 있을까요?


A. 한국이 근대화된 것은 일제 지배 이후에 비로소 가능했다고 하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비슷한 일본에 의한 조선 문명개화론은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있었고, 해방 이후 일본의 우파 정치인과 지식인이 줄곧 주장해온 이론이기도 합니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에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한국 경제가 크게 발전하자, 국내의 일부 경제 학자들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한국은 이제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의 문턱에 섰다, 이러한 것들이 가능해진 배경에는 일제에 의한 식민지배가 있었다고 말입니다. 해방 이후 한국인의 자생적인 경제성장 노력에 앞서 일제에 의한 식민지배가 그 기초를 닦았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후 이들은 일본 학자들과 주로 경제사 분야의 공동 연구를 하면서 이러한 논리를 더욱 발전시켜 마침내 식민지 시대에 상당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결국 제국주의 시절에 만들어진 식민지 지배 국가들이 식민지를 문명개화시켜준다는 이른바 식민주의이론이 아직도 강고한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Q. 이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경제성장률이라는 객관적인 수치가 식민지하에서도 경제가 성장했다는 것을 입증한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와 관련된 통계나 수치를 파악할 때 어떤 점에 유의하여야 할까요?


A. 그들은 식민지 시기의 경제성장률이 연 3% 정도 된다고 주장하는데 통계에 나온 수치로 계산했을 때에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식민지 조선 전체의 경제성장률입니다. 당시 조선의 경제를 장악하고 있던 이들은 일본인, 일본 자본이었습니다. 조선인들은 그러한 경제성장에서 대부분 소외되어 있었지요. 따라서 설사 연 3% 성장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조선인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식민지 시기의 통계는 대체로 일본인과 조선인을 가리지 않고 합산한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통계를 가지고 조선인들도 잘살게 되었으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Q. 식민지 근대화론 부상 이후 지난 20년 동안 식민지 시기에 대한 심화 연구가 다수 발표되었습니다. 이러한 연구들에 근거하여 살펴보면, 식민지 근대화론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정책을 미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한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반박할 자료가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A. 그렇습니다. 일제가 만든 통계 자료보다 현실을 더 잘 반영한 자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당시의 신문 기사는 조선인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심지어 총독부가 만든 생활상태조사와 같은 농가 경제 조사 자료들도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조선 농민의 경제는 계속해서 몰락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의 농가 대부분은 빚이 많은 부채 농가였고, 봄만 되면 식량이 떨어지는 춘궁 농가가 전체의 50%나 되었습니다. 또 화전민도 늘어나고, 만주로 이민을 가는 농민들도 계속 늘었습니다. 만일 조선의 농민들이 이전보다 더 잘살게 되었다면 그런 상황이 빚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추상적인 통계나 숫자보다는 이처럼 구체적인 현실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보아야 당시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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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일제 지배정책의 성격에 대해서는 식민지 수탈론’, ‘식민지 근대화론’, ‘식민지 근대성 비판론등의 담론이 있습니다. 이러한 담론이 가지는 각각의 차이와, 이 담론들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요?


A. ‘식민지 수탈론은 일본의 지주나 자본가들이 조선에서 토지, 식량, 지하자원, 노동력 등을 수탈하였다는 주장이고, ‘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지 조선이 일제 지배하에 제도적으로 근대화되고 경제적으로 성장했다는 주장이고, ‘식민지 근대성 비판론은 일제에 의해 도입된 근대적인 제도와 기구들이 조선인에 대한 통제와 억압의 기제였다는 주장입니다.

식민지 수탈론은 과거 토지조사사업 때의 토지 수탈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당시에는 민유지 수탈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 밝혀져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산미증식계획을 통한 쌀 수탈이나, 지하자원 개발을 통한 자원 수탈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본인, 일본 자본, 조선인, 조선 자본을 구분하여 보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고, ‘식민지 근대성 비판론은 일반적으로 근대성이 지니는 억압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식민성에 관해서는 관심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한말의 자강운동과 일제하 실력양성운동, 3·1운동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시면서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시정(施政) 25년사시정 30년사를 우리말로 옮긴 국역 조선총독부 30년사를 출간하셨습니다. 독립운동사 연구에 비해 일제 지배정책사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일제 지배정책사 연구에서 특히 힘을 기울여야 할 분야는 어디인지요?


A. 그동안 일제 강점기에 대한 한국 학계의 연구가 독립운동사를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일제 지배정책사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흡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연구 인력도 부족하고, 기본적인 자료 정리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일제 지배정책사에서 우선적으로 중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어떤 기구를 통해, 어떤 법제를 통해 일제의 지배가 이루어졌는가 하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이 분야는 지배정책사 연구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데, 아직 기초적인 연구조차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일제 지배 기구로서 통감부와 조선총독부, 그리고 일본 정부 내의 척식국과 척무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법제로서 칙령, 제령, 총독부령의 제정 시스템에 대한 연구도 거의 없습니다.

일제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지배는 대만, 사할린 등에 대한 지배와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 지역에 대한 지배 정책과 어떤 공통점 혹은 차이점이 있는지도 비교해서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만, 그러한 비교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또 일제의 조선에 대한 지배의 기본은 이른바 동화정책이었는데, 그 동화정책의 성격이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에 대한 연구도 아직 미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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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일제 지배정책에 대한 논의는 친일문제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친일에 대한 변명담론이 재생산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저는 친일’보다는 ‘부일협력’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봅니다. 일제 지배에 협력하고, 전쟁 수행에 협력한 세력임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제의 강요와 협박에 의해 부득이하게 협력한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부일협력자’들은 그렇게 부득이하게 협력한 이들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과 부귀영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한 자들입니다. 그런 이들의 주변 세력은 해방 직후 반민특위 때 ‘그들은 부득이하게 협력한 것’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대부분의 부일협력자를 석방하였고, 아직도 이런 논리를 재생산해서 계속 유포하고 있습니다.   

     


 

     


Q. 재단이 추진 중인 일제 침탈사 연구총서·자료총서발간을 위한 편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계십니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된 지 75년이 지난 지금 이 사업을 추진하는 배경과 의의는 어디에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A. 해방된 지 75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독립운동사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식민지배의 역사는 아직입니다. 이번에 재단이 기획한 <일제 침탈사 연구총서·자료총서>는 식민지배의 역사를 처음으로, 제대로 정리한다는 의미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해방 이후 현재까지 이 부분에 대한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고,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연구를 격려하여 연구총서 50권을 발간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를 뒷받침하기 위한 자료총서도 100권을 발간할 예정입니다. 연구총서와 자료총서 편찬을 위해 작년 가을부터 각각의 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작업을 진행 중인데, 현재까지는 순항하고 있는 편입니다.

     

     


Q. 이번에 발간하는 연구총서와 자료총서의 특징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A. 연구총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네 분야로 나누어 주제를 정했습니다. 그동안 학계에서 잘 다루지는 않았지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주제들을 포함하여 관련 연구를 촉발하고자 했고, 또 작금에 이슈가 되고 있는 중일전쟁 이후의 징병, 징용, 일본군위안부문제 등에 대해서는 큰 비중으로 다룰 계획입니다. , 총론을 두어 일제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의 성격을 비교사적으로 정리하고, 보론을 두어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 문제, 한국 사회에서의 식민 잔재 청산 문제 등도 함께 다루게 될 것입니다.

자료총서는 일제의 식민지배를 전체적으로 포괄하는 35개 주제를 이미 정했지만, 앞으로 공모를 통해 자유 주제도 포함할 예정입니다. 100권으로 발간될 자료총서는 연구총서의 집필에도 도움을 주고, 향후 일제의 식민지배 정책에 대한 학계의 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조금 걱정이 되는 것은 이 분야에 대한 연구 인력이 많지 않아, 현재 예정하고 있는 3년 정도의 단기간 내에 이렇게 방대한 작업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많은 분이 이 사업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주고 계십니다만, 앞으로 더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